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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북적북적]

《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413: 《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미수(88세)를 넘긴 나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다. 하나는 남극 기지에 가는 것이다. 6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은 남극의 공기가 나를 감싸 줄 것이다. 그곳에서 그리운 개들이 나란히 나를 맞이해 줄 것이다.

책이란 건 정말이지 굉장한 물건입니다. 그냥 여기에 종이 몇 장과 까맣게 인쇄된 글자들이 있을 뿐인데, 나 스스로는 평생 못해볼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생사를 건 모험과 대자연의 압도적인 위용, 삶이 써내는 놀라운 드라마들과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정들에 푹 빠졌다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디어가 난무하는 세상에서도 이건 참 기적 같다, 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함께 읽고 싶은 책, 오랜만에 이 정도의 기분을 끌어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지난 3월 15일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따끈한 신간입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20년에 나왔습니다.

'남극의 타로와 지로'라는 개들을 들어보셨나요? 일본에서는 지금까지도 유명한 개들이고, 세계적인 화제의 주인공들이기도 했습니다. 1983년에 일본에서 [남극 이야기]란 제목으로 이 개들의 실화를 모태로 한 이야기가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2006년에는 고 폴 워커 주연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이 나왔습니다.) 오늘의 책 [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는 세상이 모두 아는 타로와 지로 뒤에 가려져 있었던, 말 그대로 아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개에 대한 이야깁니다.
 
타로와 지로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비참했다. 남은 열세 마리 중 일곱 마리는 눈얼음 아래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중 한 마리를 해부한 결과 '완전 아사'였다. 체중은 대원들이 떠난 시점의 반으로 줄어 있었다. 여섯 마리는 목줄 또는 그 밖의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 최종적으로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다. 두 마리는 기지에 생존, 일곱 마리는 사망 그리고 여섯 마리는 행방불명. 이것이 오랜 세월에 걸친 정설이었다.

일본이 처음으로 남극 탐사에 나섰던 게 1958년입니다. 이때 1차 탐사대가 (이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남극에서는 설상차 뿐만 아니라 개썰매를 갖춰 두는 게 안전한 것이라는 판단 아래 19마리의 가라후토견을 남극에 데려갑니다. 가라후토견은 지금의 러시아 남사할린 지역의 견종입니다. (일본이 이 지역을 점유했던 적이 있어서 이런 일본 이름이 남았습니다.) 말하자면 '일본의 시베리안 허스키', 우리로 따지자면 진돗개나 풍산개가 떠오르는 견종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1차 남극 탐사대는 이 개들이 아니었다면 탐사는커녕 생환이 어려웠을 상황들을 여러 번 겪습니다.
이번에는 러셀을 해도 개들의 등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많이 쌓여 있다. 개들은 눈으로 된 참호를 파면서 전진하는 느낌으로 10센티미터, 또 10센티미터 나아갈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헉, 헉, 헉!"
"컥, 컥, 컥!"
"끅, 끅, 끅!"
거친 숨소리, 기침하는 듯한 소리, 목줄이 목을 옥죄는 듯한 소리가 개들이 차근차근 나아가는 눈 아래 쪽에서 들려온다. 10미터 정도 가다가 개들이 멈추었다. 눈으로 된 참호 속에서 차례로 쓰러진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한다. 앞발을 쭉 뻗고 뒷발은 가랑이를 벌리듯 몸을 지탱하고 1센티미터라도 앞으로 나가려고 한다. 로프에 목이 조인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앙코가 비명을 지른다. 그래도 전진하려고 한다.
불꽃 같은 개들의 투쟁심. 기타무라는 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외쳤다.
"투(전진)!"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격려도 아니었다. 기도와도 같은 외침이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60여 년 전에 결성된 일본의 남극 탐사대에는 그야말로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정도로 주먹구구인 면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지만, 사실상 인간들의 생존을 의지했던 썰매개들을 19마리나 데리고 남극에 들어가면서 수의사 한 명이 동행하지 않았을 정도로 졸속으로 진행된 점이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그 안에 던져진 인간들과 썰매개들이 함께 좌충우돌,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함께 살아남으면서, 인간 대원들과 가라후토 썰매개들 사이에는 생사를 함께 한 동료들끼리만의 끈끈한 유대감이 싹틉니다. 이들은 함께 일본의 남극 기지, 쇼와 기지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기타무라, 썰매를 움직여!"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기타무라는 개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었다. 귀 아래를 간지럽히고 코와 코를 맞대 문지르며 말을 걸었다.
"잘 부탁해!"
"너희만 믿는다!"
"같이 힘내자!"
부탁하면 개들은 들어줄 거라고 믿었다. 개들과 서로 이해할 수 있다. 개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썰매에 올라탄 기타무라가 큰소리로 외쳤다.
"투(전진)!"

1차 탐사대가 2차 월동 탐사대에게 인수인계하고 일본으로 돌아올 날이 다가옵니다. 여기서 또 주먹구구 상황이 발생합니다. 쇼와 기지 현지 인수인계 없이, 썰매개들은 나중에 올 2차 탐사대가 활용할 수 있도록 기지에 묶어두고 1차 탐사대 전원 철수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겁니다. 반대의 뜻을 밝히려고 시도하기도 했지만, 1차 탐사대는 결국, 문자 그대로 생사를 같이 했던 동료인 이 개들을 쇠사슬로 단단히 묶어두고 남극을 벗어납니다. 그 직후 남극에 진입하기 어려운 악천후가 덮치면서, 2차 탐사대가 진입을 포기하고 1차와 함께 일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금보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았던 때이지만, 당시 일본 안에서도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는 게 이 책에도 나옵니다. 남극 프로젝트의 이미지 자체가 나빠질 정도로 비난 여론은 거셌습니다. 1년 후에야 3차 탐사대가 결성돼서 일본인들이 다시 남극에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 기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쇼와 기지에 쇠사슬로 묶어놓고 떠났던 썰매개들 중에 타로와 지로 2마리가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화제가 됐고, 앞서 말씀드린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도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일입니다.
 
데리와 몬베쓰노쿠마는 늘상 싸웠고 힛푸노쿠마와 아카는 고립되어 있었다. 어린 타로와 지로는 안전한 쇼와 기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했고 성견들한테 자주 먹이를 빼앗겼다. 리키가 발견하고 타로와 지로를 지켜주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개들은 다른 개들한테 관심이 없었다. 팀워크랄 것이 없었다. 개썰매에 기대했던 마음이 희박해지고 개썰매 탐사 자체를 포기해야 할 위기마저 있었다.
기타무라는 안절부절못하고 "왜 안 되는 거지? 왜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거야?" 하며 개들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고심했다. 도저히 손쓸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던 가라후토견들이다. 그 개들이 지금 일렬로 나란히 서서 대기하며 '빨리 다음 명령을 내리라'고 기타무라에게 집중한다.

2020년에 출간된 이 책의 주인공은 타로와 지로가 아닙니다. 아무도 이름을 모르는, 당시 남극에 상륙했던 19마리의 가라후토견 가운데 '제3의 개'를 추적해 가는 르포입니다.

[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는 은퇴한 전직 기자인 가에쓰 히로시 작가가 썼습니다. 그리고 기타무라 다이이치가 감수했습니다. 2020년에 88세를 넘긴 기타무라 다이이치는 지구물리학자이자, 일본의 남극 1차 탐사 월동대에서 썰매개 관리를 담당했던 대원입니다. 남극을 떠나올 때, (남극살이 중 사망하거나 실종된 개들을 제외하고) 15마리의 썰매개들을 자기 손으로 쇠사슬로 묶어두고 떠나왔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 글 서두의 발췌문은 기타무라가 이 책에 실은 '맺는 말'의 일부분입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생사를 건 모험을 함께 했던 개들을 혹한 속에 굶어죽게 버려두고 왔다는 죄책감 때문에 3차 탐사대에 자원해서 남극으로 돌아가 생존해 있던 타로와 지로를 조우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기타무라 씨에게는 1980년대 초반 이후로 가슴을 떠나지 않던 숙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1968년, 8차와 9차 탐사대 교체 시기에 쇼와 기지에서 눈 속에 파묻혀 있던 썰매개 한 마리의 사체가 한 구 더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1982년에 듣게 된 겁니다.

기타무라 씨는 1959년에 3차 탐사대원으로서 타로와 지로를 만났을 뿐 아니라 다른 썰매개들의 사체를 수습했습니다. 7마리는 묶여 있던 상태로 굶어죽은 채 발견됐고, 6마리는 행방불명이었는데, 그 6마리 중 한 마리의 사체가 10년 뒤에야 쇼와 기지에서 발견됐다는 걸 듣게 된 겁니다.

어떻게 된 걸까. 자신이 3차 탐사대원으로 돌아가 샅샅이 뒤졌을 땐 왜 찾지 못했을까. 탐사대는 과학자와 기자들인데, 세간의 관심이 그토록 집중됐던 일의 후속 사건에 대한 기록이 왜 제대로 남지 않은 걸까. 기타무라는 이 의문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몇십 년의 세월을 또 보냅니다.
 
기타무라는 썰매에서 뛰어내려 개들에게 달려갔다.
"너희 정말 대단해!"
환희에 찬 얼굴로 기타무라는 모든 개를 차례로 끌어안고 뺨을 비벼댔다. 리키도, 시로도, 어린 타로와 지로도, 기타무라의 얼굴을 핥았다. 후렌노쿠마와 몬베쓰노쿠마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할 일 다 했으니, 난 잘 거야.
그런 느낌이었다. 이 두 녀석은 그런 점이 좋다. 고로와 앙코는 어리광을 부렸다. 대식가인 두 마리는 보상으로 밥을 달라 했다.

가에쓰 히로시 기자는 은퇴를 앞둔 시점에 전부터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타로와 지로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기타무라 명예교수를 2018년에 찾아갑니다. 기타무라는 80대 중반이 돼서 양로원에서 투병 중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자료를 모으고 취재와 추론을 거듭합니다. 기타무라 다이이치의 증언을 토대로 가에쓰 히로시가 완성한 르포가 바로 이 작품, [그 개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인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두 사람은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여섯 마리의 썰매개 중에서 누가 타로와 지로와 함께 쇼와 기지에 남았는지 상당히 설득력 있는 대답을 찾아냅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 그 개의 이름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말미에 기다리고 있는 건 그 개의 이름만이 아닙니다. 타로와 지로의 이야기 자체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 '정말이지 책이란 건 이다지도 대단한 물건이란 말이야' 하는 뿌듯한 행복감이 함께 기다립니다.

일본의 남극 탐사 태동기를 둘러싼 여러 미심쩍은 정황이나 1968년 뒤늦게 발견된 제 3의 개에 대한 기록이 사실상 전무한 이유 같은 '어른의 사정', 부조리의 정황들도 행간 곳곳 읽힙니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80대 중반에 지병으로 고생 중인 노인과 은퇴한 저널리스트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이토록 신선하게 새로워지는 진실을 향해 함께 다가가는 면밀한 취재와 치밀한 추론, 성실한 기록의 여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오만을 바람 한 줄기로도 쳐낼 수 있는 남극이란 대자연과 사람, 사람, 그리고 썰매개들이 있습니다.

400페이지에 이르는 책이지만, 그야말로 단숨에 읽힙니다. 어느 대목을 낭독해야 하나 한참 고민했습니다. 저는 결국, 탐사대와 썰매개들이 남극에서 함께 했던 어떤 날들에 대한 기록을 골랐습니다. 문자 그대로 '생사의 갈림길'을 뜨거운 호흡과 피땀으로 함께 뛰었던 그 개들을 내 손으로 쇠사슬에 꽁꽁 묶어두고 떠나와 남극의 혹한 속에 굶어죽게 할 날이 올지 미처 알지 못했던 날들, 함께 했던 남극살이에 대한 기억의 대목입니다. (지금까지 이 글의 중간중간에 배치한 발췌문들은 1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제가 낭독한 부분에서만 골랐습니다.)

이 기억 속에는 타로와 지로 뿐 아니라 탐사대와 함께 했던 '나머지 개들'의 이름이 여럿 나옵니다. 훗날 굶어죽은 채로 발견된 개들, 쇠사슬을 끊고 어딘가로 사라져 간 개들, 그리고 타로와 지로와 함께 인간들이 떠난 쇼와 기지를 지켰던 '제 3의 개'의 이름이 이 부분에 언급됩니다. ('제3의 개'에 대한 힌트가 숨은 대목이기도 하니, 추론해 보면서 들어보시면 더욱 흥미롭게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 작품을 감수할 때 필자에게 부탁한 점은 단 한 가지였다. 남극에서 활약한 것은 타로와 지로만이 아니었다. 모든 개가 최선을 다했고 죽어 갔다. 그 점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이다. 1차 월동 중에 목숨을 잃은 벡과 데쓰, 자신의 의지로 쇼와 기지를 떠난 자존심 강한 힛푸노쿠마, 인간에게 방치되어 아사한 일곱 마리,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다섯 마리, 살아남은 타로와 지로, 그리고 제3의 개가 있었다. 남극을 달리던 열여덟 마리의 가라후토견 모두에게 골고루 빛이 비추어지길 바란다. (기타무라 다이이치)

세상 아무도 모르는 '제3의 개'의 이름. 이 책을 직접 펼쳐 드시면 그 개의 이름에 한 번 불러주실 수 있습니다. 그 이름과 함께 차원을 달리 하며 펼쳐지는 새로운 인식, 깊은 감동에 [북적북적]가족 분들과 함께 가닿고 싶습니다. 종이 몇 장, 까만 글자들이 순식간에 나를 이동시켜 주는 남극으로, 썰매개들과 함께 떠나보시면 어떨까요.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북멘토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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