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22대 국회, 여의도 정치를 끝낼 수 있을까?

[취재파일] 22대 국회, 여의도 정치를 끝낼 수 있을까?

여의도 정치를 끝내는 날

3월 27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4·10 총선 공식 선거 운동 하루 전날입니다. 기자회견 내용이 사전 공유되지 않았기에 정확한 발표 내용을 알고 있었던 기자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기자회견장 뒤 벽면 걸개에는 '여의도 정치를 끝내는 날'이란 문구가 걸려 있었습니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문구였습니다. 당시 윤재옥 원내대표 겸 공동선대위원장과 장동혁 사무총장 겸 선대위 총괄본부장도 배석했습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한 위원장은 기자회견 시작 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바로 얘기했습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사당을 완전히 세종시로 옮기고, 그 자리를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내용입니다. 한 위원장의 기자회견 첫 문장에 모든 게 담겨 있습니다.
 
한동훈 /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 (2024년 3월 27일 기자회견 中)
"국회의 완전한 세종시 이전으로 여의도 정치를 종식하고 국회의사당을 서울에 새로운 랜드마크로 시민들께 돌려드리고, 여의도와 그 주변 등 서울에 개발 제한을 풀어서 서울 개발을 적극 추진하겠다."
 

국회의사당 세종 완전 이전, 진심인가

발표 직후 국회의사당 '세종시 완전 이전' 공약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엄청난 관심을 받았습니다. 집권 여당이 국회의사당을 통째로 옮기겠다는 내용이기에 가히 파격적이었습니다. 이미 21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사당 기능을 세종시로 일부 이전하기로 합의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었습니다. 11개 상임위원회와 1개의 특별위원회를 세종시로 옮기기는 내용이 담긴 국회규칙안도 통과됐습니다. 국민의힘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부 이전이 아닌 완전 이전 카드를 꺼내든 것입니다.

국회

세종시 완전 이전 공약에 반신반의하는 시선도 많았습니다.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국민의힘이 수세에 몰려있을 때입니다. 이종섭 전 호주대사와 황상무 수석의 언론인 테러 발언으로 지지율이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분위기 전환용으로 급히 띄운 이슈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또 캐스팅 보트인 충청권 표를 막판에 수집하려는 의도가 숨겨 있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진심'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국회의사당 세종 완전 이전, 추진 배경에는?

국회의사당 세종시 완전 이전 공약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장동혁 국민의힘 전 사무총장입니다. 장 전 사무총장은 선거대책위 총괄본부장을 겸직하면서 한동훈 위원장과 함께 선거 전략을 상의해 온 헤드 테이블 멤버 중 한 명입니다. 충청도 출신 장 전 사무총장이 처음 제안했고, 지도부 상의를 거쳐 해당 공약이 최종 발표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장 전 사무총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국회 세종의사당으로 일부 기능만 이전하는 것에 회의적인 의견을 내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마침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 법안을 다루는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이었습니다. 당시 어중간하게 12개의 상임·특별위원회를 옮기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기형적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는 법안들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법사위는 정작 서울에 남아있는 게 맞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해당 발언은 지난해 8월,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 국회규칙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 열린 소위원회 희의록에 남아 있습니다.
 
장동혁 / 국회의원 (2023년 8월 23일 국회 운영위 소위원회 中)
"법사위는 고유법보다는 타위법 처리가 훨씬 더 많은데 지금 모든 부처가 대부분 세종에 있는데 법사위를 남겨 두면 부처가 대부분 세종에 있는데 법사위를 타위법 할 때마다 장차관이 다 서울로 올라와야 하지 않습니까? … 자꾸 우리가 업무의 효율을 따지면서 법사위를 서울에 남겨 두겠다고 하는 것은 글쎄요. 저는 효율성 측면에서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문제 제기를 합니다."

추진 명분 ① "세종은 0에서 100으로, 서울은 100에서 1000으로"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대위 지도부는 국회의사당을 세종으로 일부 옮길지언정 본회의장이나 법사위를 서울에 두는 이상 기능은 여전히 0에 가깝다고 판단했습니다. 완전 이전을 해야지만, 세종의사당의 입법 기능이 0에서 100이 된다고 봤습니다. 대신 서울이 100에서 0이 되는 '프레임'을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의 고도 제한을 풀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부지를 '랜드마크'로 만들어 100에서 1000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국회의사당 이전에 회의적인 서울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 균형 발전이란 명분 아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전략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국회의사당 완전 이전으로 충청권 표를, 여의도 개발로 '한강벨트' 표를 노린 셈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격전지인 충청과 한강벨트 유권자를 의식한 공약이란 비판도 있겠지만, 이런 비판을 감내하고서라도 정체된 당 지지율을 반등시켜보려 했던 셈법이 담겨 있습니다.

추진 명분 ② "정치 특권 내려놓기의 마지막 작업"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취임 초기부터 정치 특권 내려놓겠다며 여러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불체포 특권 포기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이밖에도 출판기념회 통한 정치자금 수수 금지, 의원 정수 축소 등 화두를 던졌습니다.

서울 여의도에 본회의장 등 일부 기능을 여전히 남겨두는 것도 정치 특권의 연장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서울을 제쳐두고 세종으로 내려가는 것 자체가 '정치 개혁'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회견 당일 벽 걸개도 '여의도 정치를 끝내는 날'이었습니다.

곱지 않은 시선 ① "헌법 개정해야 가능"

국회의사당 세종 완전 이전 공약은 앞서 말했듯이 순수성을 의심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총선을 10여 일 앞두고 급히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비관적으로 보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개헌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결정내린 바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진정성 있게 세종시 완전 이전 공약을 꺼내려 했으면 개헌에 대한 내용도 포함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세종시 행정수도'를 내세웠습니다. 지난 2003년, 대통령 당선 이후 국회에서는 '신 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이 통과됐습니다. 하지만 서울시 공무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옮기는 것은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개헌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가 필요하고, 국민투표 절차도 거쳐야 하는데, 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본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서울시 공무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관습헌법상 수도는 서울이라는 대전제를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옮기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국회가 수도 이전 특별법을 통과시킨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사당의 세종 완전 이전은 헌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헌법학계에서도 나옵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한 전공)는 수도 이전이 아니라 국회의사당을 옮기는 문제는 개헌 이슈를 피해 가긴 어렵다고 봤습니다. 수도의 기능 중 하나에 입법이 포함돼 있는 만큼 국회의사당을 옮기는 건 곧 수도 이전 문제와 직결된다고 해석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물론 이에 반박하는 법조인 출신 국민의힘 관계자들도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2004년 결정을 내릴 때와 지금은 시대상이 달라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중앙 부처와 산하 기관들이 세종시로 상당수 이전해 수도의 기능을 일부 수행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법관 출신 장동혁 전 사무총장도 헌법 120조 2항에 '국가의 균형발전에 대한 책무'가 명기돼 있는 점을 짚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곱지 않은 시선 ② "충남과 충북은 달라"

국민의힘이 국회의사당 세종시 완전 이전 공약 이후 충청권에서는 화색을 보였습니다. 공주·부여·청양이 지역구인 5선 정진석 의원이 바로 환영의 뜻을 내비쳤습니다. 다른 대전·충남권 의원들도 지역구민이 당장 혜택을 보는 건 없어도 충청도를 챙겨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호재라고 환영했습니다.

다만 대전·충북 지역은 약간의 온도차가 있습니다. 물론 환영할 일이긴 하지만, '빨대 효과'를 경계하는 분위가 있었습니다. 세종시의 기능이 집중되고 인구가 몰리면, 주변의 다른 도시들이 피해를 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종시랑 근접한 충북 청주시 등은 마냥 환영한 일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또 이미 세종의사당이 설치될 예정인 마당에 일부가 아닌 '완전 이전'이 확 와닿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국회의사당 세종 완전 이전, 22대 국회서 가능할까

4·10 총선 결과 국민의힘은 완패했습니다. 108석 확보에 그치며 개헌 저지선(101석 이상)을 겨우 지키는데 그쳤습니다. 법안이 통과하려면 과반 동의가 필요한 만큼 국민의힘 주도로 법안을 22대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게다가 완전 이전 특별법을 발의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상대 민주당 박수현 후보에 패해 원내 입성에 실패했습니다. 야권의 도움 없이는 실현될 수 없는 공약이 됐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

그런데 범야권이 국민의힘의 국회의사당 세종시 완전 이전에 공개 반대하지 않는 점도 눈여겨 볼 점입니다. 민주당은 급조한 공약이라며 순수성을 의심할 뿐 이전을 명확히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지난해 8월, 국회 운영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세종의사당 설치 논의 당시 회의록을 살펴보면 민주당 운영위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국회의사당 세종 완전 이전에 찬성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쳤습니다. 따라서 22대 국회에서 막강한 입법 권한을 가진 범야권이 실행에 옮길 의지만 있다면 완전 이전은 가능합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자신들이 공약으로 내세운 것을 반대할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향후 헌법 소원이 제기될 경우 '위헌'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병행돼야 합니다. 또 완전 이전을 하려면 그만큼 이전 비용이 더 많이 드는 만큼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국회의사당 세종 완전 이전, 협치 산물?

국회의사당 세종시 완전 이전이 22대 국회에서 여야 협치의 첫 산물이 될 수 있습니다. 여야가 강대강 대치를 원하는 게 아니라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협치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면 이만한 카드가 없습니다. 국민의힘의 '금융투자세 폐지' 공약은 민주당에서 '부자 감세'라며 비판하지만, 국회의사당 세종 이전 공약은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딱히 반대할 만한 정책이라고 보이진 않습니다.

국회

국회의사당 세종 이전은 입법 주도권을 쥔 민주당 입장에서 국민의힘 공약을 일부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관대', '포용', '협치'란 이미지를 선점할 수 있습니다. 또 국민의힘이 총선 전 얻고자 노렸던 '충청권 민심'을 민주당이 먼저 챙겨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약속한 공약을 실행해 옮긴다는 명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여의도 정치를 끝내는 날 '이란 걸개가 21대 국회에서는 빨간색 배경의 국민의힘 당사 기자회견장에 걸렸지만, 22대 국회에서는 색깔도, 장소도, 사람도 바뀐 채 국회 어딘가에 걸려있을지 모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