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시내 한 학원에 붙은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
정부에서 발표한 2천 명 의대 정원 증원은 당장 올해 입시 판도부터 뒤흔들 것으로 보입니다.
의대 정원이 대폭 늘어나면서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의대 열풍'이 더 심해져 의대 진학을 위해 'N수'에 나서는 이공계 재학생, 직장인 등이 크게 늘어날 전망입니다.
사교육비 증가는 물론, 2천 명 증원 규모가 4대 과학기술원 입학 정원을 합친 것보다 많기 때문에 '이공계 인재 유출'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어제(20일) 교육계에 따르면 의대 정원의 대폭적인 증원에 따라 의대 진학을 위해 입시에 다시 도전하는 대학 재학생, 직장인 등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입시에서 최상위권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에 진학했는데, '평생 자격증'인 의대 진학 가능성이 평소보다 커지니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큽니다.
사교육업체 메가스터디교육은 직장인들의 문의가 쏟아지자 지난 18일 서초 의약학 전문관에 의대 전문 직장인 대상 야간특별반인 '수능 ALL in 반'을 개설해 운영 중입니다.
현재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전국 의대생들의 휴학 신청이 잇따르는 가운데, 휴학한 지방권 의대생들의 재수가 속출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옵니다.
정부는 이날 2025학년도 전국 의대 학생 정원을 2천 명 배정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증원 규모는 서울은 0명, 경인권은 361명(총 증원분 18%), 비수도권 1천639명(82%)입니다.
서울의 경우 증원이 아예 없기 때문에 입시 흐름이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 외 지역에서는 '반수' 등 도전이 거세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지방권 의대생들이 수도권인 경인권 의대 등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최근 지방 의대에서 휴학하고 또 다른 상위권 의대로 반수를 해야겠다는 문의가 꽤 있는 것 같다"며 "이들을 포함해 의대 진학 '반수' 열풍은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수도권에 해당하는 경인권의 경우 '지역인재전형'이 없어 비수도권에 비해 지원 조건의 문턱이 낮습니다.
이에 수험생들의 도전이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의대 도전이 늘어나면 당장 올해 입시부터 의대를 비롯해 최상위권 대학 이공계열, 그리고 주요 대학의 합격선 변동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2025학년도 입시가 8개월 정도 남았는데, 의대가 2천 명 증원되면 고3을 포함해 재학생들의 동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상위권 수험생의 의대 쏠림으로 일반 학과를 포함해 주요 대학의 대부분 합격선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의대 합격선은 지역의 경우 '지역인재전형 60% 이상 선발'을 적용할 경우 일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임 대표는 "지방권 의대 수능 수학 1등급만으로 지역인재전형 인원을 채우기 힘들 수도 있다"며 "상황에 따라서 수도권과 지방권의 상당한 점수 격차가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2023학년도 입시에서 비수도권의 고3 학생 수학 1등급 수는 3천346명입니다.
그런데 비수도권 전체 의대 정원은 기존의 2천23명에서 3천662명이 됐습니다.
수학 1등급을 받은 전체 고3 학생 수로도 비수도권 의대 총정원을 채우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서울 내 의대의 경우 증원이 아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격선이 변하지 않고, 경인권 의대는 지원이 급증해 합격선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의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상위권 대학 일반학과의 합격선이 내려가면 일부 수험생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2천 명이 증원되면 의대 총 입학정원은 5천58명이 됩니다.
이는 2024학년도 입시 기준으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자연계열 학과 모집인원 총합인 5천443명(서울대 1천844명, 연세대 1천518명, 고려대 2천81명)의 93%에 달하는 인원입니다.
새로 늘어난 의대 정원 2천 명은 서울대 자연계열 입학생 수(1천844명)를 넘어서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의 신입생 규모(1천700여 명)도 넘습니다.
이에 최상위권 대학의 이공계 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평생 자격증'인 의대를 향해 반수에 도전하는 현상이 가속할 수 있습니다.
'의대 블랙홀'로 최상위권 인재들이 몰릴 경우 이공계 인재 유출이 우려된다는 얘기입니다.
2025학년도 입시를 준비하는 최상위권 자연계열 수험생 또한 이공계가 아닌 의대로 목표를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이미 이공계열 반수생과 수험생들 사이에서 반향이 컸는데, 숫자가 확정된 이상 '열풍'이 더욱 거세질 전망입니다.
임 대표는 "이른바 '메디컬 고시'가 일반화되는 것"이라며 "의대 정원이 2천 명씩 5년 늘어나는 것은 '나도 한 번 도전해 볼 만하다'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로스쿨 인원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인기가 있듯 의사 정원이 늘어났더라도 의사의 '직업적 프리미엄'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며 "당장 올해 입시부터 현재 최상위권 대학 이공계 합격생의 2배 이상이 의대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만기 소장은 "최상위권 공대 재학생은 의대를 가려다가 '한 끗 차이'로 못 간 경우가 많은데, 목표를 다시 의대 진학으로 결심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입시 기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이공계 합격생 중 의대에 동시에 합격할 수 있는 학생은 전체의 45.4%로 추정되는데, 커트라인 하락에 따라 전체의 78.5%까지도 의대 합격권으로 확대될 수도 있습니다.
입시업계는 의대 수시모집에서 지역인재전형 비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지방권 학생은 지방권 의대 '수시'에 집중하고 수도권 학생은 지방권 의대 '정시'에 집중할 수 있겠다고 예상했습니다.
이공계 대학 교수들은 '속도 조절'과 '이공계 지원' 또한 필요하다는 의견입니다.
4대 과학기술원의 반도체학과 교수는 "지금도 학교 최상위권 학생들이 전부 '메디컬'로 빠지고 있다"며 "그동안 의사들이 쌓아온 장벽이나 시스템이 너무 공고해서 뭔가 '충격'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인력 공급을 늘려 의사와 다른 직역의 수입 격차가 너무 큰 '의사 프리미엄'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인공지능(AI)이나 반도체 등 학과를 많이 만들고 인원도 늘렸지만, 졸업 후 취업이나 진로가 보장되는 경우는 소수 계약학과에 불과하다는 현실도 지적했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를 둔 (의대) 정원 조정이 필요한 것 같다"며 최상위권 인재들의 이공계 진학 희망을 위한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