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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톱 들고 나왔던 아르헨티나의 '트럼프'? 취임 100일 지났는데 어떻게 됐을까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100 Days of Javier Milei. by Uki Goni

0403 뉴욕타임스 번역
 
*우키 고니는 아르헨티나 작가, 수필가, 언론인이다. 이 글은 그가 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썼다.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가 취임한 지 100일이 막 지났다. 지난해 12월 10일 임기를 시작한 극우 자유지상주의자 밀레이 대통령은 전임 행정부가 남긴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악의 유산"을 청산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최악의 유산이란 "공공부문 지출을 미친 듯이 흥청망청 늘린" 결과 아르헨티나가 직면한 경제 상황을 뜻한다.

밀레이는 여러 면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연상시키며, 실제로도 트럼프와 끊임없이  비교된다.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 정책이  아르헨티나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 거라는 말부터 헝클어진 머리 스타일, 아무 말이나 거침없이 내뱉는 언사에 당사자인 트럼프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많은 유명인이 밀레이 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냈다.  일론 머스크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밀레이 대통령이 한 연설을 가리켜 "너무 섹시해서 섹스 행위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정도"였다고 평했다.

그러나 정치 신인인 밀레이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자신의 비전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신을 "무정부주의 자본주의자"라고 소개해 온 밀레이는 자유시장경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해 천정부지로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겠다는 공약을 앞세워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당선됐다. 그러나 적어도 첫 100일간의 성적표를 보면, 밀레이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물가는 그가 취임한 첫 달 만에 두 배로 뛰었다. 다행히 그 뒤로는 좀  둔화했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에선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의 인플레이션이다. 빈곤율도 치솟았고, 소비 심리는 얼어붙어  소매 경기도 죽었다. 밀레이 대통령은 거리에서 시민들의 저항에, 국회에서는 다수당인 야당의 저항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를 다시 한번 세계적인 강대국 반열에 올리는 데 필요하다"며 경제 개혁안을 발의했지만, 의회가 벌써 두 차례나 이를 부결했다.

곳곳에서 거센 저항과 역풍을 맞는 밀레이 대통령과 행정부를 보면, 다음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하비에르 밀레이란 인물은 누구인가? (적어도 4개월 전 대선에선)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었고, 일론 머스크에게  "아르헨티나의 번영이 머지않았다"는 찬사를 부른 경제적 비전을 정말 실행할 수 있는 난세의 영웅인가? 아니면 거리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나라를 팔아넘길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고 맹렬한 비난을 들어도 싼, 권력에 굶주린 악당에 불과할까?
 
우선 하나 확실한 건 밀레이는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득권을 끔찍이 싫어하며, 자기가 싫어하는 대상에 막말을 퍼붓는 걸 보고는 밀레이를 트럼프와 판박이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밀레이는 오히려 권위주의가 당연하고, 민주주의 경험은 매우 드문 남미의 오랜 역사가 낳은 산물에 가깝다.

밀레이 대통령은 북미에서 시작해 아메리카 대륙 전체로 퍼진 트럼프식 포퓰리즘을 여기저기 차용했다. "나를 밟지 마세요(Don't tread on me)"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개즈덴 깃발 앞에서 종종 사진을 찍는 게 대표적이다. (옮긴이: 개즈덴 깃발은 노란색 바탕에 똬리를 틀고 있는 방울뱀 그림이 있고, 그 아래 "나를 밟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로, 미국 독립혁명 당시 처음 고안돼 미 해병대에서 쓰이기도 했다. 미국의 독립과 자유를 상징하던 깃발은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자유지상주의, 극우 이념을 대변하는 깃발로 바뀌었다. 지난 2021년 1월 미국 의사당 테러에 가담한 폭도들 사이에서도 개즈덴 깃발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밀레이 대통령은 트럼프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남미의 전형적인 권위주의 군사독재자(caudillo)에 가깝다.

밀레이는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려면 자신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래서 이념적으로는 정반대지만,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진보적인 (혹은 급진적인) 경제 정책이 어떻게 한 나라를 재앙으로 이끌 수 있는지 설명할 때마다 주저 없이 아르헨티나를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보수 세력이 집권하던 시절의 일이다. 그러다 좌파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거대한 사회복지 정책을 잇달아 도입했고, 이때부터 아르헨티나 경제는 늘어나는 정부 부채에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문제를 떠안았다. 12월 10일  취임사에서 밀레이 대통령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자, 서구의 등대와 같은 나라였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며,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실은 예전의 아르헨티나도 낙원은 아니었다. 1874년부터 1916년까지 집권한 보수 세력은 잇단 부정 선거를 통해 틀어쥔 권력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 시기에 농업 강국 아르헨티나가 부유했던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때 아르헨티나에는 부패가 만연했고, 해외에서 빚을 너무 많이 졌으며, 주기적으로 금융 위기가 불어닥치는 통에 국고는 비어 있었다. 당시 정부도 국영 기업 민영화를 통해 경제를 정상화하려 했다.

1983년,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며 시작된 이번 아르헨티나의 민주주의는 208년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독재 정권도,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도, 좌우를 막론하고 누가 와도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아르헨티나 경제는 망가져 버렸다.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아르헨티나 경제는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에 채무 불이행 선언, 수없는 채권 전환 계획으로 점철됐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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