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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위기에 딸과 생이별…섬마을 '기러기 아빠'의 사연

폐교 위기에 딸과 생이별…섬마을 '기러기 아빠'의 사연

"딸이 학교에 입학해도 어울릴 친구 하나 없이 과외 형태의 수업을 받을 텐데 교육상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족과 떨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서해 북단 인천 소청도에 사는 나 모(37) 씨는 올해 첫째 딸을 다른 섬에 있는 초등학교로 보낸 이유를 덤덤하게 털어놨습니다.

소청도에서만 23년을 생활하며 딸 셋을 키우던 나 씨는 지난 3월 첫째 딸과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섬 내 유일한 초등학교인 소청분교 대신 인근 대청도에 있는 대청초로 입학시켰기 때문입니다.

나 씨가 졸지에 '기러기 아빠'가 된 것은 소청분교가 2020년부터 학생을 확보하지 못해 휴교에 들어가며 간신히 명맥만 유지 중인 탓이었습니다.

신입생이 있을 경우 이 학교는 다시 문을 열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딸이 학교의 유일한 학생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나 씨는 "학생이 1명뿐이니 혼자 학교에 다니게 두는 게 내키지 않았다"며 "내가 가족과 떨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첫째 딸은 엄마와 함께 대청도에서 생활하고 있고 둘째·셋째 딸도 대청도에서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습니다.

대청도와 소청도를 오가는 배편이 하루 3번에 불과하다 보니 평일에는 딸들이 아무리 보고 싶어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나 씨는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소청도에서 유일하게 어린 자녀가 있는 지인은 2주에 한 번씩 육지에 있는 아들을 보러 간다"며 "여건상 섬에서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빈 교실

올해도 신입생을 받지 못한 소청분교는 최근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결국 폐교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나 씨를 포함한 섬 내 예비 학부모 2명은 모두 소청분교 폐교 여부를 묻는 인천시교육청 조사에 동의 의사를 밝혔고 다른 주민들도 어쩔 수 없이 폐교에 찬성하는 의견을 냈습니다.

인천은 인구 300만 명에 달하는 대도시이지만, 지방소멸 적신호 중 하나인 폐교 증가 문제가 중대한 현안 중 하나입니다.

유인도가 40개에 이르다 보니 소규모 섬마을이나 접경지를 중심으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폐교 위기가 육지보다 훨씬 빠르게 닥치고 있는 것입니다.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인천에서 폐교한 학교는 용유초 무의분교, 교동초 지석분교, 서도초 볼음분교, 서도중 볼음분교, 교동도 난정초교 등 5곳으로, 모두 섬 지역에 몰렸습니다.

현재 인천 섬 지역에 있는 남은 분교는 모두 7개이지만 소청분교가 문을 닫을 경우 승봉도·영종도·이작도·신도·자월도·장봉도 등 6곳만 남게 됩니다.

이 중 승봉도에 있는 주안남초 승봉분교의 경우 2019년부터 각각 재학생과 신입생을 받지 못해 휴교 중입니다.

다른 학교들 역시 올해 기준 전교생이 적게는 6명에서 많게는 14명 수준이어서 사실상 폐교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섬 주민들은 폐교로 인해 젊은 인구 유입이 완전히 단절되는 상황 등을 우려해 학교 존치에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재학생 확보에 뾰족한 방법이 없어 아쉬움만 삼키고 있습니다.

소청도 주민 이 모(76) 씨는 "과거에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학교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며 "젊은 층이 계속 줄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토로했습니다.

교실 풍경 (사진=연합뉴스)

교육 당국은 주민 동의 없이 폐교를 추진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장기적인 방치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주민 설득에 나서고 있습니다.

시교육청은 폐교가 확정될 경우 섬 지역 예비 학부모에게 교육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는 데다 학교 재배치를 통해 더 나은 교육 여건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시교육청은 한편으론 교육·도시계획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폐교 활용 자문단'을 발족해 지역 특색을 반영한 폐교 활용 방안을 꾸준히 논의하고 있습니다.

섬마을 정주 여건이나 접근성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폐교 극복 방안을 찾는 것보단 교육·문화시설로서 대안을 찾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인천에서는 폐교 59개 가운데 40개가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매각됐고 8개는 시교육청 직속 교육시설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다른 7곳은 주민 편의시설이나 박물관·캠핑장 등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나머지 4곳은 시교육청이 계속 활용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김경배 인하대 건축학과 교수는 "폐교가 당장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이 공간을 방치하지 않고 활용성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는 섬 지역을 활성화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컨대 영화 '섬마을 선생' 촬영지인 대이작도 계남분교를 복원해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처럼 문 닫은 학교를 섬 체류형 관광과 연계해 되살리는 모습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인천시 옹진군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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