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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사회 안전망이 갑자기 없어졌을 때 나타나는 일

[뉴욕타임스 칼럼] Is This What Happens When You Build a Real Social Safety Net, Then Take It Away?, By Bryce Covert

스프 뉴욕타임스
 
 
* 브라이스 코버트 기자는 노동자와 서민 가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정책과 제도에 관해 글을 쓴다.
 

요즘 경제학자들이 풀어보려고 애쓰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현재 미국 경제는 지표만 보면 아주 좋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지금의 경제 상황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듯하다. 다만 불과 얼마 전에 우리 곁을 훑고 지나간 회오리바람 같은 이례적인 경험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했다가 그 훌륭한 제도를 하루아침에 허물어 버렸다.

실업 보험을 예로 들어보자. 2020년 3월에 부양법(CARES Act)이 급박하게 제정됐다. 법안에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지원금 지급 규모와 지원금을 받을  자격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팬데믹 기간에 실직자들을 조직해 도움을 제공한 대중 민주주의 센터에서 경제 정의를 위한 정책 전략을 담당하는 프란시스코 디에즈는 부양법이 사람들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안도감을 줬다”고 평가한다.

“사람들에게 기댈 곳, 숨 쉴 틈을 줬다고 할까요? 덕분에 무얼 하면 좋을지 찾아볼 수 있게 됐죠.”

라숀드라 화이트 씨는 부양법의 도움을 받은 수많은 미국인 중 한 명이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백화점 체인 콜스(Kohl's)에서 일하던 그는 2020년 3월, 갑자기 무급휴직 처분을 받고 실직자가 됐다. 그때부터 그는 부양법에 따라 매주 600달러가량을 수령했다. 지난해  인터뷰에서 화이트 씨는 “지원금 덕분에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상황’이란 형편없이 낮은 급여를 받으며 근근이 지내던 상황을 뜻한다. 그는 항상 자기 사업을 하고 싶었다. 긴급 보조금으로 받은 돈을 아껴 빚을 갚고 신용 점수를 올린 화이트 씨는 조그만 사무실을 임대해 속눈썹 전문 미용실을 개업했다. 미용실은 아직도 성업 중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실업 보험금을 수령해 가난을 면한 사람은  50만 명 정도였다. 2020년, 그 수치는  550만 명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물론 실업 보험 프로그램이 완벽한 건 아니다. 오히려  문제투성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기술적인 오류가 끊이지 않아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한동안 보험 등록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실업 보험에 등록해 보험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비로소 받아야 하는 실질적인 혜택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혜택은 오래가지 못했다. 2020년 7월이 되면, 매주 600달러씩 나오던 긴급 지원금은 예산이  바닥나 끊겼고, 의회는  12월이 돼서야 실업 보험 제도를 되살렸다. 실업 급여 액수는 매주 300달러로 줄었고, 그마저도 자격 기준이 훨씬 더 까다로워졌다. 이듬해 5월까지 실업 보험 지원 자체를  중단하기로 한 주들이 늘어났고, 그 주의 주민들이 받는 지원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대중 민주주의 센터의 프란시스코 디에즈는 이렇게 말했다.

“지원이 끊긴 주에 사는 주민들은 실제로 정치인에게 버림받았다고 느꼈어요. 공포와 걱정, 두려움이 휩쓸었고, 사람들은 정부의 본연적인 역할에 심각한 회의를 갖게 됐죠. 나는 이렇게 힘겨운데, 정부가 이 어려움을 전혀 헤아려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정부는 왜 존재하는 거냐 생각하게 된 거죠.”
 
실업률은  지난 2년 넘게 4% 아래로 낮게 유지됐다.  임금 상승률도 인플레이션을 웃돌아 실질 임금도 올랐다. (유례없는 인플레이션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물가도 빠르게 안정됐다.) 전반적으로 경제는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소비자 심리는 상당히 위축돼 있다. 최근 들어 좀  나아졌다지만, 미국의 소비자 신뢰도는 팬데믹 전보다 여전히 20%나 낮다. 보통 불황이 끝나갈 즈음에 나타나는 소비자 신뢰도가 이 정도다.

도대체 체감 경기는 왜 이렇게 나쁜 걸까?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다. 집이나 보육 등 생활에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진 건 다행이지만, 한 번 치솟은 가격은 여전히 너무 비싸다.  정치적인 요인도 작용했을 거다. 즉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대통령이 키를 쥔 경제를 덮어놓고 싫어할 수 있다. 현재 경제만 놓고 보면 괜찮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여전히 불안해하는 걸 수도 있다.

이 모든 게 다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요인이 있다. 미국 사람들이 지금은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더라도 좀처럼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을 수 있다. 팬데믹 기간, 미국은 지난 수십 년 사이 최고 수준의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했다. 집세를 내지 못해도 세 들어 사는 집에서  쫓겨나 거리에 나앉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고, 빈곤, 굶주림을 포함한 경제적 어려움이 급작스레 닥치지 않도록 정부가 적절한 안전망을 제공했다. 미국인의 삶은 물질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심리적으로도 개선됐다. 그런데 정부는 바로 그 사회적 안전망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렸다.

미국 정부는 팬데믹을 거치며 구축한 사회적 안전망을 계속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몇몇 제도는 콕 집어서 예산을 삭감하고 서둘러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3월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원래 정부의 도움 없이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가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정부가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지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했다. 원래는 저축을 하든 보험에 들든 안전망을 구축하는 건 철저히 개인의 몫이었다. 그러다 팬데믹 때 정부가 생계에 필요한 돈을 지원해 주자 사람들은  저축해 둔 돈을 다른 필요한 곳에 써버렸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고 실업률이 낮아져도, 치솟은 물가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임금이 올랐어도 사람들은 발밑을 보고 여기서 추락하면 나를 받쳐줄 안전망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하는 거다. 사람들은 가시지 않는 불안 속에 지친다. 한 발짝만 잘못 내디뎌도, 조금 운이 나빠도, 한 번 일자리를 잃기만 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나락으로 떨어질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이 얼어붙었을 때 그 여파로 경제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부랴부랴 구축했던 사회적 안전망이 어땠는지를 몇 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팬데믹은 다들 알다시피 공중보건 위기였다. 연방정부는 우선 각 주정부에 메디케이드(Medicaid)에 가입한 이들의 의료보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두라고 요구했다. (옮긴이: 메디케이드는 미국 정부가 저소득층에 제공하는 의료보험이다) 이는 사람들이 까다로운 메디케이드 자격 심사를 치르는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동시에 소득이 조금 늘거나 결혼했을 때 의료보험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게 안심시켜 주는 조치였다. 2020년 2월부터 2022년 12월 사이에  2,100만 명 이상이 메디케이드와 어린이 의료보험 프로그램에 새로 가입했다.

의회는 빈곤층에 먹을거리를 살 수 있게 지원하는  푸드 스탬프(food stamps) 제도의 혜택을 15% 더 늘렸고, 모든 가구가 규모에 따라 필요한 혜택을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모든 학생에게  무상 급식을 실시했다.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끊겼지만, 사회 전반적인  기아 지수는 2020년과 2021년 내내 거의 변함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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