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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버스터] "대북제재는 다 찢어진 북통"…아우르스 명품 코트도 OK?

사라진 대북제재 CCTV…러시아의 '변심', 왜?

안녕하세요. 외교안보 뉴스를 정밀 타격하듯 풀어드리는 벙커버스터입니다. 저는 SBS 외교안보팀 김아영 기자입니다. 롤스로이스와 렉서스, 마이바흐에 최근 명단에 추가된 아우르스까지. 최고급 차량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과시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 총비서인데요. 김정은의 애마가 새롭게 등장할 때마다 반드시 불거지는 의혹이 있습니다. 고급차량 등 사치품 수입을 금지한 유엔 대북제재 결의를 북한이 위반하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은 북한 핵개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국제사회가 지난 십여 년간 켜켜이 쌓아온 대북제재 그리고 위기에 몰린 감시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우크라 미사일부터 명품코트까지…그런데 CCTV가 멈췄다

 
유엔에는 북한이 실제 대북 제재를 위반했는지 위반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회피했는지 조사하고 감시하는 공인된 기구가 있습니다. 바로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이란 겁니다. 이 전문가 패널이 지난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 떨어진 어떤 미사일 잔해를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부품을 꼼꼼히 들여다봤더니 매우 흥미로운 정황이 발견됐습니다. 한글 ㅈ모양의 글자와 112라는 숫자입니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지난해 2023년을 112년이라고 불렀습니다.

김일성이 태어난 해를 기점으로 연도를 따지는 방식을 고수하다보니 전 세계가 2023년을 지나고 있는 동안 북한만 112년에 머물고 있습니다. 출장을 마친 전문가 패널은 이 미사일이 북한산 탄도미사일이라고 결론지은 보고서를 작성해 전 세계에 공개했습니다. 전문가 패널은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따른 대북 제재 결의 1874호에 근거해 출범했습니다. 15년 간 사실상 탐정 역할을 하며 노하우를 축적해온 이 감시기구가 최근 한순간에 갑자기 증발했습니다. 김여정의 디올백과 최선희의 구찌백, 김정은의 딸 주애의 디올 코트까지, 유엔 제재가 금지하고 있는 사치품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반입되고 있는데도 말이죠.
 
[황준국 / 주 유엔 대사 :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걸 막으려고 cctv를 부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일입니다.]
 

(2) 전문가 패널이 뭐기에…중러의 의도적 방해?


전문가 패널은 그동안 제재 위반 의심 사례들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담아 일 년에 두 차례 보고서를 공개 발간해왔습니다. 자칫 안이해질 수 있는 대북제재 이행에 경각심을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온 겁니다. 패널은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와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8개 나라 전문가로 구성돼 있습니다. 전문가 패널로 활동했던 영국 외교관 출신의 펜턴 보크 전 조정관은 제재위 활동이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에릭 펜턴-보크 전 조정관 (지난해 8월 4일) : 유감스럽게도 패널에 참여한 두 명의 동료(중러)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관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패널이 독립적인 조직으로서 실제로 해야 할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합의의 원칙을 오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 전문가의 반대로 담아야 할 내용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 적이 있었음을 시사하기도 했죠.

[에릭 펜턴-보크 전 조정관 (지난해 8월 4일) : 저는 여러분이 보고서를 그 관점에서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 심각하고 희석된 문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은 전문가 패널이라는 시스템이 사라지지 않은 채 매년 국제사회에 경종을 울려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3) 급브레이크 건 러시아…몸값 잔뜩 높아진 북한

 
유엔 안보리는 매해 3월쯤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연장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관례에 따라 패널 활동을 연장하려 했는데 다른 해와 달리 올해는 러시아가 제동을 걸었습니다. 거부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이시카네 기미히로/유엔 주재 일본 대사 (3월 28일) : 찬성 13표 반대 1표 기권 1표입니다. 상임이사국의 반대표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의 거부권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죠. 그동안은 불만이 있더라도 임기 연장에 동의해온 러시아 돌연 입장이 뒤바뀐 이유는 어디서 찾아야할까요.
 
[현승수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봐요. 사실은. 러시아가 북한을 이미 과거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거예요. 정말 러시아에게는 북한이 필요해졌어요. 북한이 러시아의 세계 전략을 바꾸려고 하는 그 공세적이고 공격적인 외교 전략에 상당히 부합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되어 버렸어요.]
 
러시아는 심지어 대북 제재 결의 내용에까지 적용되는 일몰 조항을 넣으라고까지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패널 임무 연장에 동의 할 테니 그럼 대북 제재 자체를 무효화할 수 있는 조항까지 같이 넣자고 제안한 겁니다. 한미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던진 것입니다. 결국 진통 끝에 감시 활동은 종료 됐습니다.
  

(4) 북한 코앞 달려간 미국…"찢어진 북 울려봐야" 조롱


패널 임기가 끝나기 전 유엔을 담당하는 미국 대사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까지 달려갔습니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대사의 판문점 방문은 언론을 대동한 상태로 이뤄졌는데 핵심은 대북제재 위반을 감시할 대체 수단 어떻게 해서든 강구하겠다는 겁니다.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 주유엔 미국대사 (4월 17일) : 전문가 패널이 하던 일이 끝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들(러시아 중국)이 협력하거나 우리의 노력에 동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길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군사분계선 너머 판문각에선 북한 군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습니다. 남북 간 9.19 군사합의가 무력화되면서 다시 무장한 상태로 경계를 서던 이들은 카메라와 망원경을 들고 미국 대표단과 취재진을 채증해 갔죠. 북한은 감시 기구 없애준 러시아에 감사하다는 표현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김성 / 주유엔 북한대사 (4월 11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제 정의와 공평성에 대한 권리를 독립적으로 행사한 러시아 연방의 거부권을 높이 평가합니다.]
 
국제기구 담당하는 북한 외무성 차관급 인사는 대북제재를 다 찢어진 북통에 비유했습니다. 미국이 한 땀 한 땀 꿰매서라도 압박의 북소리를 울리려고 한다면서 자신들 문제 말고 요즘 가장 심각하다는 중동 사태에나 신경 쓰라고 비꼬았습니다. 다른 감시 기구를 만들어도 소용이 없을 거라며 훈계하는 듯 담화를 내기도 했는데요. 뒤집어 보면 새 감시기구 등장 가능성에 레이더를 바짝 세우고 있다는 평가도 가능해 보입니다.
 

(5) 트럼프에 제재 해제 목맸는데…호기를 잡았다?

 
가장 최근 대북 제재가 채택된 건 북한이 ICBM인 화성 15형 발사를 단행한 직후인 2017년 12월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북한 핵개발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통된 움직임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유엔 회원국의 북한으로부터의 석탄 수입을 금지할 수 있었고 한해 북한에 공급할 수 있는 정유 제품을 연간 50만 배럴로 한정하자는 합의가 가능했죠. 북한 해외 노동자도 돌려보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동안에도 중국과 러시아가 숨통을 조금씩 열어줬다고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어느 수준이더라도 제재는 목 안의 가시처럼 매우 성가신 존재입니다. 김정은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제2차 북미정상회담 하노이 담판에서 북한이 내세운 조건도 다름 아닌 대북제재 해제였습니다.
 
[리용호 / 2019년 당시 북한 외무상 :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까지 채택된 5건, 그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입니다.]
 
감시기구가 사라졌다고 해서 대북제재 이행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대안도 모색되고 있죠.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 주유엔 미국대사 (5월 1일) : (새 감시기구를 몇 달 내에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확실히 우리가 여기 있는 모든 동료들과 함께 매우 긴급하게 노력하고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북한을 노골적으로 비호하고 중국 역시 적당히 걸음을 맞추는 지금은 제재를 쌓아 올리던 당시와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승수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러시아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북한 노동자들을 수용할 거라는 말이죠.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4개 지역 있잖아요. 국제법 위반이지만 전후 복구를 위해서 대거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러시아는 스스로가 인구가 희박하고 노동 인구가 많이 축소됐기 때문에 북한 노동자에 대한 기대가 엄청 커요.]
 
중국과 미국의 패권 경쟁,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벌어지면서 북한의 몸값은 높아졌습니다. 북한으로선 좋은 시절을 만났다고 해야 할까요. 북한은 최근 이란과 벨라루스와 고위급 접촉을 재개하면서 반미 친러 전선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 5선을 확정한 푸틴 대통령은 조만간 북한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승자는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도 아닌 북한이라는 평가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취재 : 김아영 / 영상취재 : 김원배 황인석 김태훈 / 편집 : 이기은 / 콘텐츠디자인 : 고결 / 제작 : 디지털뉴스제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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