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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그 이면엔 다른 메시지도 있다

[주간 조동찬]

주간조동찬

의대 교수 모친도 중환자실 못 가고 일반 병실에...

지난 금요일 한 의대 교수를 만났다. 그는 빅 5 대학 병원에서 30년 넘게 환자를 진료하면서 의대생과 전공의를 가르쳐왔고 지금은 진료과에서 가장 높은 직책을 맡고 있다. 예전 같으면 병원과 SBS가 있는 목동의 중간 지점에서 장소를 잡았을 텐데, 이번엔 병원 근처로 와 달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희 어머님께서 폐렴으로 입원하셨는데, 기도가 막혀서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중환자실 여력이 안 돼서 일반 병실에 그냥 계시기로 했거든요. 다행히 막힌 기도가 조금 뚫리긴 했지만 상태가 언제 악화될지 몰라 제가 병원 근처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빅 5 대학병원 주임 교수도 지금의 의료 대란 상황에는 별 다른 묘책이 없으니 일반인으로서는 더 암담할 것이다.

지난주 다녀온 한 장례식장에서 의료 대란의 암담한 정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어르신은 고관절 골절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는데 수술 부위가 세균에 감염돼 결국 패혈증으로 돌아가셨다. 고령이라 수술 부위가 세균에 감염되면 3차 대학병원의 중환자실 치료를 받는 게 안전하다. 하지만 어르신에게는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대학병원에 진입조차 못했기 때문에 '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피해 통계'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유족들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장례식장이 마련된 지역의 거점 국립대병원에서는 정년퇴직을 1년 앞둔 64세 노교수도 야간 당직을 서고 있기 때문이다. 강건하기로 유명한 이 교수가 최근 후배 교수들에게 사과한 일이 있어서 의료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전날 콜백 당직(집에서 대기하며 병원 응급 환자 상태를 보고받는 것)을 서느라 그 다음날 낮에 응급실 콜을 놓쳤던 것이다. 전화를 못 받은 이유는 깜빡 졸았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의사 3명이 달려들어 5시간 정도 걸리는 수술을 혼자 진행하고 있다고 근황을 알려왔다. 도저히 혼자서 감당이 안될 때에는 옆방에서 수술하고 있는 다른 교수에게 연락한다. 그러면 옆방 교수는 자신의 수술을 잠시 멈추고 들어와 거들어 주고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일종의 수술방 품앗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공의와 전임의의 빈자리가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국내 대형병원은 그야말로 그로기 상태로 보인다.

교수 사직 행렬, 지역 필수 의료진이 선두로

주간조동찬
카톡 알람이 울렸다. 지역 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자신의 사직서를 보낸 것인데, 사진 한 장이 더 동봉됐다. 다른 교수의 사직서로 보였는데 글씨가 너무 작았다. 액정 화면을 손가락으로 펴며 글자를 확대했는데,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님, 동봉해 주신 사직서 이름이 000 교수님이던데, 제가 아는 그 교수님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저희 소아과 전문의의 대모, 바로 그분입니다."


이력과 수상 내역을 언급하는 게 그에게 약속한 익명성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교수였다. 환자를 대하는 마음도 자상했는데, 환아 맘 카페에는 그에 대한 칭찬이 너무나 오랫동안 많이 쌓여 있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사직서 제출일은 3월 25일이지만, 작성일은 3월 21일이었다. 해당 대학교 교수들이 사직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자마자 바로 사직을 결심한 것이다. 00 교수의 사직서는 앞서 경북지역에서 혈관 외과를 지켜왔던 외과 교수, 충북 지역에서 심혈관 센터를 지켰던 심장내과 교수의 사직서만큼이나 무거웠다. 이들의 사직서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지역 의대를 졸업하고 핵심 지역의 필수 의료 현장을 지키던 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00 의대 출신 00 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경북 의대 출신 경북대 병원 혈관 외과 교수, 충북 의대 출신 충북대 심장 내과 교수가 사직서 행렬에 가장 선두에 선 것이다. 충북대 심장내과 교수는 사직의 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는 청주에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북대학교에서 의과대학을 다니고 충북대학교병원에서 인턴과 내과 전공의를 했습니다. 심장병만은 우리 권역(충청북도)민들이 우리(충북대) 병원에서 양질의 모든 치료를 받게 할 수 있도록 우리 병원을 키워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는 사람 없는 타지까지 힘들게 다니시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병원에서 심근경색증은 한국에서 가장 빨리 시술을 해보자, 낮이든 밤이든, 평일이든 추석연휴이든 뼈를 갈아 넣어 최대한 빨리 시술을 하였고, door to balloon time이 새벽 두시에도 52분이라는 성적을 이뤄냈습니다."

정부는 지역 출신의 지역 필수 의료진을 양성하겠다며 증원된 의대생을 지역에 82%나 할애했다. 그런데 지역 출신의 지역 필수 의료진부터 사직하고 있다. 이것을 두고도 '밥그릇 지키기'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 지역 국립대 병원의 소아감염센터, 혈관이식센터, 심혈관센터가 의사들이 '꿀물을 빠는 밥그릇'이 아닐뿐더러, 만약 이런 지역 센터들조차 밥그릇이라면 정부가 하려는 일은 결국 의사 밥그릇 강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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