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마늘 피해에 대한 보상을 호소하는 이기순(왼쪽)·문성두 부부
"30년 넘게 마늘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가 최악입니다. 3.3㎡당 7∼8㎏ 나오는 좋은 밭인데 1∼2㎏ 밖에 안 나와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에 있는 밭에서 마늘을 캐던 문성두(66)·이기순(66) 부부는 마늘을 뽑아 들고 이른바 '벌마늘'과 '스펀지마늘'을 보여줬습니다.
벌마늘은 마늘 줄기가 성장을 멈추지 않고 2차 성장을 해 마늘쪽 개수가 두 배 이상 많아져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 마늘을 말합니다.
스펀지마늘은 언뜻 정상적인 마늘처럼 보이지만 마늘쪽이 아예 생성되지 않아 쓸모없는 마늘입니다.
빗자루처럼 하나의 종구에서 여러 개의 줄기가 솟아 있는 벌마늘과 왠지 너무 물러 보이는 스펀지마늘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오랫동안 이어진 비와 일조량 부족으로 3월 말부터 4월 초순 사이에 마늘들이 많이 썩어 버린 것입니다.
예년 같으면 마늘과 마늘 사이에 간격이 별로 없이 밭 전체가 마늘로 꽉 들어차야 하지만 곳곳이 듬성 듬성했습니다.
문 씨 부부는 예년처럼 올해도 1만6천여㎡에 마늘을 재배했는데 이 같은 벌마늘과 스펀지마늘, 썩음 현상으로 상품 수확량이 예년의 10~20% 밖에 안 될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문 씨는 "평년에는 농약도 6∼7번 치면 충분한데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10일에 한 번씩, 그것도 비싼 농약으로 10번 이상 치면서 신경 썼지만 4천∼5천만 원 손실이 날 것 같다"고 한숨지었습니다.
그는 "대정지역 마늘 농사는 수확기에 하루 1천500∼2천 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정부가 그런 점 등을 고려해 보조를 해줘야지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마늘 농가들이 살아 나갈 길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장에 동행한 농협 제주본부 관계자들도 벌마늘과 스펀지마늘이 90% 이상인 곳도 있었다며 올해 마늘 농사의 심각성에 동감을 표했습니다.
강성방 대정농협 조합장은 "벌마늘과 스펀지마늘 발생률이 높아 상품 마늘이 평년 대비 30%도 안 나올 것 같다"며 "정부에 벌마늘만이라도 상품 가격으로 수매해 달라 건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지역의 평년 2차 생장(벌마늘) 피해율은 5% 내외지만 지난달 16∼17일 제주도농업기술원 표본 조사 결과 올해 피해율은 전체 재배면적의 5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주도는 이에 지난달 2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마늘 2차 생장 피해에 대해 이상기후에 따른 농업재해로 인정해 줄 것과 피해 지원 및 정부 수매를 요청했습니다.
오영훈 제주지사 역시 지난 2일 제주를 찾은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에게 마늘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농식품부는 마늘 피해를 농업재해로 결정했습니다.
제주도는 10일까지 읍·면·동주민센터를 통해 마늘 피해 신고를 접수하고, 13일까지 현장 확인을 거쳐 농식품부에 국비 지원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은 ha당 농약대 250만 원과 대파대 550만 원 중 한 가지만 선택해 받을 수 있어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제주 마늘 재배 농가들은 올해 1㎏당 최소 생산비로 4천500원을 주장하고 있는데 농약대로 250만 원을 받게 된다면 3.3㎡당 833원만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제주도, 농협은 또 10일 주산지협의체를 열어 제주마늘채소가격안정제(정부 30% 지방비 30%, 농협중앙회 경제지주 10%, 주산지 농협 30%) 자금(약 49억 원)을 활용해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그러나 마늘 재배 농가들이 농약대와 채소가격안정 자금을 받더라도 최소 생산비에 못 미쳐 농가 피해는 불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