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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이 색을 찾아가는 과정을 읽습니다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북적북적]

그의 삶이 색을 찾아가는 과정을 읽습니다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412: 그의 삶이 색을 찾아가는 과정을 읽습니다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게 글쓰기는 친구였고, 행복이었고, 구원이었다. 글쓰기가 없었다면 난 성수동 지하의 지박령으로 살다가 죽었을 거다. 죽을 때까지 내가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인지 보지도 못하고, 나는 왜 사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로 눈을 감았을 거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할 만큼 내게 글쓰기는 소중하다." 

벌써 5년도 넘게 지난 일입니다. 신인작가의 책을 우연찮게 접하게 됐습니다. 책의 제목은 '회색인간', 낯선 작가의 이름은 김동식이었습니다. 북적북적 122회에서 소개하고 낭독했습니다. 그때 읽었던 작가 소개의 한 대목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1985년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할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때 바닥 타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구로 올라갔다. 2006년 독일월드컵이 열리던 해 서울로 상경, 액세서리 공장에 취직해서 10여 년을 일했다. 2016년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 창작글을 올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300편이 넘는 글을 썼다..." 

중학교 중퇴 학력에 공장노동자로 10년 넘게 일하다가 인터넷 게시판을 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소설가가 됐다는 30대 청년. 작가들은 저마다 다른 이력과 계기로 작가의 길에 들어서겠지만 이보다 극적이고 매력적인 서사,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소설 자체도 독특하고 재미있었지만 그래서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그다음이 중요했습니다. 김동식 작가는 꾸준히 성실했습니다. 그의 소설은 더 나아졌고 점점 진화했습니다. SBS와 공동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고 이번에 소설가 데뷔 5년여 만에 첫 에세이집이 나온 것도 그의 새로운 시도 중 하나로 보였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넘쳐났던 작가의 에세이는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제목은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입니다. 
 
"소설집 10권을 펴냈고, 첫 소설집이었던 회색인간은 30만 부가 판매됐으며 등단 5년 만에 1000편이 넘는 소설을 창작한 다작 작가입니다.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는 점도 눈길을 끕니다." 
 
이번엔 에세이집 작가 소개의 한 대목입니다. 그 사이 이렇게 해왔다는 거네요. 
 
"'안 할 이유가 없으니까 한다'라는 삶의 자세 말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이 말에 꽂혀 있다. 내게 어떤 부탁이나 제안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고민해 본다. 안 할 이유가 있나? 그 이유를 찾지 못하면 그냥 한다. 

 
... 과거의 나는 이렇지 않았다. 어떤 제안이나 부탁이 들어왔을 때 안 할 이유가 정말 많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객관적으로 그게 정말 '안 할 이유'였을까? 아니다. 두려움, 귀찮음, 자신 없음 모두 단지 내가 만들어낸 안 할 이유였을 뿐이다. 지금은 그것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점검한다. 정말 안 할 이유인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이유인가. 그러면 답이 나온다." 
 
"주물 공장의 일은 출근해서 기계 앞에 앉으면,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일어날 일이 없다. 쇳물의 위험성 때문에 직원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일하느라 대화가 힘들고, 쇳물이 튈까 봐 자리는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출근해서 벽만 보고 기계처럼 단순 반복 작업을 하다가 퇴근하는 것이 10년간 내가 한 일의 전부다. 이 한 문장으로 10년을 설명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다. 

...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반투명한 지박령 같았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 줄도 몰랐고 그걸 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내가 나'라는 존재감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부터 선명해졌다. 나의 일부를 떼어서 글을 내놓으면, 그것들이 다시 돌아와 나를 더 분명하게 만들어갔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를 찾았고, 나로 살아가고 있다. 이전보다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아도, 언젠가는 즐거움이 아닌 고통으로 느껴지는 날이 올지 몰라도, 나는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인터넷 게시판에 소설을 올리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내가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채워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그 일련의 일들은 무채색이었던 나를 발끝에서부터 색칠해나가는 과정 같았다. 
 
... 작가가 꿈이 아니었던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분들의 꿈이 내가 작가가 되는 것이었기에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꿈이 이루어진 거다.... 타인의 꿈이 나의 성공인 사람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일까? 나는 행복할 때마다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작가가 꿈도 아니었던 주제에 글쓰기로 행복해진 사람이 평생 갚아야 할 빛이다." 

이 책을 주욱 읽노라면 몇 가지 남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냥, 솔직함, 자존감, 꾸준함... 공장 노동자 출신의 작가로서 매력적인 서사를 갖고 있다는 게 자신이 주목받았던 매우 큰 계기였다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은 그 초반의 주목을 뛰어넘을 만큼 성장했다고 진솔하게 털어놓는 김동식 작가. 그의 소설은, 작가로서의 삶은, 인생은 앞으로 또 어떻게 달라지고 나아갈까요. 분명한 건 소설 못지않게 에세이도 매력적이라는 겁니다. 그건 그 사람이 매력적이라서일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출판사 요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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