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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로 재조명된 이름 김상덕…"젊은 세대 관심 다행"

영화 '파묘'로 재조명된 이름 김상덕…"젊은 세대 관심 다행"
▲ 영화 '파묘'에서 풍수사 김상덕 역을 맡은 최민식

"단골 이발사가 영화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김상덕 선생의 아들이 자기 손님이라고 아내에게 자랑까지 했다더군요. 영화를 통해 아버지의 행적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젊은 세대가 많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독립운동가 김상덕(1892∼1956) 선생의 아들 김정륙(89)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고문은 최근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한 영화 '파묘'의 흥행 소감을 이같이 전했습니다.

영화 '파묘'는 극 중 곳곳에 숨어 있는 '항일 코드', 특히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더욱 화제가 됐습니다.

배우 최민식이 연기한 풍수사의 배역 이름도 독립운동가로서 1948년 창설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김상덕 선생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장재현 감독은 지난달 한 방송에 출연해 시나리오를 쓰다가 찾은 독립기념관에서 감명을 받아 오열했다며 "민족을 위해 음지에서 고생하셨던 독립운동가를 감히 소환해보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 고문은 오늘(23일)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아무 관련도 없는 풍수사 이름에 아버지 이름을 갖다 붙였다는 생각에 거부감도 컸다"며 "지금은 주변에서 훌륭한 아버지를 뒀다는 반응이 많아 뿌듯하다"고 말했습니다.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 선생

1935년 중국 난징에서 태어난 김 고문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 갓난아이였던 막내 여동생은 끝내 숨을 거뒀고 네 살이던 김 고문도 누나와 함께 고아원에 맡겨졌습니다.

"막내가 굶어 죽고 나니 충격을 크게 받으셨죠. 평소에는 자식들이 까부는 걸 보고 기분 좋아하시던 분이 고아원 가는 길에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꾹 다물고 계셨죠. 보름에 한 번 고아원을 찾아올 때마다 아들을 꼭 끌어안아 주시던 자상한 아버지셨어요."

해방 뒤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김상덕은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처벌하기 위해 반민특위 설치에 앞장섰고 위원장까지 맡았습니다.

반민특위 활동은 당시 군과 경찰 등에 다수 참여하고 있던 친일 세력에게 큰 위협이 됐습니다.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의 집요한 방해 공작에 시달렸고 김상덕에 대한 암살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고 김 고문은 주장했습니다.

"1949년 5월 말쯤에 이승만 대통령이 관사로 찾아와서 문교부 장관으로 임명하겠다며 아버지를 회유했어요. 아버지께서는 '민족의 등에 비수를 꽂은 매국노들을 감춰주는 대가로 흥정하자는 거냐'며 매우 화를 내셨어요. 이 대통령이 잔뜩 불쾌한 표정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반민특위가 큰 곤욕을 치르겠구나' 직감했어요."

결국 며칠 뒤인 6월 6일 반민특위는 경찰 습격으로 무력화됐고, 이후 김상덕은 1950년 7월 북한 정치보위부 직원 2명에 의해 납북됐습니다.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김정륙(89) 씨

김 고문은 '월북한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멍에를 안고 신문 배달과 공사장 일용직으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에 대한 감시는 1990년 아버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이 수여된 뒤에야 끝이 났습니다.

먼발치서 아버지를 떠나보낸 열다섯 소년도 어느덧 구순을 눈앞에 둔 노인이 됐습니다.

오는 28일 아버지의 68주기를 앞둔 김 고문은 더 늦기 전에 헌법기관을 파괴하고 민족정기를 짓밟은 데 앞장섰던 경찰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나중에 아버지를 뵈면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어야겠죠. 훌륭한 아버지 밑에 못난 자식을 두셔서 지금까지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에요. 경찰이 과거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명예 회복의 첫걸음이 될 겁니다."

(사진=쇼박스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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