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부터 기록적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S&P500지수는 금융위기 직후의 저점 대비 700%가 넘는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미국 증시 130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강세장이다. 공격적인 주주환원은 미국 증시의 장기 강세를 이끈 중요한 동력들 중 하나이다.
최근 10년(2014년~2023년) 동안 미국 S&P500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으로 6.7조 달러, 현금 배당으로 5.0조 달러를 지급하면서 총 11.7조 달러를 주주들에게 돌려줬다. 같은 기간 동안 S&P500 기업들이 벌어들인 당기순이익 누계 14.6조 달러의 80%에 달하는 규모이다. 또한 11.7조 달러의 총 주주환원 규모는 같은 기간 동안의 설비투자액 10.0조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주요 기업들은 벌어들인 이익의 80%를 주주들에게 돌려주고 있고, 설비투자보다 주주환원을 더 많이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우량 기업들의 주주환원은 더 공격적이다. 애플은 지난 10년 동안 7,363억 달러를 자사주 매입과 현금 배당을 통해 주주들에게 돌려줬는데, 이는 같은 기간 동안 벌어들인 당기순이익 누계액 6,506억 달러보다 더 큰 규모이다. 애플은 기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순이익에 그동안 회사 곳간에 쌓아놓은 유보액(자기자본)까지 더해 주주환원을 해줬다.
애플보다 더 과하게 주주환원을 하는 기업들도 많다. 미국의 우량주 상당수는 아예 자기자본이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와 도미노피자, 보잉, 맥도날드, 홈디포 등 S&P500지수에 속해 있는 종목들 중 31개가 자기자본이 마이너스이다. 회계적으로는 부채가 자산보다 큰 완전 자본잠식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잠식은 적자가 누적되는 부실 기업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인데, 미국을 대표하는 S&P500지수에 속한 기업들이 그럴 리는 없다. 모두 공격적인 주주환원 때문이다.
애플은 그동안 쌓아놓은 자기자본을 헐어서 주주들에게 돌려주고 있지만, 스타벅스 등은 벌어들인 이익에 더해 빚까지 내면서 주주환원을 하기에 자기자본이 마이너스인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첨병인 미국의 우량 기업들에게 자본이 존재하지 않는 아이러니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은 예비적 동기로 자기자본을 보유한다. 주기적인 설비투자가 필요한 기업들은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기자본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칠 때 기업에 쌓여있는 자기자본은 파산을 막는 완충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처럼 자기자본이 마이너스인 기업들은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 없고, 영업에서 안정적인 현금 유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기업 내부에 부를 쌓아두기보다는 주주들에게 즉각 돌려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즈니스 모델이 훌륭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주주환원에 부채까지 동원하는 것은 '과도한 주주환원'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국가 경제 전체로는 경제적 부가 과도하게 주주 편향적으로 배분된다는 부작용이 있다. 기업이 주주환원의 방식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게 되면 발행 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주당 가치가 높아지지만, 이는 기업의 총량적 가치와는 무관하다. 기업의 총량적 가치는 기업이 벌어들이는 순이익 또는 보유하고 있는 자산 규모에 좌우된다. 투자자 입장에서 주당 가치의 중요성은 크지만, 주당 가치 개선은 오직 주주들에게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또한 보잉의 경우처럼 자기자본이라는 완충 장치가 없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경제 위기에 노출되면, 곧바로 부도 위기에 내몰리게 될 수도 있다. 바이든 정부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사주 매입에 과세라는 페널티를 물린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자사주 매입에 대해 1%의 세금을 물리고 있다.
그나마 금리가 낮을 때는 주주환원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런 행동들이 정당화될 수 있었다. 미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준금리가 제로 금리에 가까울 정도였고, 우량 기업들은 사상 초유의 저금리로 차입이 가능했다. 기업이 발행한 주식을 유지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벌어들인 이익을 나누는 배당금 지급이 대표적이다. 주당 배당금을 주가로 나눈 비율이 배당 수익률인데, 만일 기업이 배당 수익률보다 낮은 이자로 차입을 할 수 있다면 빚을 내 자사주를 매입한 후 소각하면 전체적으론 기업에 이익이 된다. 배당을 지급하는 것보다 이자로 나가는 비용이 더 적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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