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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한 방울 안 나는 '뇌 수술'…세계 최고인데 "할수록 손해" [스프]

[주간 조동찬]

조동찬 주간 조동찬
한 방울의 출혈도 없는 뇌 수술

머리뼈를 살포시 걷어 낸 후 집도의가 수술 확대경의 초점을 다시 맞추자 흐릿하던 화면이 또렷해졌다. 은빛을 띤 뇌막을 동그랗게 오려내자 뇌가 리드미컬하게 팡팡 튄다. 자신이 아직 건강함을 알리는 것이다. 뇌는 건강할 때 심장 박동에 맞춰 같이 튀지만 심하게 다치면 뇌 박동은 희미해진다.

노련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뇌 수술 전, 뇌 박동 상태만으로 환자의 예후를 예측한다. 박동이 희미한 뇌는 수술하기도 어렵고, 예후도 좋지 않아 의사의 심기는 불편해진다. 반면 뇌가 팡팡 잘 튀면 집도의에게 엔도르핀이 솟구치는데, 수술만 잘 되면 환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화면에 등장한 환자의 뇌는 잘 뛰고 있었다. 희면서도 밝은 살색은 뇌 실질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는 걸 의미한다. 뇌는 흔히 두부처럼 묘사되곤 하지만 두부보다 엄청나게 부드러우면서도 훨씬 더 꽉 차 있다. 게다가 수많은 혈관으로 채워져 있다. 성인 뇌의 무게는 1.2kg에 불과하지만, 심장 혈액의 1/4이 뇌로 공급되는 걸 생각해 보면 뇌 수술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혈관 덩어리와 마주하는 일이다.

이런 까닭에 뇌 수술을 잘하려면 터진 혈관을 전기 장치로 잘 지지는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압력이 높지 않은 정맥은 잘 지져지지만, 압력이 높은 동맥은 잘 지혈되지 않기 때문에 아예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그럼에도 혈관 덩어리인 뇌를 수술하면서 피를 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뇌 수술을 하는 동안 피를 한 방울도 내지 않고 있죠. 정맥도 건드리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피를 한 방울도 내지 않으면 환자의 합병증 위험도는 제로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집도의는 뇌세포를 살살 달래가며 뇌동맥류가 있는 깊은 자리까지 공간을 확보했다. 수술 전 뇌혈관 영상으로 파악했던 뇌동맥류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것의 전-후-좌-우를 매끄럽고 유연하게 살핀다. 수술 전 검사로 확인한 것과 달리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실제 동맥류에는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맥류에 붙어 있는 작은 정맥들을 섬세하게 분리해 낸다.

"예전에는 이곳의 가는 정맥들이 터지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게 포인트입니다."

그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슬라이드를 바로 이어갔다. 뇌동맥류 수술을 받은 환자의 수술 후 뇌 CT 사진이었는데, 수술 부위 주변에 출혈이 고여 있었다.

"정맥을 건드린다고 해도 이렇게 출혈이 생기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정맥을 건드리지 않으면 뇌출혈 합병증은 거의 없습니다."

나는 신경외과 교과서는 물론 세계 어느 학회 동영상에서도 무출혈 뇌동맥류 결찰술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학회장에 있던 동료 신경외과 뇌혈관 전문의들은 '자신들도 같은 이유로 무출혈 수술을 목표로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동찬 주간 조동찬

그가 거대 뇌동맥류에 코일을 넣지 않은 이유

요즘 뇌동맥류는 두개골을 열고 수술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 대신 뇌혈관을 통해 코일을 동맥류에 충전시킨다. 뇌 중재술이라고 하는데, 뇌동맥류 속 코일은 방파제가 파도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동맥의 혈압이 뇌동맥류로 전달되는 힘을 약하게 해 뇌동맥류가 찢어지는 걸 막아 준다. 예후가 같다면 두개골을 열고 수술하는 것보다 팔이나 다리 혈관을 조금 째고 코일을 넣는 게 나을 것이다. 게다가 동맥류가 아주 크다면 수술하다가 찢어지기도 쉽고 결찰하기도 어려워 코일 중재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학회장에 나온 신경외과 교수는 거대 뇌동맥류를 두개골을 열고 수술하는 슬라이드를 꺼내 보인다.

"저는 뇌동맥류 수술보다 코일을 더 많이 하는 신경외과 의사입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고민 끝에 수술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20여 년 전 거대 뇌동맥류 환자의 사진을 보여줬다. 능숙한 솜씨로 코일이 충전됐고, 뇌동맥류는 더는 출혈 위험이 없는 안정된 상태였다. 그는 거대 동맥류에 대한 성공적인 코일 경험이 있으면서도 수술을 선택했다는 것인데 이것이 환자를 위한 선택인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다.

"코일 수술이 성공한 이 환자는 현재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삼차 신경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코일로 충전된 거대 동맥류는 찢어질 위험성은 사라지지만 그것이 마치 양성 종양처럼 뇌를 건드릴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신경통을 유발하는 부위를 누르고 있어요. 통증 때문에 우울증까지 겪고 있습니다. 제가 거대 동맥류를 다시 바라보게 한 사례입니다. 거대 뇌동맥류는 단지 출혈하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는 환자가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면서도 통증에 시달리지 않는 것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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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끊긴 뇌동맥류 수술

신경외과 전공의 시절, 당시 미국의 대가로 알려진 A 교수가 자신의 뇌동맥류 결찰술 동영상을 국제 학회에서 발표하는 현장에 참가했다. 풋내기 의사였지만, 그의 손기술이 나를 가르치는 국내 교수보다 낫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국내 교수들은 별도로 받는 비용이 없지만 미국에서 A 교수에게 수술을 받으려면 병원비 외에 명의의 손기술에 대한 비용으로 1억 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 한 유명 연예인이 미국에서 뇌동맥류 수술을 받고 4억 5천만 원 정도의 병원비가 나온 이유이다.

그러나 감히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국내 무출혈 뇌 수술, 거대 동맥류 결찰술에 대한 비용은 여전히 25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과 비교하는 것은 아예 무의미하고, 일본 1,140만 원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다. 세브란스병원 뇌혈관 교수는 뇌 수술을 할수록 손해가 늘어난다며 자신이 병원에 끼친 적자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뇌혈관 전문병원은 어떻게 유지하고 있을까? 손기술에 대한 적자를 메꾸는 것은 바로 수술 전후에 CT, MRI, 혈관 조영술에 대한 검사였다. 뇌 수술을 많이 하려면 검사를 많이 해야 한다. 인구당 CT 검사 건수가 대한민국이 OECD 1위인 것은 이런 구조가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국내에는 청주 효성병원, 포항 에스병원, 대구 굿모닝병원, 서울 명지성모병원, 이렇게 4곳의 뇌혈관 전문병원이 있는데, 한 병원장이 귓속말을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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