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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와 넥슨, 미국이었으면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한국에선 언제쯤 가능해질까 [스프]

[귀에 빡!종원]

스프 귀에빡종원 게임

모든 문제의 근원 '확률형 아이템', 일명 '뽑기'

엔씨소프트·넥슨으로 대표되는 K게임사가 만약 미국에서 사업을 했다면? 아마 지금쯤 모두 파산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고객을 속였다'는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을 받고 천문학적 배상을 했을 것이라는 거다.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버린 한국의 게임사들, 게임판을 도박판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악랄한 확률형 아이템이 여전히 문제이다.

게임 관련 이슈는 늘 듣는 이들의 간극이 매우 큰 소재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열심히 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예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게임 인구는 어느덧 63%에 달한다. 전 국민의 2/3가 게임을 어떻게든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러다 보니 게임 산업은 거대 산업이 됐다. 게임이야말로 종합 예술 플랫폼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영상미와 음악은 물론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가 필수이고, 여기에 '게임성'까지 잘 녹아들어야 한다.

그러나, 음악, 영화, 드라마, 음식까지 전 세계에서 K문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때 이상하리만큼 한국 게임만큼은 잠잠하다. 세계적인 게임 시장은 여전히 미국과 일본, 그리고 일부 유럽 국가가 장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게임 산업 육성을 위해 많은 정책을 폈지만 한국의 게임사 스스로가 탐욕에 빠져 기회를 걷어찼다고 얘기한다. 그 이유 역시 확률형 아이템이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게임 시장의 절대 강자인 일본이나 미국의 게임사들 수익원은 당연하지만 주로 게임 그 자체이다. 게임을 싸게는 2~3만 원, 비싸게는 10만 원까지 받고 파는데, 책이나 음반과 비슷하게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이득이다. 게임이 유명해지면 IP파워가 생기고, 그로 인해 부가가치가 창출되기도 한다. 또 다른 수익원은 게임 안에서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이다.

단, '뽑기' 형태가 아닌 우리가 전통적으로 물건을 살 때와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원하는 아이템을 판매하는 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 게임사는 이런 수익 모델을 취하지 않는다. 몇 년씩 걸려 개발한 게임을 우선 공짜로 나눠준다. 공짜로 게임을 다운받은 사람들은 그러나 게임을 조금만 하다보면 깨닫게 된다. 돈을 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아이템을 구매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원하는 아이템을 바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 뽑기를 해야 한다. 마치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랜덤박스(럭키박스)'를 사듯이, 혹은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을 돌리듯이 돈을 내고 뽑기를 해야 하는데 그 확률이 극악한 수준이다. 0.n% 정도만 돼도 확률 높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인데, 심지어 0.00001%로 복권 당첨보다도 낮은 수준의 확률의 상품도 있다.

이러다 보니 내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뽑기 버튼을 누르다 보면 4~500만 원 나가는 건 일도 아니게 된다. 한국 게임을 놓고 '사행성을 조장한다', '도박이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역사

우리나라 게임은 어쩌다 확률형 아이템, 즉 뽑기가 주 수익원이 된 것일까? 그 시작은 넥슨이다. 넥슨은 2003년 출시한 공전의 히트작 메이플 스토리를 통해 전 세계 최초로 유료 뽑기 아이템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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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은 2004년 일본에서 먼저 유료 뽑기 아이템을 시도했는데, 이때만 해도 플레이어들이 이 새로운 시도를 무척 좋아했다. 금액이 그리 비싸지도 않았고, 뽑기 확률이 극악스럽지도 않았으며, 뽑기로 뽑는 아이템이 게임의 승패를 결정하는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말 그대로 아기자기한 재미 요소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큰 히트를 한 뽑기 시스템은 이듬해인 2005년 한국으로 넘어와 역시 대성공을 거둔다.

그렇게 여러 게임사가 유료 뽑기 아이템 모델을 차용하던 이때, 한국 게임계의 거목 엔씨소프트가 이를 극대화하기 시작한다. 엄청난 팬층을 보유하고 있던 한국 게임의 산 역사 '리니지'의 개발사였던 엔씨소프트는 2010년대 중반 이를 휴대폰용 게임으로 만들면서 유료 뽑기 시스템을 적극 채용한다. 극악의 뽑기 확률을 적용했고, 이 뽑기를 하지 않으면 게임을 아예 할 수가 없는 수준으로 만들었다.

이미 돈을 쓴 사용자들은 지금까지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계속 돈을 더 갖다 바치는, 이른바 '매몰' 상태에 이르게 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돈을 쓰는 고객들은 얼마나 많이 쓰느냐에 따라 고래와 돌고래로 불리기도 한다. 엔씨소프트는 이처럼 매몰된 사용자만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 작전은 그대로 성공했다.

엔씨가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는 걸 본 다른 한국의 게임사들은 이른바 '리니지 라이크', 즉 리니지의 수익 모델을 차용한 게임을 찍어내듯 양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돈을 쓸 준비가 된 게이머들의 호주머니를 공략하며 한때 3N이라 불리는 NC와 넥슨, 넷마블 3사의 시가총액이 60조 원을 넘기도 했다. 그야말로 '뽑기' 전성기가 온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게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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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은 끝이 없어서일까. 한국 게임사들은 돈 버는 재미에 푹 빠진 듯 뽑기 확률을 더욱 극악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악마의 뽑기라 불리는 된 '컴플리트 가챠'라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가챠'는 일본어로 '뽑기'를 뜻하는데, 이건 내가 원하는 아이템 그 자체를 0.n%의 확률을 뚫고 뽑아내는 것보다도 더 극악하다.

내가 원하는 아이템을 바로 가질 수는 없고, 10가지 재료를 모아 이걸 하나로 합쳐야지만 만들 수 있는데, 이 10가지 재료 모두를 0.n% 혹은 0.0n%의 확률로 뽑아야 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일본에서는 이 '컴플리트 가챠' 시스템이 2016년 폐지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게임사들은 이런 사업 모델을 개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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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저들의 불만이 하나 둘 폭발하기 시작했고, 3년 전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에서 확률 조작 사건까지 터지면서 한국 게임사들을 향한 민심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이 당시 등장한 것이 전광판을 설치한 트럭을 게임사 앞으로 몰고 가 시위를 하는 이른바 '트럭 시위'인데, 이 역시 한국이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트럭시위 국가라고 한다.

이렇게 싸늘하게 식은 게이머들의 민심은 결국 이들 게임을 조롱하는 수준에 이르게 됐고, 결국 이미 거액을 써 게임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일부 고래 유저들을 빼고는 대부분 한국 게임을 떠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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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2018년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는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듯한 발언을 한다. 확률형 아이템 모델이 지나치게 사행성을 자극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확률형 게임은 아이템을 가장 공정하게 사용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기술적인 장치"라는 망언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이 크게 화제가 된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단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유료 뽑기 아이템, 뭐가 나쁜가?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래서 뽑기형 아이템이 뭐가 나쁜 건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박과 비슷한 수준의 중독성을 가진 유료 뽑기형 아이템이 미성년자에게까지 퍼지는 경우를 전문가들은 경계한다.

한국게임학회 회장인 위정현 교수는 이 같은 사행성 게임을 미성년자까지도 아무 제재 없이 접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한국이 유일하다며 적어도 미성년자에게라도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던 한국의 게임산업이 완전히 몰락했다는 점도 대표적인 폐해로 꼽힌다. 정부가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해 힘을 쓴 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원래도 게임 강국 소리를 들었었는데, 이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등에 업었다면 세계 게임계에서 인정을 받는 수준이 됐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모두에서 언급했듯 K문화가 각광받는 요즈음에도 한국 게임만큼은 여전히 세계 게임 시장에서 변방 중에 변방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시장마저도 요즘은 중국 게임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의 재미는 뒤로한 채,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사업 모델' 하나만을 보며 달려온 한국 게임사 들인데, 이런 풍토에 환멸을 느낀 사용자들이 떠나가니 이제 와서 제대로 된 게임을 내놓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 틈을 오히려 게임성으로 승부를 보는 중국산 게임들이 차지하고 있다. '원신'으로 대표되는 중국 게임들 역시 유료 뽑기형 아이템을 채용하고 있지만, 그 확률이 한국 게임사만큼 극악스럽지도 않고, 게임사가 내세우는 그 확률이 실제로 구현이 되는지 검증까지 가능하다. 거기에다 무엇보다 유료 확률형 게임이 아니더라도 게임 자체가 재미있다 보니 오히려 한국 시장을 중국 게임들이 야금야금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위정현 학회장은 한국 게임 자체가 소멸돼 가고 있는데 어떻게 확률형 아이템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 소리 듣는데도 규제가 없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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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아이템', 즉 뽑기는 말이 게임이지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 이러다 보니 유럽 일부 국가는 '확률형 아이템'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기도 한다. 영국 같은 경우는 규제까지는 아니지만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미국은 의외로 별다른 제재 규정이 없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특히 서구권 게이머들은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페이 투 윈' 아이템을 돈을 주고 구매하는 걸 싫어한다. 특히 그것이 앞으로 얼마를 더 써야 할지 그 끝도 알 수 없는 '뽑기' 형태라면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을 당한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세계적인 게임회사인 EA사가 개발한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사례를 들 수 있다.

서양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타워즈 IP를 활용한 게임을 만들면서 한국 게임사들처럼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집어넣은 것인데, 이게 게이머들의 엄청난 분노를 불러오며 미국 의회까지 나서 EA를 비난했고,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게임이 아예 퇴출을 당하기도 했다.

서구권의 다른 게임사들도 당시 EA의 사례를 보고 지금까지도 유료 뽑기형 아이템은 웬만하면 채택하지 않고 있다. (유료 아이템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확정형 아이템은 대부분의 게임사가 도입하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가 먼저 반응하니 미국은 굳이 규제법안을 만들 이유도 없는 것이다. 중국 역시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얼마 전부터 전면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중국에 진출한 한국 게임들이 한국에선 극악의 확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에서는 더 아이템이 잘 나오는 내수 역차별의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한국은 다르다. 유료 뽑기 아이템의 종주국이자, 선을 넘는 수익 모델을 보유한 게임들도 버젓이 장사를 한다. 그 이유는 이런 행태를 제재하려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번번이 넘지 못하고 좌초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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