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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있다'고 말하려면 [스프]

[주간 조동찬]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8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병원 들어가려고 짐 싸 두었는데.."

지난주 지방 국립대 A 교수와 전공의들의 저녁 자리가 마련됐다. 주 90시간이 넘는 근무에 초췌해진 얼굴이었지만 엷은 미소를 띠며 A 교수가 먼저 말을 건넸다.

"전공의 선생님들이 없으니까 응급실이 가장 문제야. 급한 어린이 환자는 외래 진료처럼 축소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많아서 우리가 비몽사몽 상태이잖아. 응급 중증 환자가 왔다는 응급실 콜을 받으면 덜컹 겁부터 나더라."

주 90시간이 넘는 근무를 한 달 넘게 벗어났지만 전공의들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 전공의들은 의료 대란에 관련된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어떤 생각을 공유하고 있으며, 어떤 논의들이 오가고 있는지 등 A 교수는 너무 궁금했지만 물을 수 없었다. 전공의들이 개별적으로 입장을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것을 교수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공의 개인 견해가 전체 의견처럼 보도되면서 겪었던 혼란에 대한 일종의 방어 기제였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의료 대란에 관한 얘기는 다음 날 있을 대통령 담화로 국한됐다.

"여러 언론 보도를 보니까, 내일 2,000명 증원에 대해서 정부가 양보할 수도 있을 것 같던데?"

그날의 저녁 자리는 오랜만이었지만 짧게 끝났다. A 교수는 병원 당직실로 돌아와 병원 진료 시스템과 연동된 컴퓨터를 켰다. 모니터 옆에 붙어있는 종이에 전공의 B의 글씨가 쓰여 있다. 집에 가던 뒷모습이 유난히 쓸쓸했던 전공의 B, 그는 생활고에 시달린다며 가끔 택배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다음 날 예고대로 51분의 대통령 담화가 있었지만 교수는 아침부터 심폐소생술을 하느라 챙겨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전공의 B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교수님, 어제 교수님 말씀 듣고, 병원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다시 병원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설레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A 교수는 자신이 만나 본 전공의들 분위기는 '자포자기'와 '우울'이라고 했다.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의 만남 이후 박 위원장의 SNS에 남겨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을 접하며, 자포자기와 우울은 내게도 깊게 스며들었다.
 

주 100시간 넘게 일하는 의대 교수들

엄마 자궁에서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자 의사는 먼저 하얀 천으로 아기 얼굴을 닦아 냈다. 한 손으론 아기를 가슴에 안고 다른 한 손으론 탯줄을 잡는다. 전공의의 빈 자리를 서울아산병원 원혜성 교수는 두 손으로 버텨내고 있다. 원 교수는 고위험 출산을 담당해 온 서울아산병원의 베테랑 산부인과 전문의인데 목숨 걸고 네 쌍둥이의 엄마를 구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원 교수는 전공의들이 떠난 자리에서 당직을 서고 어렵게 수술을 하고 있다. 신경외과 뇌 수술도, 흉부외과 심장 수술도 교수 1명이 집도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의대 교수 1,654명에게 근무시간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7개 대학병원별 통계라 결과는 구간으로 공개됐다. 주당 40~52시간 근무하는 비율은 8.3~15%, 주간 72시간 이상 근무는 40.4~59%, 주당 100시간 초과는 6.4~16% 였다. 100시간 넘게 근무하는 교수가 10명 중 1명 꼴이었다.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주 52시간만 근무하겠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그러면서 의대 교수들은 이런 말을 전해왔다.

"이런 사태로 인해 수술이 예정돼 있다가 수술을 못 받고 있는 환자분들께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저희는 환자 곁을 끝까지 지키면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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