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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에도 나를 설레게 하는 그것 - '양파' [스프]

[사까? 마까?] (글 : 정고메 작가)

정고메 사까마까 썸네일
요즘처럼 채소와 과일이 비싼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과일을 거의 못 먹다시피 지나온 겨울도 처음이다. 이제 봄이 왔으니 채소가 많아져서 좀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 회로를 돌려보지만, 들쑥날쑥한 기후로 작황이 나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마트의 채소가 비싼 것도 있지만 농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자주 먹는 채소는 농가나 영농조합에서 직접 운영하는 온라인 스토어에서 대용량(1인 가정의 기준)으로 주문해 먹는다. 이맘때쯤 꼭 쟁여두는 채소가 있는데, 바로 양파다. 3월 말, 4월 초에 '만생종 양파'로 검색하면 양파 5kg을 1만 원대면 구할 수 있다. 유통을 거친 마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라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더 반가운 가격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끼니를 채소로 해 먹는 사람으로서 필수재인 양파가 많은 것만큼 설레는 일도 없다.

봄에 양파 가격이 잠시 저렴해지는 이유는 곧 조생종 양파 수확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에 수확한 만생종 양파는 겨우내 열심히 소비되다가 조생종 양파 수확 시기인 4월에 재고량이 많으면 조생종 양파와 겹쳐 헐값이 되고 만다. 4월에 유독 양파밭을 갈아엎었다는 마음 아픈 기사가 자주 뜨는 것도 그 이유다. 저장 양파를 소비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봄이 올 때면 양파 5kg 한 박스를 주문해서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한두 알씩 꺼내 요리해 먹는다. 반려 양파 들이기는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봄맞이 의식 중 하나가 되었다.

혹시 1인 가정인데 양파 5kg이라니, 너무 많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만의 양파 보관 필살기가 있다. 바로 양파망과 빵 끈인데, 이것만 있으면 한 달 이상 신선하고 멀쩡한 상태로 양파를 보관할 수 있다. 양파망에 양파 한 알을 넣고 빵 봉지를 묶던 철사 끈으로 묶고, 다시 양파 한 알을 넣고 윗부분을 철사 끈으로 묶는다. 그리고 햇빛이 들지 않고 물이 튀지 않는 곳에 겹치지 않게 매달아 둔다. 습도가 높지만 않다면 양파는 무르지도 않고 멀쩡하다. 간혹 싹이 자라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먹어도 무리가 없고, 나의 반려 양파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되려 반가운 소식이다. 부엌에 빨간 망에 담겨 주렁주렁 매달린 양파들을 보고 집에 놀러 온 친구는 꼭 무속신앙 같다고 놀리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귀엽고 기특한 반려 양파로 보인다. 양파는 맛에서도, 영양에서도 모든 점에서 뛰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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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는 대부분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식이섬유와 당분, 약간의 무기질과 비타민, 그리고 황 화합물과 항산화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채소보다 당분이 높은 편인데, 양파를 오래 볶을수록 세포벽이 파괴되고 수분이 날아가면서 당분이 응축된다. 이게 바로 캐러멜라이즈드 양파의 원리다. 오래 볶은 양파를 먹으면 마치 양파잼을 먹은 것처럼 깊은 단맛과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물과 소금, 레드와인을 조금 넣어 끓이면 깊은 풍미의 양파 수프가 완성된다. 또 갈색으로 볶아진 양파를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스톡 대신 활용하기에도 좋고, 카레나 볶음 요리에도 한 조각 넣어주면 맛도 훨씬 풍성해진다.

중세 시대에는 일한 대가로 양파를 받아 갔다고 한다. 중요한 채소이면서도 약이기도 했다. 아마 양파를 귀한 존재로 만들어 준 것은 황 화합물과 항산화 성분일 것이다. 황 화합물은 세포벽에 감싸져 있다가 썰거나 으깨서 세포벽이 파괴되면 공기 중으로 발산된다. 양파를 썰 때 눈이 매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황 화합물은 다양한 동물 매개체로부터 양파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어체계다. 황 화합물은 생양파 그대로, 또는 썰지 않고 통으로 조리해야 손실되지 않는다. 통으로 구워 먹는 양파가 기침과 감기 예방에도 좋다는 민간요법도 있다. 또 양파 껍질에 많다는 퀘르세틴은 대표적인 항산화 성분이다. 양파가 5천 년 넘는 역사 속에서 전 세계인들의 사랑받는 채소가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양파가 많이 있을 때 꼭 해 먹는 아끼는 요리들을 골라보았다. 양파의 질감과 특징을 활용하면 어려운 조리 과정 없이도, 값비싼 조미료 없이도 감탄할 만한 결과물들을 경험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반려 양파를 들여놓고 꼭 도전해 보기를!
 

애정하는 양파 레시피들

1. 양파 장아찌

신선할 때의 양파를 오랫동안 저장해서 먹을 수 있는 양파 장아찌. 따로 간장 물을 끓이지 않아도 되고 어떤 요리에나 무난하게 잘 어울려서 곁들여 먹기 좋다. 장아찌 간장은 전이나 부침개, 튀김에도 찍어 먹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고, 의외로 파스타와도 잘 어울린다.

(사진)
 
- 재료: 양파 2개(400g), 610ml 이상의 용기
- 양념: 간장 6T, 설탕 4T, 식초 4T, 소주 1T, 물 60ml
*1T는 밥숟가락에 평평하게 담은 것을 기준으로 한다.

양파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장아찌 양념을 모두 섞어 설탕이 녹을 때까지 저어준다. 용기에 양파를 넣고 장아찌 간장을 부어 뚜껑을 닫은 후 실온에 하루 두고 냉장고에 넣는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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