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내일(25일)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74년째 되는 날입니다. 당시에 징집 의무가 없었는데도 전쟁터로 끌려간 소년병들이 3만 명에 달하는데요. 이들이 아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예우와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TBC 박정 기자입니다.
<기자>
1950년 8월, 물 길으러 가던 길에 물지게를 빼앗기고 곧장 전쟁터로 끌려간 열다섯살 소년병.
일곱 자리 군번을 받았던 앳된 얼굴의 소년은 이제 아흔을 넘긴 노인입니다.
[장병율/6·25 참전 소년병 : 나이가 열다섯밖에 안됐으니까 붙들려갈 생각도 못 했지. 근데 좌우지간 물지게를 내려놓으래. 따라가니까 가자마자 (전쟁터였다.)]
징집 의무 없는 미성년자에 대한 강제 징집, 대한민국의 인정과 사과를 바랐지만 3만 명 소년병은 역사에서 철저히 잊혀졌습니다.
9년 전 헌법재판소는 소의 제기가 늦었다는 이유로 소년병들의 헌법소원을 각하했고, 16대부터 지난 21대 국회까지 소년병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자동 폐기 수순을 되풀이했습니다.
구순을 넘긴 소년병들이 자비로 꾸려오던 전우회는 흔적 없이 사라졌고, 대한민국의 마지막 소년병 전우회장은 자신들을 기억해달라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떴습니다.
[윤한수/전 6·25 참전 소년소녀병 전우회장 (2021년 6월) : (기록이) 어디 한 군데라도 하나씩 남는다면, 후세에 사학자들이 참고로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게 억울한 몸부림이라고 봐야죠.]
현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소년병 강제 징집의 위헌성을 검토하고 있고, 새로 문 연 22대 국회에서도 또다시 소년병 관련 3법이 발의됐지만 결과를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전 용사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소년병들은 대한민국의 기억에서 사라진 채 고단한 삶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노태희 TBC, 디자인 : 최성언 TBC)
TBC 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