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연 25만 개 범죄 영상 지우고 '해외 서버 이민'도 추적한다 [스프]

[더 스피커] "피해에 상응하는 처벌 돼야" -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강명숙 팀장 인터뷰

스프 더스피커
201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N번방' 등 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 이후에도 디지털 성범죄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불법 촬영', '유포 협박' 같은 몇 가지 단어를 검색하면 매일같이 최신 기사가 쏟아집니다.

"짧은 바지 또는 원피스를 입은 여성들에게 접근해 휴대전화로 치마 밑을 불법 촬영하고…"

"교실에서 교사 신체 부위를 44차례에 걸쳐 촬영하고, 여교사 전용 화장실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해…"

"모델로 채용할 것처럼 속여 점차 노출 정도를 높인 사진을 요구하고, 모텔로 오라는 강요에 피해자가 거부하자 지인에게 노출 사진을 전송해…"

"성관계하는 장면 등을 동의 없이 촬영하고 온라인에 게시한 데 이어 다른 이용자들에게 이를 내려받고 재배포하길 권유해…"

"여학생들을 몰래 찍거나 SNS에서 사진을 다운받은 뒤 '딥페이크 봇'이 합성해 만든 신체 노출 사진을 친구들에게 전송하고…"

불법 촬영 피해는 그 자체로 수치스러운 경험이지만, 온라인에 유포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습니다. '완전한 삭제'가 힘든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은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듭니다. 특정 사건이 회자되는 것만으로도 해당 불법 촬영물을 주고받으려는 시도가 늘기 때문입니다.

<더 스피커>는 전면에 나서기 어려운 피해자들의 작은 목소리에 집중했습니다. 피해 사실을 부각하기보다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집중하기 위해, 특정 사건 피해 당사자가 아닌 수많은 피해자를 지원해 온 전문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난해에만 24만 5천여 건의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삭제한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디성센터) 강명숙 상담연계팀장입니다.

스프 더스피커

전 세계 사이트를 추적한다

Q. 어디까지가 '디지털 성범죄'인가요?

A. 저희는 법적으로 처벌되는 걸 '디지털 성범죄'라고 명명하고 있어요.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서 불법 촬영을 하거나, 그걸 유포, 합성·편집, 유포 협박, 시청·소지·저장하는 것까지 포괄합니다. 즉,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서 사람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가지고 생산, 유통, 소비하는 것 자체가 다 '디지털 성범죄'입니다.

Q.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이 워낙 충격적이지만, 그외 일상에서도 디지털 성범죄가 많이 벌어지고 있죠?

A. 예전에는 많은 분들이 '디지털 성범죄가 내 일상에 침투했다'라고 생각을 안 한 것 같아요. N번방 사건 이후 '나도 이런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라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어요. 숙박업소를 가거나, 뭔가 촬영기기가 반짝거리는 걸 본 경험을 했을 때 '나도 혹시 피해에 노출된 게 아닐까' 하고 연락을 주는 분들이 있어요. 실제로 유포 협박을 당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불법 촬영 피해를 경험해 상담 요청을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습니다.

Q. 센터로 상담 요청이 오면, 유포된 불법 촬영물을 찾아내서 삭제까지 한다고요. 온라인에서 그런 촬영물은 어떻게 찾는 건가요?

A. 기술적으로 찾아내는 방법이 있고, 숙련된 삭제 지원자들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삭제하는 방법이 있어요. 저희가 영상 DNA 분석 기술이 탑재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데, '피해 촬영물'과 온라인에 '유포된 촬영물'의 DNA를 분석해서 유포 여부를 검출해내는 게 기술적 조치에요. 그걸로 찾아낼 수 있는 건 극히 일부분이고요. 나머지는 삭제 담당자들이 각각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유포가 됐는지 확인하고, '피해 촬영물'과 '유포물'을 비교합니다.

Q. 영상 DNA란 게 뭔가요? 피해 영상 원본을 갖고 있어야 유포물과 DNA도 대조할 수 있겠네요?

A. 사람의 몸에 DNA가 있는 것처럼 영상에도 고유한 값이 있어요. 그걸 '영상 DNA'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희 피해 지원 기준 자체가 영상 확보가 원칙이에요. 피해자가 URL(사이트 내 피해 촬영물이 게시된 게시물 등의 구체적인 주소)을 주면, 저희가 어떤 방식으로든 영상 원본을 확보한 이후 지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남자친구 휴대전화에 내 촬영물이 있다'라고 하면, 경찰 신고 후 경찰이 촬영물을 확보하고, 저희에게 촬영물을 전송해 줍니다.

Q. 영상을 편집하거나 합성하는 식으로 변형하면 DNA 값도 바뀔 텐데, 그것도 찾아낼 수 있나요?

A. 저희가 갖고 있는 기술로 약간의 값이 바뀌더라도 그 비율(%)을 설정해서 찾아낼 수 있어요. 요즘 디지털 성범죄가 진화되고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다 보니, 인력이 직접 찾아내서 비교하고 삭제 조치까지 하고 있습니다. 삭제팀 인력이 숙련된 노하우를 가지려면 적어도 몇 년 정도는 업무를 진행해야 돼요. 새로 들어오는 분들한테도 교육을 깊이 있게 하고 있어요.

Q.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찾는 거네요. 성인 사이트, 웹하드 같은 데를 일일이 들어가 찾는 건가요?

A. 웹하드는 작년에 유포가 0건이에요. 저희가 2019~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웹하드에서 촬영물을 찾아낼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서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어요. 현재는 웹하드에 촬영물을 올렸을 때 자신의 가해 행위가 특정되기 때문에 거기에 올리는 사람은 없어요.

'텔레그램 성착취(N번방 사건)' 이후 법이 개정되면서 국내에서는 유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저희는 '해외 서버로의 이민'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 성인 사이트에서의 유포가 더 심각합니다. 다른 피해자의 촬영물을 삭제하려고 성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거기에 다수의 피해자들이 있는 걸 발견하고 삭제를 하기도 합니다.

스프 더스피커
Q. 해외 사이트에 올린 걸 삭제하려면 그 나라 협조가 필요하겠네요?

A. 해외 불법 사이트라고 하더라도 저희가 삭제 요청을 했을 때 바로 조치하는 사업자가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불법 사이트를 관리하는 호스팅 사업자에게 '이 사이트에 불법성이 있으니 우리의 피해 촬영물을 삭제할 수 있게 강제 조치를 해 달라'고 해요. 그것도 불응하는 경우, 사이트의 서버지를 분석합니다. 어느 나라인지 IP를 확인해서, 해당 국가에 협력 요청을 하는 거죠. 국가도 불응하면 해당 국가 피해 지원 기관과 접촉해 조치 방안을 함께 모색합니다.

Q. 해외 서버를 자주 옮겨 다니면서 촬영물을 퍼뜨린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많이 이용하는 곳이 있나요?

A. 계속 서버지 IP를 옮겨 다니고 있기 때문에 오늘은 미국이었다가 내일은 중동, 이런 식으로 바뀌는 상황이에요. 아동·청소년의 경우 모든 나라가 보호의 대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피해 조치를 해요. 유포물에 대한 삭제 요청에 협력이 잘 되는 편인데, 성인의 경우 각 국가의 정책과 법이 다르다 보니 협력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7월에 유엔여성기구(UN WOMEN)와 공동으로 아동·청소년 성착취뿐 아니라 성인 불법 촬영물에 대한 지원 필요성에 대해 발표를 준비하고 있어요.

Q. 우리나라는 불법 촬영의 피해 형태가 좀 다른가요?

A. 우리나라는 워낙 인터넷 사용률이나 인구 밀도가 높잖아요. 피해 촬영물이 유포됐을 때 '누가 이걸로 나를 알아보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담을 해보면 유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변에서 '이거 너 아니냐'라고 연락받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해요. 직장생활을 할 수 없어서 실직하거나 퇴사하고, 다른 회사에 재취업하더라도 거래처 사람이 알아본다든가 해서 또다시 회사생활을 하는 게 어려워지기도 합니다.
 

불법 촬영물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

Q.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을 완전히 삭제하는 게 가능한가요?

A. 불법 촬영물이라는 게 1건이 유포돼 1분 뒤에 삭제됐다 하더라도, 1분 안에 누군가는 다운로드를 받았을 거고, 그게 몇 년 뒤 재유포되는 상황도 발생하거든요. 완전한 삭제라는 건 정말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도 '끝이 없다'라는 것, 이 피해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거예요. 오프라인 성폭력은 피해가 종결되고서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디지털 성범죄는 가해자가 이미 집행유예로 처벌이 끝났더라도, 피해 촬영물은 여전히 유포되고 있어요. 피해자들이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일상생활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해도, 누군가는 또 '피해 촬영물을 봤다'라고 연락해 오는 상황이 반복되는 거예요. 이 촬영물을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피해자들을 굉장히 힘들게 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