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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번에 피는 '클론 벚꽃', 취약점은 이것 [스프]

[지구력] 기후위기 시대 벚꽃의 유전적 다양성 지킬 방법

스프 벚꽃
지난 주말 각종 SNS와 단톡방마다 만개한 벚꽃 사진이 도배하다시피 했죠. 특히 올해는 들쭉날쭉 개화 시기로 애태웠던 만큼 완연한 봄날씨 속에 피어난 벚꽃이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벚꽃 개화 시기를 제대로 예측하느냐 마느냐는 봄 정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 지자체마다 대표 축제로 내세워 상업화하다 보니 벚꽃 명소를 찾는 관광객, 재정을 투입해 행사를 관리하는 지자체, 관련 서비스 업종 등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릴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강원도 속초 등 일부 지자체에선 정확한 벚꽃 개화 시점을 맞추지 못해 축제를 두 차례 열어야 했죠.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이상 기상 현상이 더욱 심각해질수록 벚꽃 개화 시기도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벚꽃 명소에 심은 소메이요시노종, 접붙이기로 만든 동일 유전자"

스프 벚꽃
그런데 벚꽃 개화와 관련해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벚꽃 개화 시기가 어떻게 달라지느냐 이게 최근의 관심사라면, 오랫동안 벚꽃나무를 식재하고 키워온 지자체나 양묘업체들에겐 다른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일반 개인들이 한두 그루 사다 심는 게 아니라 지자체나 특정 단체에서 벚꽃 명소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 식재를 할 경우 개별 나무 개체들의 개화 시기를 어떻게 맞출 거냐 하는 점입니다. 이런 고민의 결과로 식물학적 과학기술이 동원됐는데요.

과수나무에서 많이 쓰여온, 이른바 클론묘를 만들어 보급하는 겁니다. 클론묘란 나무의 씨앗을 받아 발아시켜 새로 키우는 게 아니라 기존의 잘 자란 나무 개체에서 그 가지나 눈을 따다 또 다른 나무 밑둥(대목)에 접붙이기를 하는 방식입니다. 씨앗으로 자라나는 실생묘는 엄마 나무와 아빠 나무의 유전자를 나눠 가지면서 유전적 다양성을 갖게 되는데요. 클론묘 방식은 아빠 나무 없이 어미목의 단일한 유전자가 복제 증식되는 방식이라서 말 그대로 '클론', 즉 복제품과 같습니다.

이렇게 유전자가 동일하기 때문에 개체가 달라도 꽃이 피는 개화 시기가 가장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벚꽃 하면 특정 가로 구역 전체에서 동시 개화한 벚꽃 군락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이렇게 일제히 한순간에 피어나는 벚꽃의 특성은 자연적인 현상일뿐만 아니라 업계의 노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여의도 봄꽃축제 마지막 날인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대 모습
진해와 경주, 여의도 등 국내 벚꽃 명소로 알려진 상당수 지역의 벚꽃나무들이 이같은 클론 증식을 통해 증식돼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나무들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국내 자생 왕벚나무 보급 운동을 펼치고 있는 왕벚프로젝트2050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조사한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대의 벚나무뿐 아니라 올봄에 조사한 경주 일원의 벚나무는 거의 대부분이 일본산 소메이요시노 벚나무로 동일하다고 밝혔습니다. 올봄에 조사한 경주의 경우를 보면, 보문호 둘레길, 불국사 벚꽃단지 등 9개소에 식재된 벚나무 5,576그루를 분석했더니 이 가운데 소메이요시노가 4,956그루로 89%를 차지했다는 겁니다. 신준환 왕벚프로젝트2050 회장은 "일본산 소메이요시노는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은 채 일본 내 특정 벚나무 한두 그루에서 교잡이 이뤄진 뒤 단일한 클론형이 만들어졌으며, 이후 유성생식이 아닌 무성생식의 클론 복제 방식으로 증식돼 왔다"고 말합니다. 이 말대로라면 여의도나 경주 등지에서 자라는 소메이요시노 왕벚나무는 거의 99% 유전자가 일치하는 클론형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벚꽃 철을 맞아 한 치 오차 없이 동시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셈이고요.
 

클론 왕벚나무, 병충해 취약 수명도 짧아

이렇게 동시에 피어나는 벚꽃 군락이 상춘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지만,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유전적 다양성이 없기 때문에 특정 병충해가 발생하면 일제히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 하나고요. 둘째는 자연산 씨앗 발아 개체 혹은 자연산 잡종 개체에 비해 수명이 짧다는 겁니다. 소메이요시노의 수명은 80~100년에 그치는 걸로 보는 반면 국내 자생 왕벚나무는 수백 년까지 사는 걸로 알려집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정은주 강원대 교수 논문에 따르면 "국내외에 조성된 유명 왕벚나무 가로수는 접목 생산 때 바이러스 검사를 거치지 않아 대부분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지적된 바 있습니다(E.J. Cheong et al. 2015). 총 344그루를 조사했는데 이 중 96%가 적어도 하나 이상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고 73%는 2~6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 산림청은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해도 왕벚나무 생육과 개화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걸로 알려졌다고 해명하긴 했지만, 당장은 피해가 없을지 몰라도 감염 상태가 오래 지속될 경우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특히 2010년대부터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곰팡이 포자에 의한 빗자루병이란 게 왕벚나무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빗자루병에 감염되면 호르몬 이상을 초래해 가지가 비대해지고 작은 가지들이 많이 자라나는 대신 꽃이 거의 피지 않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문제는 이 병원균의 생태 특성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방제법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겁니다.

빗자루병 확산은 기후변화의 연관성도 점쳐지고 있는데, 습도가 높거나 건조 현상이 지속되는 극단적 기상이변이 되풀이될 경우 둘 다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습도가 높을 경우 곰팡이가 더 확산하기 쉽고, 건조한 날씨가 길어질 경우에도 곰팡이 포자가 멀리 날아갈 수 있어서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또 태풍이나 홍수로 인해 나무의 상처가 많아질 수 있는데 이같은 상처 자리에 병원균이 침입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일제히 동시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특성이 사라진다면 벚꽃이 상춘객에게 주는 감흥은 훨씬 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수명이 다한 왕벚나무를 갱신할 시점이 도래할 텐데, 그 자리에 어떤 나무를 심어야 할까요? 봄꽃맞이 인파에게 감흥을 선사하기 위해 소메이요시노의 클론형을 다시 심어야 할지 아니면 심화되는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고려해 유전적 다양성을 높일 수 있도록 소메이요시노가 아닌 다른 벚나무를 섞어 심어야 할까요? 아니면 아예 벚나무가 아닌 다른 종류를 함께 심어야 할까요? 여의도 벚꽃나무를 관리하는 영등포구청은 앞으로 소메이요시노 대신 제주왕벚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입니다만 이 역시 접붙이기 방식으로 증식된 개체들을 심는다면 동일 유전자 문제는 마찬가지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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