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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시장' 김홍신 "국회의원 연봉, 공무원 과장급 정도면 충분"

'인간시장' 김홍신 "국회의원 연봉, 공무원 과장급 정도면 충분"
▲ 김홍신

"지금도 국회의원 모두가 배지를 달고 다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그건 분명히 바보짓입니다. 국회의원은 그 활동을 제대로 해야 국회의원이지 배지를 달고 다닌다고 해서 국회의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특권도 모두 없애야 합니다. 세비는 공무원 과장급 이하 수준으로 낮춰야 하고 비행기 비즈니스석, KTX 특실, 의원회관 내 병원 무료 이용 등도 말이 안 됩니다. 그런 행위는 나쁜 짓입니다. 그게 다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입니다."

작가 김홍신(77)은 지난 6월 14일과 24일 두차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국회의원은 생계 수단이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라면서 "국회의원은 권위와 명예로 충분히 보상받기에 국민 세금으로 특권을 누리는 것은 말이 안 되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김 작가는 "국민이 국회의원 특권을 빼앗아 와야 한다"면서 "국회의원의 급여를 낮추고 특권을 없애면 각 분야에서 놀라운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위원회를 만들어 세비, 국회의원 수, 선거구제 문제 등 정치개혁과 관련한 일을 논의해야 한다"면서 "이 위원회에는 정당이 사람을 파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947년 충남 논산에서 성장한 김홍신은 건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76년 월간 '현대문학'에 '물살', '본전댁'으로 등단했습니다.

1981년에는 소설 '인간시장'으로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이 소설은 대한민국 최초로 판매량 100만 부를 돌파한 기록을 갖고 있으며, 지금까지 최종 판매량은 560만 부에 달합니다.

그는 1981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KBS, MBC 등에서 방송 활동을 하면서 특유의 말솜씨와 유머 감각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1991년부터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을 하다 1996년 통합민주당을 통해 15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4년 후인 2000년에는 한나라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의원을 했습니다.

그는 8년간 매년 의정활동 1위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거의 30년 전부터 선구적으로 국회의원 특권 폐지에 나섰고 기초생활보장법, 장애인복지법, 의약분업 등을 주도했습니다.

Q. 고향은 어디인가?

태어난 곳은 충남 공주입니다. 나는 논산에서 성장했으니 나의 고향은 논산입니다.

Q. 아버지는 대목수였다고 하던데?

집을 지으려면 목수, 미장이, 기와 얹는 사람 등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를 총괄하는 사람을 대목수라고 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건축업자입니다. 아버지는 인심을 얻고, 법 없이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어머니는 "도대체 네 아버지를 믿고 살기 어렵다"고 원망하셨습니다.

Q. 어머니는 엄격하신 분이었다고 하던데?

어머니는 왕 계주였습니다. 여러 개의 계를 맡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내 기억으로는 어머니가 관리하는 계가 많을 때는 10개나 됐습니다. 신용이 뛰어나고, 부지런하고, 관리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는 너무 엄격해서 나는 우리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닌 줄 알았습니다. 걸레를 던져주고는 방을 쓸고 닦으라 했습니다. 물도 길어와야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마루에서 밥을 먹다가 땅에 흘리는 것은 당연한데도 흙이 묻은 밥알을 씻어서 입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한번은 동네의 장애 아이를 친구들과 함께 놀린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울고 가는 것을 우리 어머니가 봤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끌고 그 집으로 가서는 용서를 빌라고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우리 어머니만 그걸 요구했습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에 온 뒤에 회초리를 해오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걸로 맞을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치마를 종아리 위 까지 걷어 올리시고는 "내가 너를 잘못 가르쳤으니 네가 나를 때려라"라고 했습니다. 그때 나는 어머니를 붙잡고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Q. 어머니가 강단이 있는 분이었나?

큰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문중에서는 나를 큰 집의 양자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성격이 착한 분이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답답해하던 어머니는 "나는 죽어도 못 보낸다"면서 버티셨습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문중의 미움을 받았던 이유입니다. 한번은 내가 동네 또래 친구를 때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문중의 항렬로는 나에게 먼 당숙 뻘이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 친구는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는다면서 화를 냈습니다. 싸움이 일어났고, 그가 나한테 얻어맞았습니다. 문제는 그 아이의 형이 4명이나 됐는데, 그들이 몰려와 나를 때린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어머니는 방석 하나 들고는 나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내 몸을 플라타너스 나무에 새끼줄로 묶고는 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조용하고 심심한 시골에 이보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몰려나왔습니다. 어머니는 "내 아들을 죽여라.. 내 앞에서 죽여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들이 말리자 "내가 서방질해서라도 아들을 하나 더 나을껴!"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아찔했습니다. 어린 나이이지만 서방질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아이의 부모님 두 분과 그 형들이 모두 찾아와 잘못했다고 빌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나무에서 풀려나올 수 있었습니다.

Q. 본인은 고교 졸업 후에 국문과가 아닌 의대 지원을 했다고 하던데?

나는 충남에서 대전고, 공주사대부고에 이어 세 번째 명문이었던 공주고로 진학했습니다. 유학을 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학년 말에 고향인 논산의 대건고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관리하는 계가 파산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대건고에서는 작문 선생님이 문학을 하라고 권했고, 미술 선생님은 미술을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의대를 지원한 것은 부모님의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몸이 아프신 어머니가 나의 의대 진학을 강하게 원했습니다. 나는 가톨릭 의대에 원서를 냈지만,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1년간 재수해서 건대 국문과에 지원했습니다.

Q. 대학에 들어갔으니 부모님은 좋아하셨을 듯한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왜 국문과냐고 물었고,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소설가는 건달이나 가난뱅이 정도로 인식하셨습니다. 나는 건대에 들어가자마자 스타가 됐습니다. 건대 학보사의 문학 공모전에서 소설이 당선됐기 때문입니다. 4학년 때는 정부가 주최하는 전국 대학 문화예술축전에서 장원을 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1976년에는 '현대문학'을 통한 등단에 이어 1981년에는 소설 '인간시장'으로 유명한 사람이 됐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그걸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시골 마을에서는 신문을 보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내가 방송 출연을 할 때부터입니다.

Q. 소설가로 이름을 떨치게 됐는데, 왜 정치활동을 시작했나?

나는 유명 인사가 됐고, 1991년부터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5년쯤 지나서 서경석, 최열, 장을병, 홍성우 같은 분들이 언제까지 시민 활동만 할 것이냐면서 정치활동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개혁신당의 홍보위원장을 맡게 됐고, 그걸 계기로 1996년 통합민주당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Q.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고 하던데?

1996년 5월30일 15대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그러니 5월에는 30일과 31일 이틀만 국회의원으로서 일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도 한 달 치 세비가 나왔습니다. 나는 이게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그 세비를 반납했습니다. 그때 국민의 세금이 엉망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Q. 본인의 건강 보험료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던데?

당시 나는 소설 '인간시장'으로 벌이(수입)가 괜찮았을 때였습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국민건강보험료로 8만여 원을 냈었는데, 국회의원이 되니 4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이것도 말이 안 됐습니다. 나는 소설책으로 돈 벌고 있는데, 추가로 세비도 받으니 수입이 두배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면 건강보험료가 늘어나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보험료를 16만 원으로 올려달라고 장관에게 요구했습니다.

Q. 8년간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매년 의정 활동 1위를 했는데, 그 비결은 무엇인가?

국회의원은 세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법안 제출, 행정부 감시, 예산 결산입니다. 이 중에 내가 잘했다는 것은 법안 제출과 행정부 감시입니다. 제출 법안 숫자로는 1등이 아닙니다. 3등쯤 했을 것입니다. 법안 내용으로는 1등 평가를 받았습니다. 나는 국회 출석률이 1등이었고, 행정부 국정감사에서도 1등을 했습니다.

Q. 국정감사는 어떻게 했기에 1등 평가를 받았나?

행정부 감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국정감사입니다. 당시는 거의 모든 국회의원이 질문을 비밀에 부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피감 기관이 답변을 미리 준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따질 것인지 미리 공개했습니다. 그래야 피감 기관들이 준비를 제대로 하고 다음부터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같은 당 소속 기관장이나 지자체장이라고 해서 봐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Q. 본인은 국회의원이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는데?

국회의원이 배지를 달고 다니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국회의원 시절 8년간 한 번도 배지를 달아본 적이 없습니다. 15대와 16대 두 번 배지를 받았는데, 2개 모두 장애인 돕기 모금 행사에 내놨습니다. 국회의원 배지는 금덩어리가 아닌 금도금이어서 2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데, 내 배지는 경매를 통해 각각 200만 원에 팔렸습니다. 그 돈은 전액 장애인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우리 집 방에서 배지 하나가 더 나왔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나한테 배지를 달고 다니라고 했지만 그것을 거부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믿고 의지했던 제정구 의원이 이 총재한테 대들지 말라는 뜻에서 배지를 사서 준 것인데, 나는 역시 달지 않았습니다.

Q. 2만 원짜리 배지를 200만 원에 매입한 사람은 누구인가?

한 분은 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 몇 번 출마했다가 낙선해서 집안이 망했는데, 아버지 산소에 그걸 묻어주기 위해 샀다고 합니다.

Q. 현재도 대부분의 국회의원이 배지를 달고 다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부분이 아니라 모든 국회의원이 배지를 달고 다니는 듯합니다. 국회의원이라고 과시하는 것인데, 국회의원 역할을 하면 국회의원이고, 국회의원 역할을 하지 않고 딴짓하면 국회의원이 아닙니다.

Q. 국회의원 시절 8년간 한 번도 국회의사당 정문을 이용한 적이 없다고 하던데?

당시는 시민들이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옆의 쪽문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국회의원만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국민이 정문을 이용하고, 국회의원이 쪽문을 이용하는 게 맞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쪽문을 이용했습니다.

Q. 국회의원 세비가 연간 1억5천700만 원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국회는 국민대표자 회의를 줄인 말입니다. 국민 대표자인 국회의원은 생계를 위한 직업이 아니라 봉사직입니다. 세비란 말도 국회의원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보전해준다는 뜻입니다. 국회의원은 권위와 명예를 가지면 됩니다. 그러니 특권은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세비도 대폭 줄여야 합니다. 공직자의 평균 연봉 정도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Q. 공직자 평균 급여는 중앙부처 과장급 월급을 말하나?

국회의원 연봉은 중앙부처 과장급 연봉보다 많으면 안 됩니다. 그 이하가 돼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Q. 국회의원 특권 폐지운동본부를 이끌었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국회의원 월급으로 도시근로자 평균 임금인 월 400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내 말이 그 이야기입니다. 나도 400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Q.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면책 특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히 100% 빨리 없애야 합니다. 그런 특권은 왕조 권력 같은 시대에나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Q. 국회의원은 왜 KTX 특실,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공짜로 타고 다니고 공항 귀빈실과 귀빈 주차장은 무료로 이용하는가?

내가 국회의원을 할 때는 새마을 열차표는 공짜였습니다. 비행기 일반석은 의원이 돈을 내고 구입하면 항공사가 비즈니스석으로 올려줬습니다. 상임위원장 등 높은 분들이 탑승하면 퍼스트 클래스 자리가 비었을 경우 다시 업그레이드 해줬습니다.

Q. 항공사가 의원들에게 좌석 등급을 올려주는 이유는 뭔가?

100% 뇌물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마일리지를 쌓아야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KTX나 항공기의 일반석을 타서 시민들과 접촉할 기회를 갖는 게 좋습니다.

Q. 의원들은 왜 의원 회관에 있는 내과, 치과, 한의원, 이발소, 사우나, 헬스장 등을 공짜로 이용하나? 국회의원 가족들도 의원 회관 내 병원을 공짜로 이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히 말이 안 됩니다. 그게 모두 국민 세금입니다. 나는 그런 걸 없애려고 의원 시절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나는 한 번도 국회 사우나를 이용해본 적이 없습니다. 국민이 국회의원의 이런 특권들을 빼앗아 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들은 지금부터 특권을 누리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을 해야 합니다. 세비를 1억5천700만 원이나 받으면서 그런 걸 공짜로 이용하는 것은 나쁜 짓입니다.

Q. 국회의원 사무실이 1인당 45평인데, 국회의원이 이렇게 큰 공간을 갖고 있는 나라가 없다고 하는데?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의원 3∼4명이 같은 사무실을 쓴다고 하는데?

국회의원 1인당 45평으로 늘린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 정도의 평수는 생각보다 매우 넓다. 의원실을 보면 국회의원 방과 보좌진들의 방이 따로 있습니다. 의원 시절에 나는 의원 방과 보좌진 방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로비할 수 없었습니다. 의원 방에는 샤워실 겸 화장실도 있습니다. 국정감사 때는 보좌진이 밤을 새우곤 하는데, 나는 보좌진이 화장실 겸 샤워실에서 샤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Q. 급여를 적게 주면 유능한 사람이 국회의원을 안 할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오히려 질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 국회에 들어옵니다. 돈과 특권을 내려놓고 명예와 권위만으로 일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전문가, 능력을 인정받은 대학교수, 중소기업에서 실력을 쌓은 사람, 전투기 분야 생산에서 기술력을 가진 사람 등 여러 분야에서 놀랍도록 능력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될 것입니다.

Q. 어떻게 해야 하나?

위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세비도 조정하고, 중대선거구로 할지 여부 등 정치개혁 문제도 이곳에서 다루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정당은 그 위원회에 사람을 파견해서는 안 됩니다. 국회의원 특권 문제는 반드시 해결될 것이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이게 안 되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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