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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온두라스에서 '억울한 옥살이'한 한지수…500일 만에 가족 품에 돌아올 수 있던 사연은?

꼬꼬무

지수 씨가 억울하게 갇힌 이유는?

2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작전명: 집으로'라는 부제로 해외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한지수 씨의 사건을 조명했다.

지난 2009년 8월, 한지수 씨의 가족들은 이집트에서 미국으로 오기로 한 그가 사라져 버렸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집트에서 스킨스쿠버 강사로 일하던 한지수 씨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는데 공항 어딘가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것.

이에 가족들은 지수 씨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답만 받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지수 씨의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란 여성이라는 그는 "유어 시스터 이즈 인 프리즌!"이라며 지수 씨가 인터폴 유치장에 갇혀있다고 밝혀 충격을 자아냈다.

이에 가족들은 인터폴에 지수 씨에 대해 검색을 했다. 그랬더니 실제로 그가 인터폴에 갇혀있으며 적색 수배령이 내려져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체포된 이유가 살인이라 이를 확인한 가족들은 충격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1년 전 지수 씨는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스킨스쿠버 다이버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온두라스로 향했다. 온두라스에 위치한 로아탄섬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온두라스는 세계에서 살인율이 1, 2위를 다툴 정도로 치안에 취약한 곳이었다.

그러나 지수 씨는 꿈을 위해 그곳으로 떠났고 무사히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런데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얼마 전 뜻밖의 일에 휘말린다.

하우스 메이트 댄이 자신의 수강생이었던 네덜란드 여성인 마리스카와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고, 그날 상상하지 못한 사망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단순 사고사로 밝혀지고 댄과 지수 씨는 무사히 풀려나 각각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그런데 사건 발생 1년 후, 단순 목격자이자 구명에 힘썼던 지수 씨가 마리스카의 살인 혐의로 체포된 것이었다. 이집트에서 미국으로 가기 위해 카이로 공항으로 갔던 지수 씨는 여권 심사대에서 곧바로 체포된 것.

이후 지수 씨는 인터폴 유치장에 갇혔고 이에 침착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영사와의 만남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이에 지수 씨는 그곳에서 만난 여성에게 가족들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고 그의 언니가 연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유치장 감금 일주일째가 되던 날 이집트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나온 영사는 지수 씨가 갇힌 이유를 밝혔다. 마리스카 살인 혐의로 온두라스 경찰이 기소했다는 것. 온두라스 경찰은 그가 댄과 공모해서 마리스카를 살해했으며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있다고 했다.

그들이 밝힌 증거는 2차 부검보고서였다. 급성 뇌부종으로 사망했다던 1차 부검보고서와는 다른 내용의 부검보고서가 등장하자 지수 씨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2차 부검보고서에 따르면 마리스카의 몸에 남은 상흔이 방어흔이며 사인은 경부 압박 질식, 그리고 방어흔으로 추정했을 때 범인은 2명 이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지수와 댄은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었던 것이다.

온두라스 경찰은 둘은 연인 사이였고 댄이 다른 여자를 데려오자 지수가 화가 났고 세 사람이 다투던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에 지수 씨는 말이 안 된다며 한국에 가서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하지만 한국에 갈 수 없다는 영사. 제3 국에서 체포가 될 경우 국제경찰들 간의 공조 원칙에 따라 요청 국가로 인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인데 당시 체포 요청 국가가 온두라스. 이집트 정부는 온두라스로 지수 씨를 인도하는 것이 자신들의 정책이었던 것이다.

유치장에 갇힌 지 3주 만에 온두라스로 가게 된 지수 씨. 하지만 그를 태운 비행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지수 씨는 네덜란드 명예 총영사 클럭을 만났다. 그는 지수 씨를 빤히 쳐다보더니 "댄은 지금 어디에 있죠? 지금 연락하고 있냐?"라고 물었다.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모든 절차에 참관했던 클럭은 사실상 거의 감시자 역할을 했다. 이에 전문가는 피해자의 국가인 네덜란드 정부에서 온두라스 정부에 뒤늦게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압력이 충분하게 온두라스 정부에 가해지지 않았나 싶다고 당시의 상황을 추측했다. 또한 그 배후에는 총영사 클럭의 입김이 확실하게 존재했던 것이라고 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은 마리스카가 네덜란드 유명 재력가 집안의 딸이었던 것. 딸의 죽음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 가족들은 어떻게든 범인을 잡고 싶어 했고 이에 온두라스 경찰에 강력하게 재조사를 요청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2009년 9월 23일, 1년 만에 살인 용의자가 되어 로아탄섬으로 돌아온 지수 씨. 그런 지수 씨는 재판 중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대사관에서 선임해 준 변호사가 있음에도 온두라스의 군사 쿠데타 발발로 재판에 오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절차 속에 재판이 진행되었고 지수 씨의 구속이 결정되었다. 온두라스 재판부는 지수 씨의 살인을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있고 그가 외국인이라 도주의 위험도 있다며 구속을 확정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댄은 체포 조차 되지 않고 지수 씨만 재판을 받는 황당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지수 씨의 가족들은 그의 구속만은 면하게 하기 위해 정부는 신병확보를 위한 보증을 요청했다. 그러자 정부는 어떠한 서면 보증도 제공할 수 없다며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수 씨는 원칙이 전무한 흉악범들의 왕국인 온두라스 감옥에 구속되었다. 하루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던 지수 씨는 매일을 가족들을 그리워했다. 언제 죽임을 당해도 모를 교도소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만약 유죄가 인정되면 30년 복역을 해야 하는 지수 씨를 버티게 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지수 씨의 충격적인 소식에 단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온두라스로 온 그의 아버지. 그는 매일같이 딸을 면회했다.

딸을 잘 봐달라는 의미에서 매일 콜라와 화장품을 챙겨갔고 매일매일 딸을 위로하고 응원했다. 그런 아빠의 노력에 하늘도 감동했을까. 얼마 후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다.

지수 씨의 사건을 취재한 방송이 전파를 탔고 뜨거운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며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이들도 등장했다.

한 국회의원은 나서서 지수 씨의 상황을 장관 회의에서 언급하기도 했고, 이에 정부는 긴급 대응팀을 꾸려 지수 씨를 데려오기 위한 작전을 시작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 경찰 영사 출신 경감, 국과수의 전문 법의학자 등 총 8명이 모인 긴급 대응팀은 지수 씨의 구명을 위해 온두라스로 급히 파송되었다.

그리고 지수 씨의 구속을 풀기 위해 온두라스에서 오래 거주하고 있던 박명하 목사가 신원 보증을 자처하고 나섰다. 한인들은 지수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추천서, 청원서, 탄원서 등 각종 서류에 서명을 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도움으로 지수 씨는 2009년 12월 가석방 조치를 받았다. 교도소 생활 3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 후 긴급 대응 팀은 지수 씨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2차 부검 보고서는 조사할수록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특히 이것이 작성된 일자는 지수 씨가 온두라스로 이송된 날짜인 것으로 확인되어 충격을 안겼다. 증거가 있어서 체포한 게 아니라 체포한 후 증거를 만들어냈던 것이었다.

조작 가능성이 큰 부검보고서에 조사팀은 부검의를 추궁했다. 대답을 거부하는 부검의. 그리고 담당 기관은 표현이 다를 뿐 1차와 2차 보고서의 내용이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부검의 자격증도 없고 부검 경험도 없던 산부인과 의사에 의해 쓰인 2차 부검보고서. 이것과 다른 증거들을 바탕으로 조사팀은 지수 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체포 후 416일 만의 재판에서 드디어 무죄 판결을 받은 지수 씨. 그는 이후 액 500일 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건 15년 만인 현재의 지수 씨를 만난 제작진. 그는 "그 일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약해져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는 것은 기쁘지만 기쁨을 즐길 만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라며 "나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했다는 죄책감이 컸다. 내가 잘못을 크게 했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고 나는 빚을 졌다는 생각에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변해버린 가족들을 보며 죄책감에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다시 힘을 내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지수 씨. 그는 그때의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 당시의 아빠한테 갈 수 있다면 아빠 덕분에 잘 나와있어. 너무 염려하지 말아라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회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헌법 조항을 언급하며 "국가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지금도 간절히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이 없는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BS연예뉴스 김효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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