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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강제징집 · 녹화사업' 피해자에 국가 배상하라"

법원 "'강제징집 · 녹화사업' 피해자에 국가 배상하라"
군사정권 시절 녹화사업에 강제 동원되거나 이른바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 22명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1심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는 오늘(22일) 녹화사업 피해자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피해 정도에 따라 3,000만 원부터 8,000만 원까지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같은 법원 민사합의36부도 오늘 비슷한 피해를 당한 다른 피해자 15명이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다만 법정에서 정확한 배상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은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강제징집을 당하거나 녹화사업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입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부는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을 학교에서 제적하거나 휴학시켜 군대로 강제징집했습니다.

이들을 좌익으로 규정하고 '붉은 색깔 의식을 푸르게 한다'는 의미로 녹화사업도 실시했습니다.

이들에게 학내 간첩과 북한 찬양자를 조사하는 신분을 숨긴 비밀 정보원, 즉 프락치로 활동할 것을 강요했고, 이 과정에서는 고문과 폭행 등 가혹행위도 벌어졌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해 5월 120여 명의 피해자들을 모아 집단 소송을 냈습니다.

현재 총 14개 소송을 진행 중이고, 오늘 판결은 이 가운데 법원의 첫 판단이 나온 겁니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는 오늘 선고 뒤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징집은 3,000만원, 강제징집에 녹화사업까지 해당하는 경우 7,000만 원에서 8,000만 원으로 피해 정도에 따라 위자료 액수가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이영기 변호사는 "판결에 다소 실망스러운 감이 있다"면서도 "국가폭력과 불법행위가 인정됐다는 점에서 나름 진일보한 역사라고 생각하고, 판결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에 이어 사법적인 정의를 확인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앞서 진실화해위는 2022년 11월 이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신청자 187명에 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또 "국방 의무라는 명목으로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정권 유지 목적으로 전향과 프락치를 강요당했다"며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교육부, 병무청 등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경제·사회적 피해에 대한 회복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이 변호사는 또 "피해자가 많은데도 진실규명 신청자가 적다"며 "입법을 통해 전수조사해야 한다"라고도 촉구했습니다.

피해자들은 국가의 사과도 촉구했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남철희 씨는 "국가가 학생들을 입건하고 다른 사건에 연루시켜 빨갱이로 몰아 (사회에서) 매장하려고 했다"면서 "(그런데도) 국가로부터 사과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형보 진상규명위 위원장도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국가의 누구로부터도 직접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 "진실화해위의 권고사항 중 피해복구를 위한 조치들에 대해 해당 부처들은 아무런 대안도 내놓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사회와 힘을 합쳐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사법부가 앞으로 남은 선고들에서도 엄중한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국가 측은 준비서면 등을 통해 "불법행위에 대한 입증이 부족해 (손해배상 청구는) 모두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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