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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류의 발자취를 좇아 12년째 걷다 깨닫게 된 비밀!

-SDF다이어리 Ep. 201

sdf다이어리 섬네일 인류의 발자취를 좇아 12년째 걷다 깨닫게 된 비밀!
안녕하세요? 지적인 당신을 위한 인사이트, SBS D포럼에서 보내드리는 'SDF다이어리'입니다. 여러분은 남들이 소위 미친 짓이라고 부르는 담대한 도전을 얼마나 하고 계신가요?  SDF다이어리의 슬로건이 '미래를 여는 담대한 도전'인데요. 오늘은 SDF다이어리 슬로건에 너무나 딱 들어맞는 한 분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2013년부터 인류의 발자취를 좇아 아프리카에서부터 걷고 있는 폴 살로펙이라는 미국 언론인인데요. 이번주 한국 입국을 앞두고 지난달 SDF다이어리에서 먼저 만나봤습니다.
인사이트
폴 살로펙 프로필
폴 살로펙 줌 인터뷰 샷
<지난달 21일 폴 살로펙 기자를 인터뷰 중인 이정애 SBS 미래팀장>

Q.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어디에 계신가요?
지금은 잠시 공식적인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중국 땅을 걸었고요. 지금은 코카서스 3국 [1]의 하나인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재충전을 하고 있습니다.

[1] 코카서스 3국은 서아시아 캅카스산맥에 위치한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의 세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Q. 아프리카에서 유럽, 아시아를 거쳐 남미까지 걷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신 것인가요?
아프리카에서 9년 정도 특파원 생활을 했고, 중동 지역이나 중앙아시아 쪽 분쟁도 많이 취재했습니다. 그런데 특파원으로 특정 지역의 기후 위기이든, 사회정의든 경제적 불평등이든 관련 사건을 다루게 되면, 대개는 현장에 특파돼 재빠르게 취재하고 그 지역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러한 취재 방식과 속도를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속도를 시간당 5km 정도로만 늦출 수 있다면 제가 다루는 이야기들 속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볼 수도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폴 살로펙 걷는 여정

"우리 모두는 이주민의 후예"

Q. 그러한 생각이 호모 사피엔스의 발자취를 따라 걷겠다는 아이디어로는 어떻게 연결된 것인가요?
저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해 진화, 유전자, 고고학 등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석기시대에 우리 인류가 아프리카에서부터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러한 배경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고민하다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공통의 경험은 아프리카에서부터 뻗어 나간 호모 사피엔스의 이주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에덴을 떠나’ 걷는 여정으로 잡았는데요. 종교에서 따온 표현이지만 당시 과학계에서도 인류의 기원이 되는 유전자를 ‘미토콘드리아 이브’ [2] 등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은유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아마도 다르게 이름 지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인류유전학에서 미토콘드리아 DNA의 변이를 거슬러 올라갈 때 상정할 수 있는 현존하는 모든 사람의 한 명으로 수렴하는 모계 조상을 의미한다. 분자시계와 분자계통 연구를 통해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약 14만~20만 년 전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동부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Q. 지금이라면 뭐라고 명명하셨을까요?
글쎄요. 현재 쓰고 있는 책의 가제는 ‘ Forever Walk’ (영원한 걸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때로부터 이어온 여정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의 여정은 아프리카에서부터 남아메리카까지지만 우리 인류의 조상은 남아메리카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게 과학을 통해서든 예술을 통해서든 이 세상을 여전히 탐험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폴 살로펙 에티오피아 사진
<폴 살로펙이 북부 에티오피아의 아파르 지역을 걷고 있다.
촬영: 존 스탠마이어 ⓒ아웃오브에덴웍. 내셔널지오그래픽>

Q. 프로젝트의 시작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잡은 것은 지금까지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3]이 거기서 발견됐기 때문인가요?
네, 아프리카를 걸었던 우리의 조상들은 수렵, 채집인이었습니다. 가난을 모면하기 위해, 또 가뭄 같은 기후위기를 피해 어떤 동물이든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사냥해 잡아먹고 그다음 고원을 향해 나아갔겠죠. 한 방향으로만 간 것도 아닙니다. 사방으로 이동했는데요. 저는 그 가운데 한 루트인 북부 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넘어가는 상대적으로는 좀 짧은 루트를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3만 5천 킬로미터 정도 되니 꽤 먼 거리입니다. 지금까지 2만 4천, 2만 5천 킬로미터 정도 걸었네요. 처음 계획은 7년 안에 마치는 것이었는데 실상은 두 배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이나 다음 주 어디를 가고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가는 길에 현지인들과 동행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취재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현지 가이드와 같이 걷고 있는 폴 살로펙
<에티오피아 현지 가이드 아흐메드 알메라 헤산과 같이 걷고 있는 폴 살로펙,
촬영: 존 스탠마이어 ⓒ아웃오브에덴웍.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이 걸으면서 자기네 역사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문화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먹어보지 못한 로컬 음식을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낙타 유목민들과도 걸었고 예술가들과도 걸었고 인도주의 활동가들과 걷기도 했습니다. 혼자 하는 여정은 아니고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인 우리 모두가 서로 지적 교감,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면서 같이 하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3] 지금까지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97년 에티오피아 아파르(Afar)에서 발견되었다. 강 주변의 저습지에서 어른의 머리뼈 2개와 아이의 머리뼈 1개, 그리고 수 백점의 석기와 동물 뼈 등이 발견됐는데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15만 4천 년에서 16만 년 전의 화석으로 밝혀졌다.

Q. 지금까지 여정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아마도 우리의 선조들도 석기시대 아프리카에서 이주하면서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리적인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고 사막이나 높은 산, 눈이나 빙하 같은 지리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주가 중단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제가 겪은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닐 텐데요. 저는 사실 정치적인 이슈가 더 컸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국경을 넘어가야 해서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비자를 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란에서 비자를 내주지 않아 결국은 코카서스 국가들 쪽인 이란 위쪽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것도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지요. 그리고 또 다른 어려움은 걸으면서도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당 5km씩 걸으면서 취재하고 규칙적으로 기사를 쓰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일주일에 한 건, 혹은 이주일에 한 건씩 기사를 송고해야 했는데요. 녹초가 된 상태에서 텐트에 앉아 혹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밤 10시 넘어 남들 다 자기 시작할 때부터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도 쉬운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터키 남동부 실리안 평야의 폴 살로펙
<터키 남동부의 실리안 평야에서, 촬영: 데니즈 킬릭 ⓒ아웃오브에덴웍. 내셔널지오그래픽>

하지만 사실 저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남성이고, 백인이고, 돈도 약간 있고, 특정 국가의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평균적인 일반인들보다는 조금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상대적으로는 걷는 것이 조금은 더 쉬웠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문제적 상황도 있었고, 무서운 상황도 있었고, 위험한 상황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총을 겨눈 사람도 있긴 했습니다. 

튀르키예 접경 시리아 코바니라는 지역이 ISIS(이슬람극단주의무장단체)의 공격을 받던 상황이었는데요. 튀르키예 국경으로 엄청난 피난민들이 밀려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당나귀에 짐을 얻고 가고 있으니 터키의 쿠르드 민병대가 제가 ISIS의 한 명인 줄 알고 총을 겨누면서 손 들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때도 잠시 후 상황이 파악된 뒤에는 자신의 땅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반갑게 인사해 주었습니다. 평소 해외특파원들이 겪게 되는 것과 비교해서 더 위험했다고는 느끼지 않았습니다.

Q. 코로나19가 터지면서도 일정이 늦춰졌을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코로나 때는 어디 계셨나요?
북부 미얀마에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미얀마로 막 건너와 미얀마 북쪽의 맨달레이라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저희도 이게 뭔지 잘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국경들이 폐쇄되기 시작했고, 저는 북부 미얀마에 몇 달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때가 2020년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였는데요. 내전이 너무 격화되면서 결국은 안전이슈 때문에 그곳에 계속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중국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중국에서 미얀마 국경까지 날아와 미얀마 국경에서부터 다시 중국 쪽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12년 걷는 여정 중 비행기를 탄 것은 그때가 유일합니다. 
미얀마에서의 살로펙
<2021년 미얀마를 떠나면서 올린 기사. 사진은 양곤의 시위대가 민주화 상징인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
촬영: 폴 살로펙 ⓒ아웃오브에덴웍. 내셔널지오그래픽> 링크는 -->(클릭!)

Q.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슬로우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신다고요?
일종의 ‘몰입 저널리즘’ 혹은 한동안 특정 대상과 시간을 오래 같이 보내는 ‘문학 저널리즘’과도 비교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사람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인 아프가니스탄의 어떤 이야기를 취재한다고 가정하면요. 만약 제가 특파원으로 파견돼서 이야기를 다룬다면 현지 코디를 고용하고 차를 렌트해서 통역과 함께 공항에서 만나 마을로 가서 인터뷰하고 호텔로 돌아가서 기사를 쓰든 일주일 뒤 집으로 돌아가서 기사를 쓰겠죠. 그런데 걸어서 그 지역을 들어가게 되면 몇 주를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듣는 이야기만 많아지는 게 아니라 그들과 같이 밥도 먹고, 집으로 초대될 수도 있고, 전통적인 방식의 취재에 비해 훨씬 더 풍요롭고 사안에 대한 이해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만 많아지는 게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 문화적인 부분, 개인적인 스토리까지 훨씬 더 많은 사안들을 담게 되는 것이죠. 만약 그게 기후위기의 이야기였다면 그렇게 알게 된 개인의 관점에서 다루기 때문에 훨씬 더 파워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특정 이야기에 걸어 들어오고 나오면서 특정한 연결성을 갖게 됩니다. 기후 위기의 이야기는 경제 이야기와 연계가 되고 다시 건강의 이야기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각각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담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언론사에서는 환경 이야기, 공공의료 이야기, 전쟁이야기, 기후위기 이야기 하는 식으로 영역을 나누게 되는데요.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이렇게 딱딱 영역별로 나눠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서로 연결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데요. 그러한 사안의 중심을 걸어가다 보면 연결의 방향성이 보이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보입니다.
슬로우 저널리즘
<슬로우 저널리즘에 대해 설명하는 폴 살로펙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영상> 링크는 -->(클릭!)

나의 최종 목적지는 "사람"
"성별, 인종, 문화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Q. 올해 저희 SBS D포럼의 주제가 ‘분열과 소멸의 시대, 다시쓰는 생존 전략’인데요. 실제로 대륙을 넘어 걸으면서 느끼기에 정말 우리 심각할 정도로 분열돼 있다고 느끼시는지, 이 시대 필요한 생존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연결하는 힘을 믿습니다. 제가 걸으면서 전하는 사람들 이야기에 공감하는 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의 이야기에 공감한 우루과이의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고, 캐나다나 조지아의 누군가에게 그 얘기가 와닿으면서 새로운 연결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의 목적지는 남아메리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저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저는 매일매일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을 향해 걷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저는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뿐 아니라 철학적으로 영적으로 문화적으로 유전적으로 훨씬 더 연결돼 있음을 느낍니다.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대륙의 어느 나라 사람이건 충분한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보면 성별, 문화, 인종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같은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안심되는 발견인지 모릅니다. 

저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분열은 정치적인, 혹은 이념으로 인한 상상의 분열이지 실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슬로우 저널리즘을 통해 지속적으로 피난민이든, 전선의 반대쪽에 있는 군인이든 우리 모두는 같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2년간 걸으면서 경험한 실증적인 사실입니다. 이러한 공통점에 기반한 연결고리들, 작은 다리들을 우리는 지속해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Q. 걸으면서 느끼기에 사람들 간 공통점이 더 많았다는 말씀이신 거죠?
놀라울 정도입니다. 누군가의 마을에 기차나 차로가 아니라 걸어서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들도 당신의 존재를 멀리서부터 인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중국의 한 중소도시 바깥에서 오렌지를 팔고 있는데, 제가 걸어오는 것을 본다고 가정해 봅시다. 뭔가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외간의 백인 남자임을 발견할 텐데요.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제 손에 무기 같은 위험요소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호기심이 발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오렌지를 사는 동안 잠깐 얘기를 나누면서 제가 아프리카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하면 처음에는 대개 믿지 않거나 하하하 웃으면서 미쳤네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실인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가능했는지 같은 다른 질문들로 바로 이어집니다. 어디서 자냐? 신발은 뭘 신냐 등등 말이죠. 그리고 헤어질 때는 나도 따라가고 싶다는 약간의 동경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러한 노마드의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에서 느끼는 많은 불행이나 불만들은 어쩌면 우리가 걷기를 멈추고 앉기를 선택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폴 살로펙이 여정이 궁금하다면?
<폴 살로펙의 여정이 궁금하거나 동참하고 싶다면?
이 사이트의 이메일로 연락하세요!> 링크는 -->(클릭!)

Q.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저의 여정에 동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당신도 당신의 주변을 걸어보세요. 걸어서 출근할 것을 제안합니다. 만약 거리가 너무 멀면 지하철 한 정거장 전에라도 내려서 걸어보세요. 핸드폰은 내려놓으시고요. 당신이 현재의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더 제대로 깨어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변의 온도도 느끼고 주변의 냄새, 색도 더 잘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회사에 도착하면 당신은 이미 사냥꾼의 모드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일도 더 잘할 수 있겠죠. 그리고 다른 방법은 저의 여정을 같이 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아웃오브에덴웍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저의 여정을 같이 해주실 수도 있고, 저에게 궁금한 것이 있거나 저랑 같이 걷고 싶은 분은 메시지를 보내주셔도 됩니다. 저는 6월 4일 인천항을 통해 입국 예정인데요. 인천에서 조금 머무르다가 10일 정도부터 한국에서의 걷기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인천에서 DMZ를 거쳐 서울에서 부산으로 2달에서 2달 반 정도 걸을 예정입니다. 한국인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한국 도착한 폴 살로펙
<드디어 한국 도착! 폴 살로펙이 어제 전해준 인천항에서 숙소로 걸어가는 모습!> 촬영: 폴 살로펙
생각하는 D

"지금의 역경도 우리 호모사피엔스의 후예들은
똘끼로 이겨낼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우리 인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네안데르탈인의 DNA 전부를 밝혀내 유명해진 유전학자 사반트 파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요. 몇 년 전 한 언론인이 사반트 파보에게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자신의 연구에 따르면 네안데르탈인은 가다가 바다가 나오면 바다를 피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이동했는데, 호모 사피엔스는 바다에 다다르면 대개는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하게 바다를 피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갔지만 일부는 통나무를 바다에 띄워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동남아시아의 섬에도 정착하고, 호주에도 정착하게 됐다는 것인데요. 어떻게 보면 호모 사피엔스는 조금 미친 구석이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였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힘든 상황을 맞고 있는 우리도 호모 사피엔스의 미친 똘끼 DNA로 이 상황을 또 극복해 나갈수도 있지 않을까 모처럼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글 : 미래팀 이정애 기자 (calee@sbs.co.kr)
 
*SDF 다이어리'는 SBS 보도본부 미래팀에서 작성하는 뉴스레터입니다. 우리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화두를 앞서 들여다보고, 의미 있는 관점이나 시도를 전합니다. 한 발 앞서 새로운 지식과 트렌드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은 매주 수요일 발송되는 SDF 다이어리를 구독해 주세요. → 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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