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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찬, 그의 음악에 심장을 강타당했다 [스프]

[커튼콜+] 음악에 마음을 담아낸다…뭘 하더라도 이렇게 한다면

김수현 커튼콜+
심. 장. 강. 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리사이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데카 레이블로 쇼팽 에튀드 작품번호 10번과 25번 전곡 음반을 내고 얼마 안 되어 한국에서 연 리사이틀이었습니다. 원래는 쇼팽 에튀드를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공연을 앞두고 프로그램이 변경되었습니다. 멘델스존 '무언가'와 차이콥스키 '사계', 그리고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으로.

모두 좋은 곡들이지만, 쇼팽 에튀드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저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임윤찬은 쇼팽 에튀드 음반 발매 기념 인터뷰에서 '내 안에 있었던 용암을 토해낸 것 같다', '심장을 강타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요, 그런 느낌을 담아 연주한 쇼팽 에튀드를 음반만이 아니라 실연으로도 듣고 싶었던 겁니다.

임윤찬 리사이틀 공연, 6월 7일, 롯데콘서트홀 ⓒ Shin-joong Kim/MOC
그런데 임윤찬의 음악은 '쇼팽 에튀드'가 아니더라도 용암 같았습니다. 그의 피아노 소리는 연신 심장을 강타했습니다. 그는 음악에 온 영혼을 던져 넣으면서도 자유롭게 유영했습니다. 다 아는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멜로디가 들려오고, 밀고 당기는 템포가 새로운 긴장감을 조성하니,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특히 '전람회의 그림'에서는 피아노가 낼 수 있는 소리의 극단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음악이 눈앞에 그림을 펼쳐 보이는 느낌이었고, 거대한 오케스트라 같은 피아노 소리에 압도되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한 그의 연주에 관객도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할 수밖에요. 앙코르 연주 도중 객석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무대와 객석의 끈끈한 연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온몸의 감각을 활짝 열고 연주를 들으니, 음의 홍수에 심장만이 아니라 온몸을 강타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나니 기운이 쫙 빠지고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힘들고 지치는 피로가 아니라, 성취감 비슷한 행복한 피로였습니다. 임윤찬이 이끄는 대로 한 발 한 발 올라가 봉우리 정상에서 멋진 풍경을 보고 내려온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정말 오랜만에 완벽한 몰입을 경험했습니다.

임윤찬 리사이틀 공연, 6월 7일, 롯데콘서트홀 ⓒ Shin-joong Kim/MOC
그런데 제가 '심장을 강타당했다'고 한 건 피아노의 음량이 커서 그랬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론 천둥 같은 음에 심장을 강타당하기도 하지만, 작고 섬세한 음도 심장을 두드립니다. 임윤찬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습 과정을 설명한 적이 있는데, 그의 말도 마치 음악처럼 제 심장을 강타했습니다.

"첫 음이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연습이 아닌 거잖아요."

그는 쇼팽 에튀드 작품번호 25-7번이 까다로워서 '두 마디를 연습하는 데 7시간 넘게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좀 길지만 옮겨볼게요.
 
"저는 그 두 마디를 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생각하고 연습을 실행하는 거라서... … 일단 어떻게 두 마디 하는 데 7시간 연습하느냐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첫 음을 누를 때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그건 연습이 아닌 거잖아요. 그래서 저도 (첫 음인) 솔#을 누르는데 만약 심장을 강타했다 그러면 다음으로 넘어가는 거죠. 다음은 레#으로 넘어가는데, 느낌이 안 오면 계속 그걸 하는 거죠 그냥. 그리고 그 레#이 심장을 강타했다면 첫 번째 음과 두 번째 음을 연결해서 연습하고, 그 연결한 두 음이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다시 하는 거고, 그 부분이 제 심장을 강타했다면 세 번째 음으로 넘어가는 거죠. 세 번째 음만 연습하고 나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음을 연결시켰을 때 심장을 강타하면 네 번째 음도 나오고, 이런 식으로 연습했던 것 같습니다."

임윤찬이 첫 두 마디 연습하는 데 7시간 걸렸다고 한 쇼팽 에튀드 작품번호 25-7번
이 에튀드는 왼손만으로 연주하는 나직하고 느린 멜로디로 시작됩니다. 대단히 어려운 기교가 필요하다고 할 수 없고, 소리가 커서 심장을 강타하는 부분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임윤찬은 이 두 마디를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생각하고 연습한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존경하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말한 것처럼, '음표 뒤에 있는 숨겨진 내용'을 찾으려는 과정의 일부일 겁니다.

임윤찬의 연습은 악보에 표시된 음을 그저 누르는 게 아니라, 온 정성을 다해 그 음을 깊이 느끼면서 '심장을 강타할 정도로' 쳐야 한다는 겁니다. 음을 세게 친다는 게 아니라 그 음이 마음에 울림을 남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한 음 한 음 연습하고, 그 음들을 연결해서 또다시 연습하고,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에 다가간다는 얘기일 겁니다.

그의 스승인 손민수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손민수 교수는 임윤찬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공연 리허설 전날, 테크닉적으로는 완벽한데도 한숨도 안 자고 연습했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임윤찬에게 연습은 '마음을 음악에 담아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임윤찬이 음악이 요구하는 영혼과 캐릭터 속으로 자기 자신을 완전히 밀어 넣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을 터득한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보는 사람까지 하나로 끌어들일 정도로 이 연주의 힘은 강력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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