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탈퇴 '실적 경쟁' 시킨 SPC…내부서도 "그만하면 안 되나"

국내 최대 빵집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허영인(74) SPC 그룹 회장과 전, 현직 임원들이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겠다며 만든 자회사에서 오히려 노조를 부당하게 탄압하거나 이용한 구체적 정황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SPC 자회사인 피비파트너즈는 민주노총 노조 탈퇴를 종용하기 위해 부서별로 실적을 비교하며 관리자들을 압박하기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가 발표한 SPC 그룹 부당노동행위 수사 결과에는 이 같은 과정이 세세하게 담겼습니다.

원래 피비파트너즈는 2018년 1월 11일 SPC그룹과 양대 노조, 가맹점주, 국회, 시민단체 간 사회적 합의로 탄생한 일종의 '친노동적' 제스처의 산물이었습니다.

파리바게뜨는 협력업체를 통해 고용한 제빵기사 5천300명을 각 매장에 배치했는데, 불법 파견이라는 사회적 비판이 일고 고용노동부도 이를 인정해 과태료 162억 원을 부과하자 SPC 그룹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를 타개하고자 한 것입니다.

자회사를 통한 불법 파견 근로자 직접 고용, 본사 직원과 3년 내 동일임금 약속, 부당노동행위 시정, 불법 파견 관련 유감 표명 등이 사회적 합의의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피비파트너즈 설립 이후에도 사회적 합의 이행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됐고 피비파트너즈는 오히려 부당 노동행위가 벌어지는 장이 됐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허 회장은 2019년 7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이 근로자 대표로 선출되자 사측에 친화적인 한국노총 식품노련 피비파트너즈 노조의 조합원 수 늘리기를 지원했습니다.

나아가 2021년 2월에는 허 회장의 지시로 민주노총 탈퇴 종용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민주노총 지회가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사측을 비판하는 집회를 이어가자 SPC 그룹이 '노조 힘 빼기'로 맞선 것입니다.

정 모 피비파트너즈 전무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없는 클린 사업장을 만들자며 매월 목표 탈퇴 숫자를 정해 8개 사업부장에 내려보내고 사업부 간 탈퇴 실적을 비교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각 사업부장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제조장·현장 중간 관리자(B/FMC)들을 독촉했는데 일부 사업부장은 탈퇴 성공 시 포상금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한 제조장은 현장 관리자들이 탈퇴 실적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자 한국노총 노조 위원장에게 "(탈퇴 작업을) 그만하면 안 되느냐"고 묻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인사 노무팀도 제빵기사들의 근무지와 담당 관리자, 소속 노조 등 개인정보가 담긴 명단을 한국노총 노조 위원장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해 조합원 모집을 도운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또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에게는 승진 인사 정성평가 때 원칙적으로 승진할 수 없는 'D 등급'을 주거나 낮은 점수를 부여하고 탈퇴한 조합원들에게는 인사상 혜택을 부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업부장들은 제조장들에게 민주노총 소속 기사 중 강성인 이들은 승진에서 배제하고, 승진 순위권 밖으로 하락시키기 위해 정성평가 점수에 불이익을 주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들은 검찰에 선입견을 갖고 낮은 점수를 준 것이 사실이라거나 노조 간부로 시위에 참석했기 때문에 낮은 점수를 줬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5월 승진 인사의 경우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은 승진 대상자 가운데 6%만 승진했습니다.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의 승진 비율은 30%, 비노조원은 약 20%였습니다.

2021년 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탈퇴를 종용받은 것으로 확인된 민주노총 노조 조합원 570명 가운데 560명이 실제로 노조에서 탈퇴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나아가 SPC 그룹은 수사·언론 보도·국회의 검증 요구 등으로 사측의 부당 노동행위와 사회적 합의 불이행 사실이 드러날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국노총 측 위원장에게 사측 입장에 부합하는 인터뷰를 하거나 성명을 발표하게 함으로써 '노사 갈등'을 '노노 갈등'으로 전환해 회사 리스크 관리에 이용했다고 검찰은 판단했습니다.

SPC 그룹은 한국노총 노조 위원장에게 사측 입장이 반영된 성명서 초안을 제공해 발표하게 하는가 하면 실제로 이뤄지지도 않은 노조 위원장 인터뷰를 기사 초안 형태로 기자에게 전달해 보도되게 하는 등 노조 운영에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회가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을 요구하자 노조가 '국회의 검증 요구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공문을 발송하도록 했습니다.

실제로 SPC 그룹은 이를 명분 삼아 검증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검찰은 이런 부당 노동행위를 주도한 허 회장을 구속기소하고 전 현직 임원 17명과 피비파트너즈 범인도 함께 재판에 넘겼습니다.

부당 노동행위 혐의로 기업 총수까지 기소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됩니다.

검찰 관계자는 다양한 인적·물적 증거를 통해 구체적으로 혐의를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본다며 허 회장 등이 범죄에 상응하는 형을 받도록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