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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기 중단에 망가진 일상…'계단 공포증' 덮친 아파트

승강기 중단에 망가진 일상…'계단 공포증' 덮친 아파트
▲ 관리사무소에서 도움 청하는 주민

"아내가 치매를 앓고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안 움직이니 병원도 못 가.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13일 인천시 중구 항동7가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만난 김 모(85) 씨는 주름진 손을 휘저으며 관리실 직원에게 간절히 도움을 청했습니다.

낮 최고 기온이 28도까지 오른 무더위 속에서 김 씨는 야윈 몸을 이끌고 9층 자택부터 1층 출입구까지 힘겹게 계단으로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치매가 있는 아내(81)를 집에서 홀로 돌보고 있는데 1주일 전부터 이곳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운행이 전면 중단되면서 곤경에 처했습니다.

김 씨는 "치매 환자 필수품인 기저귀나 경관식을 택배로 시켜도 집 앞까지 배송이 안 되니 내가 계단을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방문 요양보호사마저 못 온다고 할까 봐 너무나 불안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준공 후 34년이 지난 이 아파트에서는 승강기 정밀안전검사 불합격에 따라 8개동 승강기 24대가 지난 5일부터 모두 멈춰선 채 운행을 못하고 있습니다.

승강기 운행 중단 이후 608세대 주민들의 일상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단지 곳곳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계단을 걸어 내려온 노인들이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고 경비실 안에는 택배 물품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11층에 거주하는 이 모(38) 씨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자녀를 계단으로 등원시킬 수 없어 가족이 소유한 인근 원룸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이 씨는 "계단으로 다니기 너무 위험해서 급하게 집을 나왔다"며 "남편은 집에서 출퇴근해 평일에는 아이들과 거의 못 만난다"고 말했습니다.

한 70대 주민은 "외출하거나 귀가할 생각만 하면 정말 끔찍한데 그렇다고 집에만 있으면 공황장애처럼 불안 증상이 나타나 힘들다"고 했습니다.

인천시 중구 항동7가 모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운행 금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는 모습

주민들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 측에서 사전에 별다른 고지 없이 한순간에 승강기 가동을 중단했다며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게다가 인천 원도심에 있는 이 아파트에는 고령층이 많이 살고 있어 위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신속한 대처가 어려울 것이라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부녀회장 최재숙(72) 씨는 "승강기 운행을 중단한다는 방송이 나오고 5분 후에 바로 전원이 꺼졌다"며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제도 응급환자가 발생했는데 아파트 측은 과태료를 우려해 승강기 운행을 거부했다"며 "법이 있어도 사람이 먼저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지난 7일에는 아파트 4층에 사는 80대 남성이 의식장애를, 전날에는 13층 주민인 80대 여성이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했습니다.

소방 당국은 아파트 승강기 전체가 운행을 멈추자 환자 이송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고층 환자 발생 시 출동 인원을 보강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응급환자 발생 시 임시로 승강기를 가동하는 조치를 하기로 했으나 관련법을 어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안전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승강기를 가동할 경우 관련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가동이 중단된 지 8일이 지났으나 정밀안전검사 재검사를 위한 승강기 부품 교체 작업이 늦어지면서 불편은 가중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관리사무소는 조속히 자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오는 9월까지도 공사를 완료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아파트관리사무소는 엘리베이터에 안전 부품을 설치하기 위해 업체와 계약을 했으나 자재 수급 등에 어려움이 있어 공사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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