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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첫 폭행치사 피해자' 김계원 씨 37년 만에 유족 나타나 [취재파일]

형제복지원 '첫 폭행치사 피해자' 김계원 씨 37년 만에 유족 나타나 [취재파일]

당시 공소장에 적힌 유일한 '폭행치사' 사망자


'최악의 인권 유린' 사건으로 불리는 형제복지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지던 1987년 검찰이 처음 인지한 폭행 사망 사건이 있습니다. 1986년 8월 울주작업장에서 소대장 폭행으로 37세 나이로 숨진 김계원 씨 사건입니다.

당시 담당 검사였던 부산지검 울산지청 김용원 검사가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을 조사하던 중 "소대장 김충열이 김계원을 폭행해 사망했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이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취재1

하지만 형제복지원은 1986년 8월 3일 김계원 씨가 사흘 만에 병원에서 사망하자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허위 사망진단서를 발급했습니다. 김 씨의 사망진단서에는 '직접사인: 심부전증, 선행사인: 전신쇠약'이라고 기재됐습니다. 그리고 김 씨의 시신은 일주일 뒤 부산시 화장장에서 화장됐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취재2
형제복지원 사건 취재3

김 검사는 진단서를 발급한 촉탁의사 정명국으로부터 '허위 발급이었다'라는 자백을 받아내 이충열 소대장을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기소 됐습니다.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 등 5명도 특수감금,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허위진단서를 발급한 의사 정 씨도 불구속 기소됐습니다.

소대장 이 씨는 폭행치사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망한 김 씨의 가족은 이 소식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알게 된 동생은 "당시 형이 수용소에서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소문으로만 들었지 형이 폭행치사 피해자라는 걸 알 방법이 없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소대장 이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도 못했고 진실화해위원회에 피해 접수도 하지 못했습니다. 김 씨는 그렇게 언론에 등장했던 '구타 피해자'로만 남았습니다.
 

"우리 형 이야기라니요"

그로부터 약 37년이 지난 2024년 4월 김계원 씨의 직계 가족이 나타났습니다. 김 씨의 친동생입니다. 이름을 밝히길 원치 않는 동생 A 씨(66)는 최근 언론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 판결' 소식을 접하면서 형에 대한 기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A 씨는 "형이 사망할 당시 20대 초반이라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었다"며 "뉴스를 보고 형의 생각이 나 지금쯤이면 형의 기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산시청에 기록을 문의하자 김 씨의 형제복지원 입소와 사망 기록 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기록을 보던 시청 관계자가 김 씨가 당시 폭행치사 사건의 피해자 김계원 씨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인지했고, 피해자협의회에도 알렸습니다. 박경보 피해자협의회장이 동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김 씨 사건을 설명했습니다.

"…그저 황망했습니다." 형의 소식을 들은 A 씨는 당시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형이 신문에 나온 사람이었다는 걸 알 길이 없었어요. 지금 알게 된 게 너무, 너무 아쉽습니다." 김 씨의 남은 가족은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동생 A 씨입니다. A 씨는 "어머니부터 가족 모두 형을 수십 년 동안 가슴에 묻은 채 살아왔다"고 토로했습니다.

동생 A 씨는 당시 형이 옆집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경찰에 신고된 후 복지원으로 끌려갔고 이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동생이 기억하는 김 씨의 마지막은 부산시청 기록에도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취재4

3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김 씨의 아버지는 숨졌고 어머니는 90세가 넘었습니다. A 씨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잊은 채 한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에게 이를 알려야 할지 고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씨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이충열 씨는 이미 10여 년 전 사망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씨도 그동안 사망했습니다. 형의 죽음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관계자들은 사망했습니다.

뒤늦게 파악된 형제복지원 피해자…구제 방법은


김계원 씨의 동생 A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생각입니다. 하지만 과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피해 접수를 하지 못했고 진화위 조사 후 490여 명에게 발급된 '진실규명 결정서'도 받지 못했습니다.

최근 대한법률구조공단이 형제복지원 피해자와 유족을 대신해 국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여기에 참여하려면 역시 진화위의 진실규명 결정서가 필요합니다. A 씨는 따로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하는 방법도 고민 중입니다.

김계원 씨처럼 피해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부산광역시 형제복지원 사건 등 피해자종합지원센터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진화위에 미처 피해를 접수하지 못한 피해자는 396명입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전신인 형제육아원이 설립된 1960년 7월 20일부터 1992년 8월 20일 후신인 정신요양원이 폐쇄될 때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면서 폭행, 사망, 실종, 강제노역 등의 인권침해 행위가 벌어진 사건입니다. 진화위 조사에 따르면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는 4만 명에 이르고 최소 657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진화위 결정문을 받은 피해자들은 국가와 부산시 등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국가 배상 판결이 나오면서 피해자 승소 판결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첫 판결 등 관련 소송에 불복해 항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료 출처: 부산광역시 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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