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일 방송된 '마천루를 덮친 화마 그리고 최후의 생존자'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김광규, 소녀시대 효연, 비투비 창섭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최고의 럭셔리 호텔
때는 197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야. 거리마다 흥겨운 캐롤이 울려 퍼지고 구세군의 종소리가 들려. 아름답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풍경이야. 이때는 정부에서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어. 바로, 야간 통금시간을 해제해 주는 것. 1971년만 해도 통금시간이 있었거든. 근데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히 풀어준 거야.
크리스마스 이브 분위기가 무르익고, 밤을 새워 마시고 즐기려는 사람들로 식당마다 북적였여. 그 속에는 스무 살 동갑내기, 병무와 희준이도 있었어.
두 사람 모두 명문 K고를 나와서 사이좋게 서울대 같은 과에 진학한 '찐친'이야. 그리고 고등학교 땐 밴드 활동도 같이 했어. 노래면 노래, 인물이면 인물, 게다가 서울대야. 요즘으로 치면 완전 '사기캐릭터'지. 대학 시절에는 두 사람이 라디오에 게스트로 나갈 정도로 완전 '핵인싸'였어.
그러다 크리스마스를 열흘 앞둔 12월 10일, 두 사람은 한 자선음악회 무대에 섰다가, 출연료 대신 뜻밖의 선물을 받았어. 바로 호텔 숙박권. 이 선물을 받은 두 친구는 엄청 좋아했어. 남자 둘이 호텔 숙박권에 왜 좋아했냐고? 왜냐하면, 이 호텔이 평범한 호텔이 아니었거든.
이 호텔은, 일단 위치부터가 남달라. 낭만의 메카, 명동에 자리 잡았어. 1971년 당시에 명동은 최고의 핫플레이스였어. 그런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이니까,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지. 게다가 준공된 지 1년도 안 된 신축에, 층수가 무려 21층. 당시 서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이었어. 그야말로, 서울의 랜드마크지. 이 호텔의 이름은 '대연각 호텔'이야.
대연각 호텔의 내부는 어땠을까. 당시 실제 호텔 소개 책자에 담긴 모습들이야.
그야말로 초호화 호텔이지. 게다가 TV도 있어. 소고기 한 근이 450원 하던 시절이야. TV 한 대 값은, 9만 2천 원. 그런 TV가 방마다 있는 곳이야. 당시에 대연각 호텔의 숙박 요금표야.
로열 스위트룸 2만 원이야. 이때 9급 공무원의 월급이 1만 7천 원이었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로열 스위트룸에서 하루를 못 자는 거지. 일반인들은 꿈도 못 꿔. 그래서 손님들 대부분은 VIP들이나 외국인들이었대.
그런 곳의 숙박권을, 스무 살짜리 희준이랑 병무가 얻게 된 거야. 때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희준이랑 병무는 당장 호캉스를 하러 갔어. 그리고 두 사람은 903호를 배정받았어.
다음날, 성탄절 아침이 밝았어. 한 소녀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호텔 로비로 들어섰어.
이름은 안미자, 나이는 18세. 미자는 지금 대연각 호텔 3층에 있는 미용실에서 보조로 일하고 있어. 크리스마스 휴일인데, 미자는 왜 출근을 한 걸까? 현재의 미자에게서 그날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게.
"그때 한O관에서 갈비탕이라든지 그런 거 사주시고, 또 간혹 가다 영화도 한 번 구경한 적도 있고. 원장님이 또 강의를 많이 다니셨어요. 항상 저 데리고 다니고 보조로, 그렇게 예뻐해 주셨어요."
-안미자, 당시 대연각 호텔 3층 미용실 근무
미용실 원장님이 점심을 사주기로 한 거야. 휴일 출근이라도 미자는 좋았어. 크리스마스라고 딱히 약속도 없었고, 원장님이 맛있는 걸 호텔에서 사준다고 하니까.
▲ 사상 최악의 호텔 화재 사건
오전 10시쯤 3층 미용실에 도착한 미자는, 같이 점심 먹기로 한 언니들과 수다를 떨며 원장님을 기다렸어. 그렇게 한, 10분쯤 지났을까? 어디선가 펑! 굉음이 들렸어. 그리고 창문이 깨지더니, 출입문 사이로 매캐한 연기가 들어왔고, 복도에 시뻘건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는 거야.
"문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그때는 양탄자가 깔려있어서 빨리 불이 붙었잖아요. 출입구를 보니까, 불길이 솟아오르고 밑으로 연기가 들어오고 막 그러더라고요."
-안미자, 당시 대연각 호텔 3층 미용실 근무
미용실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어. 불길 때문에 출입문 쪽으로는 나갈 수가 없어. 그런데 그때, 언니들이 미자에게 얼른 창문을 열라고 소리쳤어.
"'빨리 올라가서 한 명씩 뛰어내려라!' 너무 무서운 나머지 어떻게… 겁도 났어요.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다' 하는 생각에. 진짜 지금 생각해도 너무 무서워요."
-안미자, 당시 대연각 호텔 3층 미용실 근무
언니들이 빨리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래. 빌딩 3층 높이는 10m 정도야. 어린 소녀한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지. 그사이 불길은 점점 더 미용실 안으로 들이치고 있어. 불길을 뚫고 나가 복도 계단으로 내려갈 것이냐, 아니면 3층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것이냐. 미자는 일생일대의 고민에 휩싸여.
같은 시각, 화재 신고를 받은 중부소방서 대원들이 곧장 현장으로 향했어. 소방서와 호텔의 거리는 불과 700m. 차로 2분 거리 밖에 안돼. 그런데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대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해.
"대연각 화재라고 신고받았을 때, 그렇게까지 큰 화재인지는 전혀 몰랐어요. 그런 화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도 못했고, 짐작도 못했어요 그때는. 그 현장에 가보니까 상상외로 어마어마하니까. 이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 난감했어요 그때는."
-박준호, 화재 당시 출동 소방관
대원들이 목격한 그날. 어떤 상황이었는지 보여줄게.
현장에 도착하니까 빌딩 전체가 거대한 성냥갑마냥 활활 타고 있고, 호텔 안 사람들은 창문에 매달려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어.
당시 대연각 호텔 빌딩을 모형으로 재현해 봤어. 건물 모양이 좀 특이해. 'ㄱ'자 형태지. 북쪽 건물에는 20여 개의 사무실이, 대연각 호텔은 도로변과 맞닿아 있는 동쪽 건물을 썼어. 객실은 5층부터 19층까지, 대략 200여 개야.
미자가 일하는 미용실이 3층. 미자는 지금, 그 3층 창틀에 서있어. 뒤에서 언니들이 얼른 뛰어내리라고 외쳤어. 하지만 미자는 도저히 뛰어내리지 못하겠어. 게다가 바닥은, 깨진 창문 파편들로 유리밭이야. 뛰어내렸다가 잘못 떨어지면 어떡해. 생각만으로도 너무 무섭지.
"언니들이 '빨리 뛰어내려 빨리' 그러는데 저는 엄두도 못 냈고 그러는데 뒤에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확 밀더라고요. 그 바람에 3층에서 국기 게양하는 데로 떨어져서 기절해서, 기관실에 계신 분이 아저씨가 저를 업고 내려왔다고 하더라고요. 깨어나니까, 가다 보니까 뭐가 덜컹해서 봤더니, 택시 안이에요. 그래서 병원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었죠."
-안미자, 당시 대연각 호텔 3층 미용실 근무
계속 망설이니까 언니들이 등을 떠민 거야. 모두를 살리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그 순간 미자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정문 지붕 위 국기 게양대로 떨어졌어. 떨어진 순간 정신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다행히 살짝 긁힌 게 다였대.
▲ 필사의 탈출
미자가 병원으로 옮겨진 그 시각, 소방 대원들은 불길을 잡느라 사투를 벌이고 있어. 빨리 진입로를 뚫어야 구조를 할 수 있으니까. 근데, 문제가 있어. 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창문으로 화염이 치솟고 있었잖아? 이런 상태를 소방 용어로 '최성기'라고 한대. 불길이 최고조의 상태라는 거야. 이때 안의 온도는 1,000도에서 1,300도래. 비교하자면, 화장터의 온도가 800도에서 1,000도 정도 된대. 모든 걸 다 녹여버리는 어마어마한 온도야. 이런 상황에, 소방관들이라고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접근은 고사하고, 불길을 잡는 것도 엄두가 안나. 게다가 1971년도 당시, 산소마스크도, 방화복도 없었어. 방수복에 안전모가 전부였대. 그러니까, 옆에서 동료들이 뿌려주는 물을 맞으면서 불을 끄는 거야.
"최선을 다해도 장비가 열악하니까, 안으로 그때 들어갈 수가 없죠. 완전히 용광로인데 들어갈 수가 없어요. 계단 파이프가 다 녹아서 휘었는데. 사람이 그 안에 수백명이 있다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합니까. 소방관이 그걸 구조하지 못하니까 애만 타죠."
-박준호, 당시 대연각 호텔 화재 출동 소방관
상황이 심각하다 보니까, 1단계였던 소방 대응 단계는 곧바로 비상 출동 단계로 전환됐어. 서울 전역의 소방력이 여기에 투입된 거야. 이때 투입된 구조 인력만 1,500명. 하지만 여전히 불길을 잡기엔 역부족이야. 한쪽 창가에 목숨을 걸고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보여. 내부 열기가 너무 뜨거우니까.
"그때 사람들이 다 아우성이에요. 전부 다 먼저 구조해 달라고 아우성인데. 창문마다 다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창문마다 다 사람이 있는 거에요. 불이 막 오니까 뜨거우니까, 창으로 자꾸 피하다가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으니까 이제 그냥 주렁주렁 매달려있다고 꼭대기에 저 위에요. 정말 힘들죠…"
-박준호, 당시 대연각 호텔 화재 출동 소방관
또 다른 창가에는, 침대보를 밧줄처럼 엮은 게 늘어져 있어. 그걸 타고 탈출하려는 거야.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 그런데 이렇게 살려고 발버둥 치는 와중에도, 창문들이 계속 터져 나가. 그럼 유리 파편들이 머리 위로 떨어져. 명동의 랜드마크, 초호화 대연각 호텔은 한순간에 끔찍한 지옥이 돼 버렸어.
바로 그때, 박 대원의 눈이 휘둥그레져. 가만 보니, 건물 한쪽에 수십 명이 연기를 피해 모여있는 거야. 바로 7층 중간 옥상.
다행히 호텔 7층 복도 끝에, 야외 대피로가 있었던 거야. 여기 모인 사람들은, 7층에 머물던 사람들이야. 이들에게 탈출 기회가 생긴 거야. 이 옥상을 발견한, 위에 8층 9층 투숙객들도 밧줄을 타고 7층 옥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어. 그렇게 모인 사람만 어림 잡아 100여 명.
"빨리 사다리차 가져와!!!"
당시 최신 고가 사다리차가 국내에 딱 1대 있었는데, 그걸 중부소방서에서 보관하고 있었어.
"우리나라에 고가 사다리가 중부소방서에 하나밖에 없어요. 그 당시에 사다리차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이, 제가 그때 조작을 한 거예요 그 당시에는."
-박준호, 당시 대연각 호텔 화재 출동 소방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고가 사다리차가 투입됐어. 박 대원이 버튼을 누르자, 철커덕, 사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해. 접혀 있던 사다리가 위로 쭉 올라가더니, 7층 중간 옥상에 멈춰 섰어. 근데 아무리 사다리가 있다 한들, 7층이잖아.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추락이야. 하지만 방법은 이거밖에 없어.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서 사다리에 올라탔어. 대원들을 믿고 신속하게 탈출해야 해.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 사다리 구출작전이 TV에서 생중계 됐어.
침착하게 차례대로 내려오는 사람들. 심지어 당시 부상자를 목말을 태워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어. 그 순간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 사다리가 되어준 거야.
"유리 파편이 막 떨어져서 피를 줄줄 흘리며 내려오는데, 조금도 머뭇거리지도 않고 신속하게 내려와요. 그게 누가 훈련시킨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잘 내려와요."
-박준호, 당시 대연각 호텔 화재 출동 소방관
이 고가 사다리의 활약으로 구조된 인원은 약 80여 명. 그렇게 7층 투숙객들은 무사히 호텔을 빠져나올 수 있었어.
그럼 이 구조를 지켜본 위에 더 고층인 사람들은 어땠을까. 자신도 구조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을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구출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데 그 순간, 건물 한쪽에서 상상도 못 한 광경이 펼쳐져.
매트리스와 함께 추락하는 사람들. 유독가스와 열기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혹시나 충격을 줄일 수 있을까 싶어서 매트리스를 안고 뛰어내린 거야. 당시 이렇게 뛰어내린 사람은 38명.
"침대 매트리스를 이렇게 묶어서 그러고 떨어지는 사람, 이불을 먼저 던져놓고 떨어지는 사람. 잘 떨어지면 좋은데 그렇게 떨어지지 않아요. 뒤집혀서 그냥 사람이 밑으로 가지. 매트리스가 위로 가고. 전부 다 그냥 막 떨어졌어요. 사람 하나가 떨어지면 6, 7톤 무게라고 하는데. 그런데 옆으로 막 떨어지는 사람들이 머리가 먼저 떨어지니까… 그때 그 심정은요. 누구라도 소방관 보고 얘기하라고 하면 다 눈물이 나서 못 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참…"
-박준호, 당시 대연각 호텔 화재 출동 소방관
안타깝게도 추락할 때 모두 매트리스를 놓쳤어. 이렇게 쌓인 매트리스들이 도로변에 수북했대. 근데 왜 사다리차를 기다리지 않고,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유가 있었어.
호텔의 층수는 21층. 건물 높이가 총 80m야. 서울에 딱 1대밖에 없다는 고가 사다리차를 최대로 펼친 높이는 겨우 32m. 7층 높이밖에 안 돼. 당시 소방 장비로는 7층 이상의 사람들을 구할 방법이 없었던 거야. 그때 현장에 있었던 한 소방관이 남긴 회고록이 있어.
"한 쌍의 남녀가 나를 보고 떨어진 매트를 자기들 밑으로 옮겨 달라고 손짓했다. 잠시 후 남자는 내가 가까스로 옮겨놓은 매트 위가 아닌, 옥상 난간의 쇠 파이프에 머리를 부딪쳐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곧이어 여자도 가건물의 함석지붕에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가건물 지붕은 폭삭 주저앉았다. 호텔 안은 염열지옥, 밖은 아득한 허공. 그들에게 남은 건 어떻게 죽느냐의 선택뿐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도 큰 두려움을 몰랐던 나도, 문득 소방복을 벗어던지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이영주 소방관 회고록 中
"저는 그 당시에 이제 사다리차로 많은 인명 구조를 하긴 했지만, 사다리가 못 미치는 데, 닿지 않는 데는 들어가서라도 더 했어야 했는데. 그 당시에 장비가 열악하니까 들어갈 수가 없어서 못 들어갔지만 그것이 지금 생각하면, '그런 장비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그런 후회가 들죠."
-박준호, 당시 대연각 호텔 화재 출동 소방관
▲ 헬기 구출 작전
그럼 고층에 남겨진 사람들을 구할 방법은 없는 걸까? 헬기가 온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오전 11시. 대연각 호텔 상공에 헬기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어. 당시 이 헬기를 조종한 분을 어렵게 만났어.
"저는 당시에 육군 21항공 중대 헬리콥터 조종사 문광현 대위입니다. 그때 이제 박정희 대통령이 거여동에 공수여단을 창설해서 거기 우리 헬리콥터가 항상 이제 비상대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비상대기 중에 대연각 화재가 났다는 걸, 육본 상황실에 직통 전화가 있는데 그게 직접 연락이 온 거죠. 천호동 상공쯤 가니까, 서울 시내에 연기가 올라오는 게 굉장하더라고요. 그때 놀랬어요. '이거 보통 불이 아니로구나' 그러면서 접근했죠."
-문광현, 구조에 참여한 헬기 조종사
이 당시엔, 소방헬기가 없어서 군 헬기가 출동했어. 그런데 또 문제가 있어. 군 헬기에는 구조 장비가 없어. 옥상에 착륙을 유도하는 헬리패드 역시 당연히 없었어. 그러니까, 출동을 한다 해도, 딱히 구할 방법이 없었던 거야.
잠시 후, 새까만 연기 사이를 헤집고 헬기가 대연각 호텔 상공에 도착한 그때였어.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옥상에서 두 명의 젊은 남자가 애타게 헬기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어. 문 대위는, 군인들이 하강 훈련할 때 쓰는 밧줄이 생각났어. 사람들이 밧줄을 잡고 놓치지만 않는다면, 옆 건물로 이동시킬 수 있을 거 같아. 사실, 너무 위험한 일이지.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
문 대위는 로프를 내리고, 곧장 옥상으로 헬기를 틀었어. 밧줄 끝에 온 신경을 쏟은 채 조종에 집중했어. 조심조심 다가가 보는데, 문제가 또 있어. 겨울바람이 너무 매서워. 밧줄이 갈대마냥 사정없이 흔들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오만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간 그 순간. 누군가, 밧줄 끝을 힘껏 움켜쥐었어. 바로 이 분이야.
이름은 박조종. 엘리베이터 수리공이야. 하필 그날이 당번이라서 연휴에 출근했다가 불길에 갇힌 상태였어. 불행 중 다행으로 기계실이 옥상이라, 기적적으로 생존한 거지. 필사적으로 그 밧줄을 붙잡은 조종 씨를 보면서, 문 대위는 '저 남자, 내가 반드시 살린다'라고 생각했대. 과연 무사히 구조 됐을까?
"거기가 옥상 층이라지만 연기가 많이 모여서 올라갑니다. 거기서도 숨이 막혀요. 한참 있으니까 헬리콥터 소리가 나요. '그래서 살았다!' 덩실덩실 나도 모르게, 춤을 출 정도로 기뻤어요 사실은. 한참 있으니까 더 가깝게 헬리콥터가 와서, 내려주는 로프가 새끼손가락 같은 가느다란 거예요."
-박조종, 대연각 호텔 엘리베이터 수리공
조종 씨는 온 힘을 다해 밧줄을 붙잡았고, 무사히 옆 건물 옥상으로 대피하는 데 성공했어.
문 대위가 조종 씨를 무사히 내리고 또다시 구조하려 가려는데, 누군가 잠깐 멈추라는 거야. 그러더니 로프 끝에 뭔가를 매달았어. 바로 구조용 줄사다리.
옆 건물 옥상에서 그 구조를 지켜보던 한 시민이 아이디어를 보탠 거야. 아무래도 구조용 줄사다리가 있으면, 매달리기 더 수월할 테니. 모든 시민들이 그렇게 한마음으로 구조에 참여했어.
이제 문 대위는 측면 비행을 시도해. 유리창에 매달린 사람들이 밧줄을 잡길 바라면서. 헬리콥터가 건물 측면으로 비행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야. 자칫 실수하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그냥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데, 난 이제 헬리콥터가 부딪치면 죽으니까. 그 건물만 보면서 조종하고 있는데,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오직 사람만 구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문광현, 당시 출동한 헬기 조종사
프로펠러가 건물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비행. 그렇게 호텔 주위를 뱅뱅 곡예비행을 하면서, 밧줄을 갖다 대려는 시도가 수차례. 당시 문 대위가 구조한 사람이 3명, 다른 군 헬기가 구조한 사람이 또 3명. 총 6명이 구조됐어. 기적 같은 일이지.
하지만 기적은 거기까지였어. 잠시 후, TV에 믿기 힘든 장면이 나왔어.
"종업원으로 보이는 빨간 스웨터의 청년 두 사람이 헬리콥터가 던진 로프를 잡았습니다. (중략) 그 로프를 잡았던 종업원이 로프에서 미끄러져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잃은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안타까운 순간입니다."
-TV 생중계 中
"전부 돌아가셨죠 전부. 그 불쌍한… 그분들이 그렇게 돌아가시는 걸 눈앞에서 보고. 나중에 하나도 못 매달렸어요. 못 매달린 것은 다… 죽으러 가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승용차에도, 승용차 사서 다니면서 뒤에다가 밧줄을, 근 이십 년간 싣고 다녔어요. 혹시나 다른 일에, 귀중한 목숨이 밧줄 하나 때문에 못 살리는 그 죄책감 때문에. 거기서 정말 많은 인원이 죽었을 겁니다."
-박조종, 대연각 호텔 엘리베이터 수리공
처음에 옥상에 박조종 씨 포함 2명이 있었다고 했잖아? 다른 한 명은 박조종 씨의 동료였어. 그리고 빨간 스웨터의 청년들은, '형 동생' 하며 지내던 20층의 알바생들. 그들이 허공에서 밧줄을 놓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거야. 살았다는 기쁨보다,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게 평생 박조종 씨를 옭아맸어.
▲ 최후의 생존자
화재 발생 3시간이 흘렀어. 불길은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대연각 호텔을 집어삼키고 있어. 라디오와 TV에서는 부상자 명단이 계속해서 흘러나와. 하지만 아직까지 그 속에, 병무와 희준이의 이름은 없어. 혹시나, 생존자가 더 있지는 않을까, 숨죽여 지켜보던 시민들도 서서히 희망을 잃어가. 시간이 너무 흘러서, 다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거지. 그때였어.
"지금 파란색 타월을 둘러쓴 투숙객 한 분이 멀거니 지금 밑을 쳐다보면서 서 있습니다!"
-TV 생중계 中
놀랍게도, 1104호 창가에 담요를 뒤집어쓴 한 노신사가 나타났어. 이때가 오후 1시. 무려 3시간을 화마와 싸우고 있는 거야. 이 기적 같은 상황에, 시민들과 기자들이 다시 응원을 시작해. 생중계를 보던 사람들도, TV 앞을 못 떠나. 이제 목표는 하나야. 최후의 생존자, 노신사를 구해야 한다는 것.
그럼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일단 밧줄을 건네야 해. 이 노신사에게 밧줄을 건네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어. 야구선수가 와서 밧줄을 던져보기도 하고, 대나무 장대를 길게 이어 붙여서 그 끝에 밧줄을 매달아 줘보기도 했대. 하지만, 모두 실패했어. 모두 걱정하며 1104호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호텔 앞이 술렁거려. 보니까, 웬 남자가 인파를 헤집으며 호텔을 향해 뛰어오고 있어. 이 남자 어깨에 뭔가를 짊어지고 오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응원을 보내. 바로 이거였어.
마지막 대안으로, 양궁선수를 찾았던 거야. 이름은 조춘봉, 18살이야. '고교 신궁'으로 불리는 양궁선수야.
"1971년도에는 제가 우리 은사님이 만들어 놓은 실내 양궁장에서 활을 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열두 시 경에 우리 선생님의 형님 되시는 분이, '활을 쏘는 사람을 찾는다더라' 그런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화살을 들고 택시 타고 갔는데, 못 가게 막은 거예요. 거기 모든 걸 차단을 시켜서. 그래서 지금 세O호텔 있는, 거기서부터 활 들고 대연각 호텔까지 뛰어갔죠. 주변 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거기로 가니까, 막 박수를 쳐주더라고요."
-조춘봉, 구조에 참여한 양궁선수
그럼 이 활로, 어떻게 11층에 밧줄을 건네준다는 걸까. 화살 양쪽 끝에 구멍을 뚫어서, 낚싯줄을 매달아. 그리고 11층 창문 안으로 쏘는 거야. 화살과 함께 낚싯줄이 풀려 올라가겠지. 그리고 노신사가 화살을 집어 들면, 지상에서 낚싯줄 끝에 밧줄을 묶어주는 거야. 노신사가 낚싯줄을 당기면, 밧줄도 끌려 올라가는 방식이지. 약간 무모해 보이지만, 달리 방법도 없어.
그렇게 춘봉이는 근처 육교에 올라서, 1104호를 향해 활을 쏘기 시작했어. 한 발, 두 발, 세 발… 활시위를 당기는데, 쉽지가 않아. 그렇게 쏘아 올린 화살만, 무려 70발. 이제 남은 화살은, 단 10발뿐이야. 춘봉이의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 그때였어. 놀랍게도, 화살 하나가 1104호 창문 안으로 들어간 거야. 그럼 과연 노신사는 화살을 집어 들었을까?
"육교에 올라가니까 진짜 깨지더라고요 유리창이. 깨진 유리창 틈으로 화살이 들어갔어요. 어떻게든 그 사람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했는데, 아무리 화살을 쏴도 그쪽에서 반응이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내다보지를 않으니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솔직히 거기서 나오는 것조차도 발길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조춘봉, 구조에 참여한 양궁선수
어찌 된 일인지, 그렇게 많은 화살을 쐈는데도, 노신사는 반응이 없어.
어느덧 오후 5시. 스산한 겨울공기 사이로, 어스름한 석양이 비추기 시작해. 드디어 불길이 잦아들고, 대원들이 사다리를 타고 호텔 안으로 진입해. 먼저 1104호, 노신사의 생사부터 확인하려 했어.
건물 안은 여전히 뜨거워. 물에 적신 종이박스로 열기를 막으며, 힘겹게 올라갔어. 그리고 마침내, 문제의 1104호 앞에 도착했어. 떨리는 마음으로 안에 들어서는데, 박 대원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해. 박 대원은 황급히 종이박스에 눈앞의 상황을 기록했어. 지상에 소식을 전달하려고. 그리고 잠시 후, 지상의 대원들 앞으로 종이박스 하나가 떨어져.
"노신사는 살아있다"
"가서 보니까, 사람이 없어 안에. 그래서 이제 내부를 수색하다 보니까, 욕조 안에 가서 이불을 다 가져다가 쌓아놓고, 물을 다 적셔 놓고 그 속에 들어가 있어요. 막 찾는 걸 이제 소리 듣고서 '여기 사람 있다' 그러니까, 벌떡 일어서면서 어쩔 줄 몰라. 안에 있는 기물 탄 것, 조각 있잖아요 쇳조각. 거기다가 그 종이에다가 그걸 싸서, 거기다가 묶어서는 그냥 밑으로 던졌어요. 그런데 그걸 보니까 구조했다고 그냥 사람들이 이제, 아주 우레 같은 소리가 나왔죠."
-박준호, 당시 대연각 호텔 화재 출동 소방관
욕조에 물을 틀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그 안에 들어가 있었던 거야. 유독가스와 열기를 피해서. 화마 속에서 무려 7시간을 버텨낸 기적의 주인공이야. 바로 이 분이야.
이름은 여선영. 주한 자유중국 공사야. 1년 전에 한국에 부임했어. 대연각 호텔 1104호를 본인의 숙소로 사용했는데, 그러던 중에 그만 변을 당한 거지. 여 공사는 대원들의 등에 업혀 무사히 호텔을 빠져나온 뒤 곧장 병원으로 이송됐어. 하지만, 이 최후의 1인 여 공사를 끝으로, 더 이상의 생존자는 찾을 수가 없었어.
▲ 최악의 호텔 화재, 원인은 무엇인가
화재발생 12시간이 지난밤 10시. 드디어 대원들이 완전히 불길이 잡힌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해. 화마가 할퀴고 간 대연각 호텔 건물 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해. 까만 잿더미가 된 시신들은, 엘리베이터, 방 캐비닛 안에서도 발견됐어. 그중에서도 무려, 23구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있었어. 옥상으로 향하는 문 앞. 옥상 문이 자물쇠로 잠겨있었던 거야. 그걸 본 유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근데 사실, 슬퍼할 여력도 없었어.
"무분별 시체 수수께끼. 신원 확인 작업 조사 나선 의학 전문가들 진땀."
"45구 시신에 유가족 250명이 나와 치아, 골격 등 특징 가려내 판가름."
-당시 뉴스 내용 中
얼굴 판별이 불가능하고, 신체 일부가 없는 시신도 너무 많았어. 심지어, 시신 한 구를 두고, 서로 자신의 가족이라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어. 가족들은 훼손된 시신을 보며, 직접 아들과 딸, 남편과 아내의 얼굴을 찾았어.
"참담하죠. 사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간이 안 되고, 또 애인지 어른인지도 분간이 안 됐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DNA 조사도 발전된 게 아니기 때문에, 참 그때 주먹구구식이죠. 지금도 가끔 나와요. 꿈에. 금방 없어지지 않아요…"
-박준호, 당시 대연각 호텔 화재 출동 소방관
아직 풀어야 할 수수께끼. 대체 어디서 어떻게 불이 났길래, 이 큰 호텔이 잿더미가 된 걸까? 처음에 미자가 미용실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잖아? 바로 이거였어.
1층 호텔 커피숍에서 쓰던 프로판 가스통. 프로판은 공기보다 무겁기 때문에, 가스가 새면 바닥에 가라앉아. 무색무취라 쉽게 알아차릴 수도 없어. 그래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 그런데 이런 가스통이 터졌다는 건, 관리가 소홀했다는 거야. 조사 결과, 이 프로판 가스통의 제조일은 68년 8월이었어. 대연각 호텔이 문을 연건 69년 9월이야. 이 낡은 가스통을 갖다 쓰면서, 내압 검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거야. 무려 4년 동안이나. 게다가, 시중에서 가장 값싼 고무호스로 가스통과 화덕을 연결했어. 그마저도 바닥에 아무렇게 설치해 놔서, 사람들이 밟고 다니니까, 결국 고무호스에 구멍이 났던 거지. 그렇게 샌 가스가, 차곡차곡 바닥에 쌓이다가, 어느 순간 화덕 불에 펑! 터져 버린 거야.
근데 왜, 1층에서 난 불이 순식간에 호텔 전체로 번질 걸까? 아까 그 호텔방 안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어.
목재가구, 카펫, 소파, 쿠션. 모든 게 잘 타는 것들이야. 심지어 벽과 천장에는 한지가 발라져 있었대. 이 방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불에 잘 타는 가연성 물질인 거야.
게다가 건물에 불이 나면 다른 층으로 번지지 않게 도와주는, 방화문. 당시 건축법상 비상계단에 방화문 설치는 의무였는데, 대연각 호텔은 설치하지 않았어. 왜? 돈을 아끼려고. 이런 환경에서 1층에서 불이 난다면, 비상계단이 굴뚝 역할을 하게 돼. 불길이 순식간에 위로 훅, 수직 상승하는 거지. 이때 걸리는 시간은 단 20초래. 한마디로, 호텔 전체가 시한폭탄이었던 거야.
누군가의 욕심과 부주의가 모여, 축복 가득해야 할 성탄절 아침,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어. 이제, 희생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지.
곧바로 대연각 호텔 사장 김 씨와 지배인, 시 공무원들이 줄줄이 심판대에 올랐어. 조사 과정에서, 사장 김 씨의 부탁을 받아, 방화문이 잘 설치돼 있다고 검사서를 허위로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거든. 그런데 참사 44일 만에 열린 첫 번째 공판에, 사장 김 씨가 뜻밖의 모습으로 나왔어.
들것에 실려 출석한 김 씨. 병명은 고혈압이었대. 결국 공판은 5분 만에 끝났어. 사장 김 씨는, 부상자들이 치료받고 있는 같은 병원 특실에 입원했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73년 1월. 사장 김 씨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왔어.
"회사 업무별로 책임 부서를 정해 전담 부사장과 이사를 두고, 소방법에 정한 방화 관리자까지 선정, 당국에 신고한 점 등으로 미루어 김 피고인에게 화재의 업무상 과실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판결문 中
사장 김 씨는 무죄 판결이 나왔어.
화재 발생 열흘 후에 병원에서 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어. 최후의 생존자였던 여선영 공사가, 끝내 세상을 떠난 거야. 기도에 화상을 심하게 입은 탓에 줄곧 산소호흡기로 연명했는데, 결국 버티지 못한 거지.
화재 직후 정부는 부랴부랴 고층 건물에 대한 소방점검을 시작했어. 각 건물별로 방공 소방훈련을 실시하고, 스프링클러를 비롯한 자동 소화 시설과, 헬리패드도 의무화했어.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소방 고가 사다리. 최대 23층까지 닿을 수 있게 됐대.
▲ 남겨진 노래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한테 서서히 기억 속에 잊혀져 갔어.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어느 날, MBC 대학가요제에 아주 특별한 사연을 가진 출연자가 등장해.
세 사람 중 제일 왼쪽의 이름은 민병호. 크리스마스 이브에 대연각에 투숙했던 병무의 친동생이야. 안타깝게도 그날, 희준이와 병무는 끝내 호텔을 빠져나오지 못했어. 그 후 유품을 정리하던 동생과 친구들이, 악보를 하나 발견했어.
작사 방희준, 작곡 민병무. 제1회 대학가요제에 출연한 '서울대 트리오'가 부른 '젊은 연인들'이란 노래야. 병무와 희준의 곡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어.
'꼬꼬무'에서 대형 참사가 나올 때마다 하는 말이 있어. '안전 수칙은 피로 쓰인다'라고. 기본만 잘 지켰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야.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들어봤어? '1대 29대 300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많은 사상자를 내는 참사가 1번 발생했을 때, 이미 그전에 작은 사건 29건이 발생하고, 그전에 더 경미한 사건이 300번 있다는 거야. 거대한 재앙 전에는 반드시 전조 증상이 있었다는 거야. 어쩌면, 이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이, 그 무수한 경고 중 하나는 아니었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