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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비판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보는 일이 가능할까? 정치에서.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When It Comes to Politics, Are Any of Us Really Thinking for Ourselves? by Neil Gross

0410 뉴욕타임스 번역
 
*닐 그로스는 콜비 카릴지의 사회학과 교수로 지적 생명체의 사회적 측면을 연구한다.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이 공화당원인지, 민주당원인지 예측해야 한다면, 그 사람에 관한 기본적인 사실 몇 가지를 아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사람의 인종, 성별, 학력이나 도시, 근교, 시골 중에 어디에 사는지 등이다.

예를 들어 2016년과 2020년 사이에 한 조사를 보면, 미국에서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 중에는 공화당 지지자가 (민주당 지지자보다) 24%p 더 많았다. 내가 사는 메인주 중부 시골에 사는 사람과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면, 그 사람은 공화당의 주장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성별에 따라 범죄, 치안에 관한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해 보자. 남성은 여성보다  사형 제도에 찬성하는 비율은 10%p 더 높고, 반대로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비율은 10%p 낮다. 인종, 민족에 따른 불법 이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또 어떤가? 라티노 미국인에 비해 라티노가 아닌 미국인은 이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불법 이민자를 "더 많이 추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22%p 더 높다.

물론 일반화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긴 하지만, 인구통계학적 경향은 분명 한 사람의 신념을 예측하는 데 유용한 지표가 된다. 특히 오늘날 선거가 점점 더 투표율에서 승부가 갈리는 설득의 게임이 된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인구 통계에 따라 정치 성향을 예측하다 보면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만약 우리의 정치적인 관점과 행동이 (우리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인종이나 (계급, 계층, 부모의 소득에 따라 상당 부분 제약이 따르는) 교육 같은 특징에 따라 결정되는 거라면, 정치적인 성향을 따져볼 때 남들의 성향 말고 내 정치적인 성향에 관해,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사람은 우리 중에 과연 얼마나 될까?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는 정치적인 견해가 다른 '상대편'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고나 윤리적인 추론을 못 하고 있다는 주장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들이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을 이루는 상황을 두고, 그 유권자들이 정보가 부족해서 그렇다거나 심지어 지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도널드 트럼프가 늘어놓는 거짓말에 도대체 왜 넘어간단 말인가? 반대로 공화당 지지자들은 "진보 진영의 (편향된) 집단 사고" 문제를 지적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경찰 예산을 깎고 아예 경찰 조직을 해체해 버리자는 단순하면서도 실현 불가능한 주장을 한 목소리로 외칠 수 있단 말인가?

방금 든 예는 좀 더 넓게 보면 지지 정당에 따른 고정관념이 드러나는 주장이다. 미국에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이런 고정관념도 강화됐다. 서로 상대 진영 사람들이 자기 성찰이 부족하다고 손가락질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2022년의 민주당원은 공화당원들을 가리켜 폐쇄적이고, 정직하지 않으며, 도덕적으로 낙제를 면치 못하는 수준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6년 전 민주당원보다 훨씬 더 크다. 공화당원이 민주당원에 관해 느끼는 바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적인 견해에 지적인 혹은 도덕적 미덕 외의 요인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에 관해선 놀랍게도 다들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대학 졸업장이 있는 전문직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민주당에 더 끌리는 이유가 어느 정도는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교육 수준이 높고 전문성이 있는 이들을 더 우대하는 정책을 펴기 때문이라는 꽤 자명한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계급적 이해관계가 다분히 반영된 자신들의 정치 성향을 국가의 미래를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순수한 이타주의로 포장한 다음 이를 철석같이 믿는다.

마찬가지로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건 트럼프가 기독교적인 가치를 신봉하거나 최소한 기독교에 우호적인 판사를 연방법원의 주요 보직에 임명하리라는 기대, 또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에 더 유리한 교육 정책을 펴주리라는 기대가 다분히 반영돼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 성향을 애국으로 포장하며, 자신이 속한 종교 집단의 이해관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 중에 누구도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믿는 정치적인 견해는 우리의 사회적인 지위, 계층, 그에 따른 사회적 압박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우리가 지적이고 도덕적인, 심지어 때로는 영적인 탐구를 포함한 숙고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정치적인 견해를 갖게 됐다고 믿는다.
 
물론 자기의 믿음과 견해의 뿌리를 굳이 자세히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  다양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그러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다. 낯선 도시에서 익숙하지 않은 길을 운전할 때 휴대전화의 길 안내를 따르다 보면  인지적 손실이 발생하겠지만, 그 덕분에 안전하게 운전해서 목적지에 효율적으로 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 더 나은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병에 걸리면 의사를 찾아간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의사가 내리는 진단과 처방을 믿기 때문에 의사, 좀 더 넓게는 의료 시스템이 나 대신 나에 관해 생각하고 들여다볼 수 있게 허락하는 셈이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따를 때 일반적인 통념을 따르는 것보다 결과가 낫다는 사실은  코로나19 백신을 거부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망률이 높았던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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