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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러 번을 한 번 생에 쑤셔 넣었던' 그 사람이 남긴 것들 [스프]

[커튼콜+] 베 짜고 벽지 만들던 영국 남자가 우리에게 알린 교훈 (글 : 황정원 작가)

얼마 전 친구가 깔깔거리며 알리익스프레스에서 2천 원에 산 귀걸이를 내밀었다. 화면상으로는 그럴듯했는데 눈앞의 실물은 딱 인형용 플라스틱 귀걸이였다. '윌리엄 모리스가 이 귀걸이를 봤다면 참 가슴 아팠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윌리엄 모리스(1834-1896)라는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들어본 사람들도 예쁜 벽지 만든 영국인 정도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였으며, 그의 이름 뒤에는 디자이너이자 공예예술가, 사업가, 시인, 소설가, 출판인, 사회주의 운동가 그리고 환경보호자라는 긴 타이틀이 달린다.
 

쓸모없거나 아름답지 않은 물건은 집에 두지 마라

모리스는 부유한 중산층에서 태어나 한적한 시골에서 여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연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데이지꽃, 인동덩굴, 딸기와 같이 영국 시골길에서 흔히 접하는 소박하고 친근한 식물들은 훗날 그가 디자인한 벽지나 패브릭에 반복하여 등장하는 모티브가 된다.

출처 : rawpixel.com
자연에 대한 사랑은 단순한 영감 이상으로 그의 삶 전체를 추동하는 요인이었다. 모리스는 산업혁명의 모순이 격화되던 시기를 살았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져 물건값은 내려갔지만 하나같이 획일화되어 무미건조한 데다 품질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사들였고, 노동자들은 더 많은 물건을 더 빨리 생산하기 위해 비인간적인 작업 환경을 감내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자연환경이 급속도로 파괴되어 갔다. 이런 세태에 분노한 그는 디자인 산업 전반, 나아가서는 소비자의 취향까지 영향을 미치겠다는 원대한 뜻을 세운다. 그는 예술과 일상이 공존하는 삶을 꿈꿨고, 사람들이 정성껏 공들여 만든 아름다운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기를 원했다. 모리스는 직접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자 지인들과 인테리어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입으로만 떠드는 순진한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자사의 제품 디자인을 맡은 디자이너인 동시에 그 결과물인 상품을 대중에게 판매하는 사업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물건들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제작자이기도 했다. 산업화와 더불어 디자이너와 제작자가 분리되기 시작했지만, 그는 그런 작업 방식에 질색했다. 보다 나은 디자인을 위해서는 자신이 디자인한 모든 제품들을 스스로 제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은 그는 부단히 기술을 연마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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