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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착] 일본 책벌레가 갉아먹은 문화재, 국내 기술로 완벽 복원됐다

국내 보존과학기술로 '관서명승도첩' 복원...숨겨진 2cm 그림도 복원

벌레로 인해 심하게 손상된 조선시대 화첩이 국내 최첨단 기술로 완벽하게 복원됐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7호 '관서명승도첩(關西名勝圖帖)'을 약 1년 6개월의 보존 처리를 거쳐 복원했다고 오늘(18일) 밝혔습니다. 

2003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7호로 지정된 관서명승도첩은 작자 미상의 19세기 실경산수화로, 실경산수화는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실용적 목적에 따라 기록하기 위해 그린 그림을 의미합니다. 

비단에 청록 채색으로 그려진 이 화첩에는 평안도 곳곳을 대표하는 명소를 중심으로 주변 경관이 총 16면으로 나눠 담겼는데, 지형지물과 건물마다 명칭이 표기돼 있어 현재 사라진 장소를 되짚어 볼 수도 있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서명승도첩 1폭 '영변 모향산'.

문제는 서울역사박물관이 이 작품을 입수할 당시, 그림이 그려진 쪽에 앞뒤를 관통하는 1∼2㎜의 작은 구멍 수백 개가 뚫려 있는 등 벌레에 의한 손상이 심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림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수십 마리의 벌레 시체와 애벌레, 분비물 등이 확인됐는데, 여기서 나온 벌레는 국내에서는 서식이 아직 보고된 적 없는 일본의 대표적인 '서적해충'으로 밝혀졌습니다. 

서적해충이란 서적을 갉아먹으며 구멍을 뚫는 해충을 일컫는 표현으로, 박물관은 유물이 입수되기 전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그 과정에서 손상돼 국내에 다시 반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습니다.

이번 보존 처리 작업은 서울역사박물관의 전문인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가 협력해 진행됐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연구원들이 일본 해충에 의해 훼손된 ‘관서명승도첩’(關西名勝圖帖)을 복원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우선 화첩의 구멍 부분을 메우기 위해 국내 기술로 '전자선 열화비단'이라는 복원용 비단을 따로 제작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복원했습니다.

전자선 열화비단은 전자선을 쬐어 인공적으로 비단의 조직을 약화시킨 비단을 말하는데, 이는 작품에 남아 있는 비단과 재질과 손상 정도가 비슷해 기존 유물의 비단과 자연스럽게 동화돼 뚫린 구멍을 메울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전자선 열화비단은 일본에서 수입해 썼으나 가격이 매우 고가여서 수급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번 작품 복원을 위해 사상 최초로 우리 과학기술로 전자선 열화비단을 직접 제작해 활용했습니다. 

이로써 관서명승도첩은 국내 과학기술로 전자선 열화비단을 제작해 유물 보존 처리에 사용한 최초의 사례로 남겨지게 됐습니다. 

관서명승도첩 복원 (사진=서울시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연구팀은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전자선 조사 선량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 시대별 회화 유물을 복원하는데 더 많이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번 보존 처리 과정에서 그림 가장자리에서 약 2cm 폭의 흰색 종이로 둘러싸인 부분에 숨겨진 그림까지 발견해 흰색 종이를 분리하고 원화를 복원했습니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벌레로 손상된 귀중한 유물을 국내 기술로 복원함으로써 보존과학 분야의 새장을 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보존처리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소장품의 다양한 훼손을 막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밝혔습니다. 

복원된 관서명승도첩은 오는 7월 서울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전시될 예정이며, 관련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museum.seoul.go.kr)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사진=서울시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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