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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붉은 황토 마을'의 그 술…잊지 못할 순간을 맛보다

[와인의슾]

최근 우연한 기회에 남프랑스 와인을 만나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와인인데…' 하면서 라벨을 자세히 보니, 2년 전 갔던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마을 루시용(Roussillon)에서 온 와인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하늘길이 열리자마자, 해외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어디를 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6월이라는 시기를 고려해, 프로방스의 보랏빛 라벤더와 니스 해변을 보자면서 떠난 길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지역일 만큼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지만, 코로나가 끝난 뒤 첫 여행이라는 해방감 덕분에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그저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았던 '붉은 황토 마을' 루시용의 와인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겁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무대가 됐던 뤼브롱 산


루시용은 프로방스 알프스 꼬트 다쥐르(Provence-Alpes-Cote d'Azur) 지방의 뤼브롱(Luberon) 산맥을 끼고 있습니다. 루시용으로 가는 길에 이어지는 뤼브롱 산의 경치를 보면서 저는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을 떠올렸습니다. 양치는 목동과 주인집 소녀의 순박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의 배경이 바로 뤼브롱 산입니다. "내가 뤼브롱 산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이 소설은 시작되죠. 뤼브롱 산 주변에는 프랑스 정부가 정한 '아름다운 마을'들이 몇 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루시용'입니다.

스프 와인의슾
우리 일행은 저녁 무렵에 루시용에 도착했는데, 마을의 명물인 붉은 황토 절벽이 석양을 받아 붉은색에서 황금색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 장관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 절벽을 바라보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와인을 주문했습니다. 남프랑스는 별로 유명한 와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던 터라,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웨이터는 '이 와인을 모르냐'면서 자랑스럽게 설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영화 '어느 멋진 순간(A Good Year)'에 나왔던 와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말로는 '어느 멋진 순간'으로 번역됐지만 원제 'A Good Year'는 와인이 잘된 해, 즉 좋은 빈티지를 뜻하는 말로 이 영화가 와인을 소재로 한 영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에 개봉됐는데, 저는 당시 특파원으로 파리에 있던 시절이라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웨이터는 러셀 크로우와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연했고, 이 마을을 배경으로 찍었다면서, 거기에 나온 와인이라는 설명을 들려줬습니다.

스프 와인의슾

루시용에서 맛본 화이트 와인

스프 와인의슾
6월 말인데 남프랑스는 엄청나게 더웠고, 관광을 마치고 살짝 지친 저녁 무렵에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얼마나 맛있던지요. 별로 비싸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눈앞에 보이는 붉은 절벽은 다른 안주가 필요 없을 만큼 황홀했습니다.

이 화이트 와인은 우리가 잘 아는 샤르도네도 쇼비뇽 블랑도 아닌 다른 품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남프랑스처럼 더운 곳에서는 샤르도네나 쇼비뇽 블랑이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곳에서 많이 재배되는 루산(roussanne), 마르산(marsanne), 그르나슈 블랑(grenache blanc), 그리고 프로방스 토착 품종인 클레레트(clairette) 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러 가지가 블렌딩돼 복합적인 맛이었는데, 청사과나 레몬 같은 산도가 높은 과일보다는 복숭아 같이 단향이 나 묵직하면서, 꽃향도 나는 섬세한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서 맛본 루시용의 레드 와인

그런데 한국에서 이번에는 루시용 지방의 레드 와인을 만나게 된 겁니다. 와인은 검붉은 색으로, 잘 익은 검은 과일(검은 체리, 검은 자두, 블랙베리 등) 향이 강했지만 산뜻했고, 매콤한 향신료(후추?) 향도 살짝 나는 듯했습니다. 오크 숙성은 안 했거나, 하더라도 오래된 큰 오크통에 살짝 들어갔다가 나온 듯 숙성으로 인한 향은 잘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남프랑스 레드 와인의 대표 품종을 흔히 GSM으로 부릅니다. 그르나슈(grenache), 쉬라(syrah), 무르베드르(mourvedre)의 앞 글자를 딴 건데요. 그르나슈와 쉬라가 검은 과일 풍미와 색, 탄닌을 준다면, 무르베드르는 육류 풍미와 향신료 풍미를 주는 역할을 합니다. 무르베드르는 따뜻한 곳에서만 잘 익을 수 있어서 남프랑스에서 많이 재배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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