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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도 제각각, 음식값도 매일 달라지는 '메시의 나라', "다시 위대"해질 수 있을까 [스프]

[뉴스페퍼민트]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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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0403 뉴욕타임스 해설
지난 3월 초, 엿새간 아르헨티나에 다녀왔습니다. 다소 촉박하게 일정이 잡혀서 처음 가보는 나라, 지역임에도 미리 충분히 공부하고 준비하지 못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사실 열정적인 축구팬인 저는 "현재 월드컵 챔피언"인 나라에 가서 "여기가 메시의 나라인가요?"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예상대로, 또 알려진 대로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 곳곳은 메시와 마라도나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지금의 아르헨티나를 이해하기 위해 꼭 알고 넘어가야 한다고 귀띔해 준 인물은 따로 있었습니다. 원래 알던 아르헨티나 친구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새로 사귄 친구도 입을 모아 가리킨 인물은 바로 지난해 말 당선된 신임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였습니다. 부랴부랴 밀레이 대통령에 관해, 또 정치인으로서는 이력이 전무한 괴짜를 당선시킨 아르헨티나의 상황에 관해 찾아봤습니다. 물론 기사를 읽고, 역사를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됐지만, 마침 그 나라에 머무니 짧지만 겉핥기라도 그곳에서의 일상을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환전은 '작은 나무'를 찾아라?

대단히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도 없이 독특한 점들이 이내 눈에 띄었습니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행자나 방문객의 첫 과제 가운데 하나인 현지 화폐로 돈을 바꾸는 일부터 쉽지 않은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입니다. 환전이 어렵고 복잡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환율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하다는 게 환율이 그냥 들쭉날쭉 널을 뛴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준 환율이 있고, 암시장에서 통용되는 환율이 따로 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아르헨티나 안에서도 외국인 여행객에게 적용하는 환율과 농업에 종사하는 수출업자, 공산품을 수입하는 기업, 외환 업무를 하는 금융기관에 적용하는 환율이 제각각 다 다릅니다. 그래서 "1달러에 몇 페소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당신이 뭐 하는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다오"가 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거야 원래 환율의 속성이니 그렇다 쳐도, 애초에 한 통화의 환율이 여러 가지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는 한참 걸렸습니다. 아니, 사실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환율이 이렇게 불안정하고 복잡하게 운영되는 건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찾아보면, 이미 오래전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진 막대한 정부 부채 문제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높은 정부 부채에 세금은 잘 안 걷히니 자연히 재정 적자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때마다 손쉽게 돈을 더 찍어내는 미봉책을 택했습니다. 유통되는 돈이 늘어나니, 인플레이션은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재정 정책으로 해법을 찾지 못한 아르헨티나 정부는 종종  통화 정책에 무리하게 개입했고, 그때마다 문제가 해결은커녕 더 심각해지곤 했습니다. 대통령궁인 분홍빛 저택(casa rosada) 바로 길 건너에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있는데, 마치 중앙은행의 독립, 자율적인 통화 정책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걸 건물 배치로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1년에 페소화와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1:1 등가로 고정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페그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때는 한동안 아르헨티나 경제도 호황을 누리는 듯했지만,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과 전혀 무관한 이유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자 아르헨티나 경제는 금세 휘청이고 맙니다. 유통되는 페소화 전체를 바꿔줄 만한 달러화를 충분히 보유하지 않은 채 섣불리 페그제를 시행한 아르헨티나 정부와 "통화위원회"의 판단도 문제였지만, 재정 정책의 실패를 통화정책으로 풀어보려는 '꼼수'는 처음부터 성공하기 어려운 억지였습니다.

결국, 정부 부채를 줄이지 못한 아르헨티나에서 인플레이션은 경기 변동에 상관없이 늘 사라지지 않는 상수가 됐습니다. 마치 감기를 달고 사는 환자처럼 말이죠. 빠르게 하락하는 페소화 가치를 공식 환율이 따라잡지 못하자, 외환 시장은 둘로 나뉘어 이원화됩니다. 특히 페그제가 처참하게 실패한 뒤 2001년 채무 불이행을 선언한 아르헨티나 정부가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은행 잔고에 맡겨놓았던 미국 달러를 강제로 페소화로 바꿔버린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아르헨티나 국민의 제도권 금융을 향한 신뢰마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울고 싶은데 뺨을 맞은 것처럼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그때부터 달러를 절대 은행에 맡기지 않습니다. 대신 페소화가 생기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달러로 바꿔 집집이 미국 달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집에 쌓아놓은 미국 달러가 2,500억 달러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암시장에서 사고파는 달러를 푸른 달러(Dólar blue)라고 합니다. 어원에 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무튼 여행자들이 좋은 환율로 페소화를 환전하는 방법도 암시장을 통하는 겁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를 걷다 보면, 스페인어(cambio)나 영어로(change money?) 관광객들에게 접근하는 환전상들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돈을 바꿀 수도 있고, 아르헨티나 친구가 있으면 친구에게 부탁하면 일사천리로 환전해 줄 겁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가족, 친지, 친구, 최소한 지인의 지인 정도까지 살펴보면 반드시 환전상을 한 명쯤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묵은 에어비앤비 관리인도 환전이 필요하면 환전상을 연결해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푸른 달러를 받고 페소화를 내주는 환전상을 스페인어로 아르볼리토스(arbolitos)라고 합니다. '작은 나무들'이라는 뜻인데, 몸에 두르듯 입은 긴 코트를 열면 수많은 안주머니에 돈이 나뭇가지에 붙은 잎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다고 해서 붙은 별명입니다. 암시장을 통한다는 게 엄밀히 따지면 불법이지만, 아르헨티나 정부도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2,500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불법으로 규정해 버리면, 가뜩이나 돈이 돌지 않는 경제는 순식간에 파탄 나고 말 겁니다.

0403 뉴욕타임스 해설
제가 방문했던 시기 푸른 달러 환율은 1달러에 1,000페소였습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고지하는 공식 환율은 1달러에 850페소 정도였고, 여행객에게는 환율을 우대해서 1달러에 910페소 정도였습니다. 해외 신용카드를 쓰면 여행객 환율이 적용됐습니다. 친구에게 600달러를 바꾸고 싶다고 미리 부탁했더니, 자기가 아르볼리토스한테 페소를 받아서 가져다주겠다고 했습니다. 봉투에 600달러(100달러 6장)를 넣어 건넸는데, 친구는 제게 장볼 때나 쓸 법한 장바구니에 페소화를 담아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지폐 단위가 1천 페소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1천 페소 100장을 고무줄로 묶은 돈뭉치 여섯 다발이 60만 페소였습니다.

30여 년 전에 1:1로 교환되던 화폐 가치가 1/1000로 하락한 셈입니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1990년대 초반 원/달러 환율을 찾아보니, 1달러에 약 700원이었습니다. 페소화를 가져다준 아르헨티나 친구는 미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저와 알게 된 친구인데, 미국으로 유학 나온 6년 전만 해도 환율이 대략 1달러에 30페소 정도였다고 합니다.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탓에 아르헨티나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몇 가지 있습니다. 슈퍼마켓이나 가게 진열대에 물건은 있는데,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식당에 가도 메뉴판에 음식 이름은 쓰여 있는데, 가격이 안 쓰여 있는 곳도 많았습니다. 오늘 가격을 내일도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매번 가격표를 새로 붙이거나 인쇄하기 번거로우니, 그냥 안 써둔 겁니다. 마음에 드는 메뉴가 얼마나 하는지 물어봤더니, 오늘 일하기 전에 새로 고지받은 가격이 있다며, 두꺼운 수첩을 한참 넘기더니 가격을 일러줬습니다.


아르헨티나 작가인 우키 고니가 뉴욕타임스에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첫 100일을 평가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봤지만, 만성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으니, 더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괴짜 같은 정치인에게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기회를 줬습니다. 다만 1차 투표에선 29.99%를 득표해 2위를 차지했고, 결선 투표에서 페론당의 세르히오 마사 후보를 56:44로 꺾었으니,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칼럼이 대체로 밀레이 후보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므로, 오늘은 밀레이 후보를 위한 변명을 몇 가지 해보려 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교통 체증이 심한데, 한 번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택시를 1시간 넘게 타게 돼서, 그때 택시기사와 나눈 이야기를 참고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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