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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법치 내팽개쳤다…판사들이 트럼프에게 안겨준 그 선물"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The Trump Decision Reveals Deep Rot in the System, by Laurence H. Tribe

0705 뉴욕타임스 번역
 
*로렌스 트라이브는 하버드대학교에서 50년간 헌법을 가르쳤다.
 

지난 1일 미국 대법원은 법치를 내팽개쳤다. 11월 대선 전에 미국 시민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를 사실상 알지 못하게 가로막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 미국(Trump v. United States) 판결에 관해 대법원이 심리한 질문은 간단했다. 앞서 잭 스미스 특별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저지른 범죄 혐의로 트럼프를 기소했는데, 대통령이 재임 중에 한 일에는 면책특권을 인정해 기소를 무효로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더 자명하다. "아니오"여야 한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가로막으려 범죄를 저지른다면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실제로 내가 아는 한 지금껏 그 어떤 재판부도 대통령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형사 기소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판결한 적이 없다.

자명한 답을 따라 재판을 순리대로 진행하는 대신 판사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끝없는 재판 지연이라는 귀한 선물을 안겨줬다. 10주 가까이 심리를 질질 끈 재판부는 사건을 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고, 그마저 바로 심리에 들어가는 대신 다시 몇 차례고 절차상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예비 결정을 먼저 거치게 했다.

결국, 법원은 미국 시민들이 11월 선거를 앞두고 2021년 1월 6일 의사당 테러에 트럼프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 알 수 있으리란 희망을 꺾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가 타당하다고 기소를 인정한 건 바로 미국 시민들로 꾸려진 대배심(grand jury)이었다. 그런데 미국 유권자들은 동료 시민들이 혐의의 유죄 여부를 다퉈봐야 한다고 결정한 사안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 채 투표 부스에 들어서게 됐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저 보수적인 판사가 다수를 이룬 법원의 잘못된 판결 가운데 하나로 보일 수 있다. 얼핏 보수 우위의 법원이 다시 균형을 되찾으면 문제가 자연히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번 판결은 개헌 또는 새로운 정부 조직을 꾸려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중대한 문제의 시초가 될 수도 있다.

대법원은 다수 의견을 통해 대통령에게 완전한 면책특권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실질적으로 앞으로 취임할 모든 대통령에게 상당한 수준의 면책특권을 줄 것이며, 당장 트럼프만 해도 계속 재판을 미룸으로써 사실상 면죄부를 받게 됐다.

트럼프도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재판에 필요한 절차를 계속해서 미뤘다. 결국, 제대로 된 재판은 일어나지 않았고, 사법 제도 전반의 허점을 역이용한 트럼프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을 벌었다.

트럼프는 그렇게 번 시간을 이용해 세간의 이목을 분산시키고, 판결을 미뤘으며, 자기한테 유리한 주장을 끊임없이 퍼뜨려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를 무효로 만들 방법을 찾았다. 그가 기어이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그는 자신이 임명한 신임 법무장관에게 잭 스미스 특검을 당장 해고하고, 자신을 향한 모든 기소를 모두 백지화하라고 명령할 것이다.

당신이 트럼프가 재판에서 어떤 판결을 받을 거로 생각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제도를 악용해 시간을 끌어 면죄부를 얻어내는 건 정의가 지연된 것이고, 결국 정의가 부정된 거나 마찬가지다.

어쩌다 우리의 사법 제도가 트럼프의 끈질긴 지연 전략에 휘말려 무너지게 된 걸까? 그리고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왜 법치에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걸까?

미국 헌법을 제정한 사람들은 대통령을 포함한 그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하지 못하게 보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법무장관(검찰총장)과 특별검사를 포함한 정부의 검찰 조직이 대통령에게 의존하도록 구조를 짰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구조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1988년 대법원이 심리한 모리슨 대 올슨 사건에서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행정부가 특별검사를 단독으로 임명하고 재량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썼다. 이는 대법원 판례로 효력을 지니게 됐고, 결국 오늘날 특별검사는 과거 독립 검사가 누리던 자율성마저 잃게 됐다. 그 결과 잭 스미스 특검은 극도로 부패한 고위층 피의자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게 됐다.

법무장관의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메릭 갈랜드 법무장관이 이번 사건에 특검을 임명하기까지 무려 20개월이 걸렸다는 건 갈랜드 장관이 인사권자인 바이든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 주저했다는 방증이다.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여러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집권 초기에 전임 대통령을 기소하고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했다고 한다. 정치적인 역풍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만약 법무장관이 대선 정국의 정치적인 압력에 구애받지 않고, 법리적인 사실관계만 따져 판단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곧바로 사건을 수사해 기소하도록 지시했을 것이고, 미국 유권자들은 선거 전에 유죄인지 무죄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논리에 대부분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대통령과 법무부 사이의 구조적 관계 때문에 발생하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까지 드러내고 말았다. 대법원 구두 변론에서 법무부를 대변한 유능한 변호사 마이클 드리벤은 법무장관의 인사권자가 대통령이므로, 대통령은 사실상 자신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려 하든 그에 대한 면죄부를 미리 받아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즉, 대통령은 임기 중에 자신이 하는 일은 뭐든지 정무적 판단에 따른 합법적인 일이라는 공식적인 의견을 제시해 줄 법무장관(이자 검찰총장)을 임명하기만 하면 된다. 설사 그 일이 자신이 패배한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쿠데타를 획책하는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행위와 판단에 누군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적법 절차에 관해 확립된 원칙에 따라 변호인단의 철통같은 변호를 받게 될 것이다. 사실상 모든 행위에 면책특권이 인정되는 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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