"계속 버섯 농사할지 모르겠네요"…파주 호우 피해 농장주 한숨

"여기서 계속 버섯 농사를 해야 할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네요…"

오늘(23일) 오전 경기 파주시 파평면 금파1리 금파농장에서 농장주인 이 모(57) 씨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젖은 참나무를 하우스 안에서 밖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표고버섯을 키우기 위해 하우스 안에 쌓아놓았던 참나무는 지난주 내린 큰비에 하우스가 잠기면서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물에 젖은 참나무는 고품질의 버섯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이 씨는 중고거래장터에서 무료로 나누기로 하고 오늘 외국인 근로자들과 함께 하우스 밖으로 참나무를 옮겼습니다.

톱밥과 종균도 무료로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이 씨는 "다른 사람들이 땔감과 거름으로라도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에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면서 "나무를 가지러 오신 분들이 침수된 하우스를 보고는 '죄송하다'고 말을 건넨다"고 전했습니다.

이 씨의 농장은 지난 17∼18일 이틀 동안 600㎜ 가까이 쏟아진 폭우에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양동이로 퍼붓는 듯한 빗줄기에 하우스가 빠르게 물에 잠겨 갔지만 이 씨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 씨는 "15년 버섯 농사를 하면서 이런 비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큰비가 내리기 시작한 첫날인 17일 저녁 9시쯤 이 씨는 "밤새 폭우가 쏟아질 것 같으니 버섯 재배사에서 나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지만 하우스를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2시 무렵 하우스 주위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해 무릎까지 잠기자 하우스의 전기 차단기를 내리고 대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이 씨 부부는 날이 밝은 뒤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하우스 13동 중 11동이 어른 가슴높이까지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양주시에서 잘 나가던 식당을 접고 고향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후회가 막심했습니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오후 3시 하우스에 들어간 이 씨 부부는 참나무 30t, 종균, 톱밥 배지 8천 본, 냉난방기, 10여 대의 농기계, 냉장고 등이 흙탕물에 잠겼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했습니다.

이 씨는 "17일 작업해 둔 버섯 800㎏은 농로 변에 가까운 하우스 안 저온 저장고에 보관해 뒀는데 이것만 건졌다"면서 "나머지는 전부 물에 젖어 버리고 있다. 지금까지 버린 물건들이 5t은 족히 된다"며 씁쓸해했습니다.

하우스 침수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파평면장과 금파1리 이장, 지역 정치인, 이웃 주민 등이 젖은 물건들을 바깥으로 옮기는 데 도움을 줬다며 감사해했습니다.


이 씨는 하우스 복구에 3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우스 안에는 아직도 버려야 할 참나무가 수두룩이 쌓여 있고 하우스 바닥에는 인근 밭과 농경지에서 밀려 들어온 계분과 진흙이 두껍게 쌓여 악취까지 내고 있습니다.

이 씨는 "지금은 흙이 질어 기계가 들어갈 수 없다. 하우스를 정리하고 소독을 한 뒤 종균을 넣는데 최소 3개월은 걸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우스 복구도 문제지만 올 추석과 가을 축제에 맞춰 출하하기로 한 계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은 경제적 손실로 이어집니다.

이미 3억 원가량의 피해를 봤다는 이 씨는 "예년 추석에는 평균 2㎏짜리 버섯 3만 개를 출하했는데 올해는 추석 대목이 아예 없어져 버렸다. 추석과 가을 축제용으로 계약 재배한 버섯도 줄 수 없어 위약금까지 물어야 할 상황"이라고 한숨지었습니다.

또 "6년 전부터 친환경협회로부터 '친환경' 인증을 받아 판로도 좋았는데 올해는 인증받기 어렵게 됐다"며 "버섯 재배에는 물이 제일 중요해서 여기서 농사를 계속해야 할지 다른 곳으로 옮겨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사진=이 모 씨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