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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치명적 오류"라더니 판결 수정하자 불복한 최태원 전략

'오류 있는 이혼소송 판결문 그대로 대법원 판단 받겠다'
판결문 '오류'와 '내용' 따로 상고…1960년대 이후 사례 없어
입장문-기자회견-상고-판결 불복…사활 건 SK

최태원 SK 회장 (사진=한일경제협회 제공, 연합뉴스)
▲ 최태원 SK그룹 회장

 지난달 30일 최태원(63) SK그룹 회장이 노소영(63)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1조 3천808억 원, 위자료로 20억 원을 주라는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은 '세기의 이혼'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며칠 동안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선고 당일 최 회장 변호인단은 곧바로 입장문 내고 "재판 과정과 결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인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습니다.
 

2주 넘게 판결문 분석…"치명적 오류 발견"

그로부터 2주가 넘은 시점인 지난 17일 대대적인 기자회견도 열렸습니다. 예정에 없었던 최 회장도 등장해 입장을 밝혔습니다.

"판결문의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했다", SK 측이 찾은 내용입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경영 기여도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1998년도 대한텔레콤(SK C&C의 전신) 주식 가격을 주당 1,000원이 아닌 100원으로 잘못 계산했단 거였습니다.
 
이에 따라 주식의 가치가 4천배 커지는 과정에서 최 회장과 최 선대회장의 기여도가 달라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선대회장의 기여 부분을 12.5배, 최 회장의 기여 부분을 355배로 판단했는데, 이 부분이 바뀌면 최 회장을 내조한 노소영 관장의 기여분도 달라진다는 게 SK 측 주장입니다.
 
직접 만든 그래프도 첨부했고 최 회장이 노 관장의 내조를 받은 '자수성가형'이 아닌 선대회장의 도움을 받은 '승계상속형'이라는 주장을 굳혔습니다.
 
여현교 취재파일용 사진

항소심을 맡았던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기자회견 후 곧바로 판결문을 수정했습니다. 주식 가격 계산의 오류를 인정한 겁니다. 하지만 결론에 대해선 선을 그었습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최 회장 재산 형성에 기여한 원고 부친과 원고로 이어진 계속적인 경영활동의 '중간단계'에 발생한 계산 오류"라며 "구체적인 재산 분할 비율 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수정 판결문 받고 일주일 뒤 '다시 고쳐달라'

수정된 판결문이 최 회장과 노 관장에게 도착하고 일주일 뒤인 지난 24일, 최태원 회장은 '재항고장'을 제출했습니다. 재판부의 판결문 수정에 불복한단 겁니다. 일각에선 '오류를 지적해 수정해 줬는데 왜 다시 원래대로 고쳐달라는 건가', 질문이 나왔습니다.
 
법조계에선 최 회장 측이 대법원 판단을 받을 때 오류가 포함된 판결문 그대로 판단을 받기 위해 불복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판결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으니 그것부터 다시 판단해 달라는 전략이란 겁니다.
 
일반적으로 대법원은 1,2심 판단에 대해 사실 관계를 따지기 보다 법리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혼 소송의 경우 대부분 추가 심리 없이 '심리 불속행 기각'으로 결론납니다.
 
최 회장 측이 이 때문에 더욱더 '오류가 포함된' 판결문을 대법원에 올려 추가 심리를 받고자 한다는 게 법조계 설명입니다.
 

최태원 회장처럼 두 가지 요청 다 받아들여진 건 1961년이 마지막

<민사소송법 제211조 3항>
경정결정에 대하여는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 다만, 판결에 대하여 적법한 항소가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현재 민사소송법 제 211조 3항엔 판결에 대해 적법한 항소가 진행 중이라면 판결문 수정에 대해선 즉시 불복할 수 없다고 쓰여있습니다.
 
1,2심 단계에서의 내용이지만 통상 대법원 상고심에도 적용되는 분위기를 고려하면 최 회장 측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가지를 요청했지만 판결문 수정에 대해선 기각되고 고쳐진 판결문으로 판단 받을 수 있단 겁니다.
 
하지만 과거 1961년 최 회장이 요구한 것처럼 '판결 자체'와 '판결문 수정'에 대한 이의를 대법원에서 모두 다 받아들인 선례가 하나 있습니다. 대법원 1961. 5. 4.자 4294민항144 결정입니다. 같은 대법원 상고심에서 이렇게 두 가지 요청을 다 받아들인 건이 있기 때문에 최 회장의 판결도 아직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혼 소송에 대해 추가 심리가 이뤄지거나 전원합의체로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1,2심의 판단이 엇갈렸고 판결문에 오류도 있었던 만큼 추가 심리가 이뤄지거나 전원합의체로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 달 동안 숨 가빴던 SK

최태원 SK그룹 회장-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고 최태원 SK회장의 주식처분을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철회하는 동안 (이혼 소송 2심 재판부가 주식이 아닌 현금을 지급하라고 한 만큼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SK 측은 꽤 바쁜 한 달을 보냈습니다.
 
판결 첫날 강도 높은 비판부터 기자회견과 국민 사과, 판결문 수정 불복까지...한 달 동안 회사 전체가 사활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경영권에도 여파가 있을 수 있단 우려에 최 회장 본인까지 발벗고 나섰습니다. 
 
최 회장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인 일로 국민들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돼야 하지만 SK 구성원 명예와 긍지가 실추되고 훼손돼 상고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바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이야기한 대로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있을지 주목됩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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