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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무적자⑤] 죽은 채 25년…다시 '산 사람'이 된 그들을 위해

[취재파일-무적자⑤] 죽은 채 25년…다시 '산 사람'이 된 그들을 위해
어쩌면 "너무 놀랐다"는 답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멀쩡히 살아 있는 내가 법적으로는 죽은 상태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도 내가 알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당연히 놀라고 충격을 받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실제로 겪었던 이에게서 돌아온 답은 좀 달랐습니다. 62살 강 모 씨에게 기자가 '처음 사망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어땠는지'를 묻자 강 씨는 무덤덤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감각하지. 길바닥에 자는데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다시 살아있는 상태로 신분을 회복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하나의 시작일 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 때 강 씨의 말을 듣고서야 처음 했습니다.
 

거리에서 20여 년… 3년 만에 '사망'을 알다


20여 년 노숙 생활을 해 온 강 씨는 3년 여 동안 '법적으로 사망'한 사람이었습니다. 시작은 조현병을 앓았던 강 씨가 요양시설에서 뛰쳐나오면서 부터였습니다. 20대 중반에 조현병이 발병해 가족에 의해 몇 차례 입원을 했었다는 강 씨는, 연계된 정신요양시설 내부에서 노역을 시키는 등 생활이 힘들어 도망을 나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요양원에서 나와 집에 잠시 들렀던 게 마지막, 그 뒤로는 집도 떠나 노숙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대구에는 무료 급식소가 여러 군데 있어요. 거기서 밥을 먹을 수 있어요. 잠자는 건 박스 깔고 지하도에서. 서울에서는 여기 (서울역) 3번 출구. 거기서 잤습니다. 직업소개소 같은 데 가니까 보름이나 10일 일하면 그만두라고 그러고. (중략) 그러다가 무료급식소를 알았어요. 그래서 거기서 얻어먹고…." 시간이 흘러 2007년 서울시 노숙인 지원 시스템에 등록됐지만 지원 서비스는 거부해왔던 강 씨, 2022년 다시 상담원을 통해 서울특별시립다시서기 서울역희망지원센터에 들르게 되면서 여러 지원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더 이상 노숙이 아니라 안정된 거주 공간에서 지낼 수 있게 지원주택을 신청하려고 봤던 그때, 자신이 '죽어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사망처리가 된 건 2019년, 강 씨의 형이 청구한 실종선고가 받아들여져 법원이 실종을 선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종선고를 청구한 형님이 원망스럽거나 섭섭하진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 씨는 첫머리에서처럼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라. 솔직하게 말해서 나 혼자지. 누가 의지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 됐던 강 씨는 센터 등의 도움으로 3년 여 만에 다시 '산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실종선고와 사망신고…법적 사망에 이른 길


무적자

이렇게 인위적으로 그 존재가 삭제되며 이른바 '무적자'가 됐던 사람은 강 씨 뿐만이 아닙니다. SBS는 지난 보도에서 소개해 온, 태생 이래로 무적자였던 사람과 달리 또 다른 '법적 사망자'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 산하 시설 9곳을 통해 확인한 이런 '법적 사망자(이후 신분 회복)'들은 모두 31명이었습니다. 강 씨처럼 실종선고가 내려진 경우가 9명, 사망신고가 된 건 22명이었습니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서 이런 신분 회복 소송을 담당해 왔던 백주원 변호사는 크게 앞서 말한 두 가지, 즉 실종선고와 사망신고 과정으로 이들이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먼저 실종선고는, 원래 주소지 등을 떠난 사람의 생사가 5년 동안 분명하지 않을 때 가족 등 이해관계인이 법원에 청구해 실종에 대한 선고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원은 실종선고 청구를 받은 뒤 법무부나 경찰서 등 각 기관에 사실조회를 통해 이 사람이 교도소에 있는 건 아닌지, 해외로 나간 건 아닌지 등 기초적인 조사를 하고 나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실종선고를 내리면, 앞서 언급한 5년이 종료되는 시점에 해당 인물이 사망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두 번째는 사망신고입니다. 강 씨의 경우처럼 실종선고는 재판을 거쳤다손 치더라도,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사망신고는 어떻게 이뤄졌던 걸까요. 통상 사망진단서나 검안증명서를 제출하면 관공서에서 할 수 있는 게 사망신고입니다. 그 외에 사망사실을 증명할 만한 서면을 제출해도 사망신고가 가능한데, 그 서면 중 하나가 바로 동장 및 통장 또는 인우인 2명 이상이 작성한 증명서 등입니다. 백 변호사는 이런 문서로 사망신고가 가능했던 걸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예전에는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사망하신 경우도 많았고요. 사망 진단서나 검안서를 첨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망신고의 경우에는 인우보증 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인우인 2명 이상이 사망증명서를 작성해 사망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제도인데요, 이렇게 해서 사망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정확하게 어떤 서류가 제출돼 사망신고가 수리됐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아직 생존해 있는 사람에 대해 사망신고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는지, 대략의 추정은 가능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가족과의 단절


취재진이 만난 58살 이 모 씨, 63살 유 모 씨는 앞선 강 씨와는 달리 이렇게 사망신고가 된 경우였습니다. 폐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이 씨는 형제복지원에 입소했던 이후 사망신고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 씨는 올해 63살, 그 가운데 법적 사망 상태로 산 세월이 25년입니다. 1997년 사망신고가 이뤄진 뒤 2022년 다시 신분을 회복할 때까지 사망신고가 된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형제복지원 입소 후 가족 간 연락이 끊겨", "본인 진술로는 동생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고"…. 두 사람이 법적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를 정리한 문서에서 발견되는 문장입니다. 실종선고든 사망신고든, 궁극적으로 사망 처리가 된 이유를 따져보자면 연고자, 즉 가족과의 단절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31명 가운데 23명에게서 이런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자녀들과 연락두절로", "누나와 완전히 단절된 이후", "어느 순간부터 가족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였다고", "연고자 찾지 못해" 등. 가족과의 단절이 요인이 돼 자신이 모르는 죽음까지 이르게 된 겁니다. 단순히 '사망신고', '실종선고'라는 네 글자만 남아 있는 경우까지 그것이 연고자, 즉 가족에 의해 이뤄졌다고 본다면 23명보다 그 숫자는 더 많아집니다.
법적 안정성이라는 가치를 두고 있기에 실종선고나 사망신고 제도 자체를 전면 폐지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가족과의 단절을 그 원인으로 해서, 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두고는 우리가 생각해볼 점이 많습니다. 제도의 변경 외에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일 겁니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사망 사실을 알게 되는 계기 혹은 시점입니다. 대부분 삶의 위기에 끝까지 내몰려서 복지 체계의 마지막 안전망에 걸렸을 때가 자신의 사망사실을 알게 되는 시점이라는 건, 우리가 이런 무적자들을 단순히 '다시 신분 회복만 해 주면 된다'고 생각할 수는 없게 만듭니다.
앞서 취재진이 만난 강 씨도 20여 년 거리 생활 끝에 지원센터를 처음 찾게 되면서 사례관리를 받으며 중단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다시 받기 시작했고 임시주거지원 서비스도 받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종선고가 돼 사망처리 됐다는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이 씨의 경우에도 역시 거리 생활을 오래 하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도움을 받고 사망신고가 됐던 사실을 알게 된 경우입니다. 서울시 구세군브릿지종합지원센터 김영택 기획상담과장은 이 씨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저희 노숙인 지원 시스템상 상담 기록이 2013년도부터는 기록돼 있는데, 그때 얘기를 나눠보자면 그 훨씬 이전부터 노숙을 하고 계신 상태였고. 을지로입구역, 시청역, 서울역 이런 데에서 오래 노숙을 하시다가 항상 위장이 소화가 잘 안 된다는 걸 말씀하시고. 저희도 처음에 개입했던 게 건강이 안 좋아지시니까 기초생활수급을 받게 하기 위해 시도하다가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망 확인이 된 거고." 기초생활수급, 임시주거지원 등을 제공하는 단계에서 사망사실을 알게 됐다면, 신분을 회복하고 나서가 끝이 아니라 처음 의도했던 지원 그 이상으로, 이들을 더 이상 유령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우리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산 사람'이 되었지만


(재등록) 무적자사실확인서

다시 '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실종선고의 경우 다시 실종선고 취소를 위한 심판을 청구해야 하고, 사망신고의 경우엔 이미 사망신고가 이뤄지면서 폐쇄된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해달라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허가 신청을 해야 합니다. 두 경우 모두 가정법원의 재판을 거쳐야 하고, 종국적으로는 판사의 선고로 사망했던 사람의 신분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취재진이 이번에 확인한 31명의 경우 모두 해당 절차들을 밟아 다시 신분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31명 중 20명은 생활시설에, 5명은 고시원에 살고 있고, 1명은 행적불명 상태였습니다. 온전히 자립해 개인이 얻은 전, 월세에서 살고 있는 건 1명에 불과했습니다. 신분회복 자체가 모든 것의 능사는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어쩌면 자신의 사망사실을 처음 전해들은 강 씨도, 자신이 '죽어 있었다'는 사실보다 오늘 밤 어디서 잠에 들지가 더욱 걱정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지 않고, '무감각하다'는 말부터 운을 띄웠을지 모릅니다. 살아도 존재하지 않는 '무적자'이기에 우리가 관심을 가졌지만, 중요한 건 무적자가 몇 명 있었고 어떤 법적 절차로 무적자에서 벗어나게 됐는지 만은 아닐 겁니다. 전면 전수조사 등을 통해 그런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그를 무적자로 빠뜨린 위기 속에서 그가 계속해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무적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지까지를 살펴보는 게 우리의 역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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