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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상대로 '심리 상담' 받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운동만 자기 관리가 아니다 [스프]

[뉴스페퍼민트] 나의 정신건강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 (글 : 나종호 예일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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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나종호 예일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0424 뉴욕타임스 해설
저는 한국에서 의과대학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미국에서는 정신질환 및 정신건강 서비스를 향한 낙인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처음 태평양을 건너온 10년 전과 비교하면 피부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제 미국 사람들은 꼭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심리 상담을 받지 않습니다. 평소에 '자기 관리' 차원에서 심리 상담을 받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연애 시장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많이 쓰는 데이팅 앱 중에  힌지(Hinge)라는 앱이 있습니다. 힌지가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용자의 91%가 데이트 상대로 심리 상담이나 심리 치료를 받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답했습니다.  오케이큐피드(OkCupid)라는 또 다른 데이팅 앱이 2022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프로필에 '심리 상담을 받는 중'이라고 써놓은 사람의 비율이 이전 해보다 20% 이상 증가했습니다. 짝을 찾아주기 위해 하는 사전 질문 가운데 "심리 치료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이 있습니다. 여기에 "그렇다"고 답하는 남성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 남성에 비해 '좋아요'를 두 배 가까이 더 받았습니다. 매칭될 확률도 1.5배 높았죠. 그러다 보니, 상대방에게 호감을 사려고 일부러 '심리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거짓으로  프로필을 꾸며두는 남성도 있다고 합니다.

자칫 이해가 가지 않는 경향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몸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개인 트레이닝(PT)을 받는 것처럼 마음의 근육과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피부과에 가서 피부 관리를 받고, 꼭 치통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치과에 가서 치아 건강을 확인하고 관리를 받습니다. 정신건강도 마찬가집니다. 미국은 정신건강을 위해 정기적인 상담을 받거나 정신과 진료를 받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로 점점 더 변해가고 있습니다.


지난 8일, 뉴욕타임스 오피니언에는 보스턴대학교 의료서비스에서 오랫동안 대학생의 심리 상담과 치료를 해온 마틸드 로스 박사의 글이 실렸습니다. 글은 '정신건강에 대한 높은 경각심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진' 미국 대학 캠퍼스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녀가 대학 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걱정이 지나친 부모들의 사례를 읽다 보면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절로 떠오릅니다.

혹 '아니, 저렇게 호들갑을 떨 바에야 정신건강에 대해 무던한 편이 더 나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적하는 로스 박사조차 미국 청년들의 정신건강 상태가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는 "통계를 보면 깜짝 놀랄 정도"라며, 미국 18~25세 청년 가운데 14%가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로스 박사가 한국 청년들의 정신건강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올해 2월 발표한  '청년 빈곤 실태와 자립 안전망 체계 구축 방안 연구'에 실린 조사 결과를 보면, 19~34세 청년 4천 명 가운데 57.8%가 스스로가 '우울한 상태'라고 답했고,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한 청년도 37.1%나 됐습니다. 다섯 명 중 세 명꼴로 우울함을 호소하고, 세 명 중 한 명 이상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한국 청년층의 정신건강은 로스 박사가 깜짝 놀랐다고 말한 미국 청소년의 상황보다 몇 배 더 심각합니다. 이런 추세는 최근 5년 사이 급증한 10, 20대 자살률과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현재 한국에서 10대, 20대, 3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모두 자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정신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정신건강에 대해 대화하는 데 서툽니다. 아니, 대화 이전에 정신건강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지난해  세계 정신건강의 날 보고서에 따르면, "당신은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해 얼마나 자주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 사람들은 75%가 '자주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전체 응답자 중에도 나 자신의 정신건강에 관해 '자주 생각한다'고 답한 사람이 58%였습니다. 반면, 한국은 61%가 '별로/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절반 이상이 '정신건강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한 유일한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저 또한 한국에서 자라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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