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링' 된 이탈리아 의회…'자치권 확대' 갈등에 주먹다짐까지

지방정부 자치권 확대를 둘러싼 이탈리아 정치권의 해묵은 갈등이 여야 의원 수십 명이 주먹다짐을 벌이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13일(현지시간) AFP통신과 AP 통신에 따르면 전날 저녁 이탈리아 하원에선 제2야당 오성운동(MS5) 소속 레오나르도 돈노 의원이 우파 정당 '동맹' 소속인 로베르토 칼데롤리 지방자치부 장관의 목에 이탈리아 국기를 거는 돌발행동을 보였습니다.

원하는 지역에는 더 많은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현 정부 정책이 이탈리아의 통합에 해가 된다는 본인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한 퍼포먼스였습니다.

오랫동안 분열돼 있다가 1861년에야 하나의 국가로 통일된 이탈리아는 지역별로 문화·언어적 이질성이 큰 편입니다.

특히 공업이 발달한 북부와 낙농업 중심의 남부는 소득격차가 극심합니다.

부유한 북부 지역은 피땀 흘려 번 돈이 '게으른 남부'의 복지 예산으로 쓰인다며 자치권 확대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고, 조르자 멜로니 총리를 중심으로 한 여권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올해 초 상원에서 지방자치법안을 처리했습니다.

이후 해당 법안은 하원으로 송부됐고, 지방정부에 재정 통제권을 비롯한 핵심 권한을 놓고 중앙정부와 협상할 권한을 줄 것인지를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이 격화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돈노 의원이 보인 퍼포먼스는 갈등 폭발의 '방아쇠'가 됐습니다.

이탈리아 북부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동맹 소속 의원들은 일제히 몰려나와 돈노 의원을 둘러쌌고, 약 20명이 뒤섞여 몸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바닥에 밀려 쓰러진 돈노 의원은 이후 동료 의원들이 모는 휠체어에 탄 채 하원 건물을 나와 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은 '동물국회'를 방불케 하는 이번 사건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일간 라레푸블리카는 하원에서 폭력을 휘두른 의원들을 1차 세계대전 직후 백색테러를 일삼다 이후 베니토 무솔리니를 추종하는 준군사조직으로 발전한 '행동대'에 빗댔고,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는 하원이 '복싱 링'이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하지만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FdI)과 동맹 등 연립여당 소속 의원들은 돈노 의원의 도발이 이번 사건을 촉발했으며, 그가 휠체어에 탄 것도 '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