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00년대 들어 급격한 고령화로 의사 부족이 예상되자 2018년과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했으나, 의료계의 극심한 반발과 집단행동으로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는 정원을 늘리면 파국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전면 원점에서 재논의'를 요구하고 있지만, 어제(20일) 대학별 정원이 발표되며 사실상 2천 명 증원은 확정됐습니다.
제주대 의대가 신설되며 정원이 늘어난 1998년 이후로 역대 정권은 번번이 의대 증원에 실패해 왔습니다.
오히려 2006년 351명을 줄인 뒤 19년간 동결된 상태입니다.
전국 의대 정원은 이승만 정부 시절 1천40명, 박정희 정부 2천210명, 전두환 정부 2천770명, 노태우 정부 2천880명, 김영삼 정부 3천260명, 김대중 정부 초기 3천300명(이상 정원 외 미포함 수치)이었습니다.
현재 의대 정원은 3천58명이며, 30년 전인 1990년대 중반 김영상 정부보다도 적은 인원입니다.
2025학년도에는 2천 명 증원으로 5천58명이 됩니다.
정부가 쉽사리 정원을 늘리지 못한 건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의사들의 '파업 카드'로 인한 의료 시스템 붕괴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정부는 의사 이권과 관련된 정책 추진에 반발한 의료계가 총파업에 나설 때마다 번번이 손을 들었습니다.
'의료 파업'이 벌어지면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고 진료 현장을 이탈한 의료진과 의사단체 집행부에 법적 조치를 취하는 한편, 경찰력을 동원해 불법 단체행동을 저지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료 파업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속출하는 환자 피해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2000년 '진료는 의사, 조제는 약사'로 역할을 나눈 의약분업 시행 때는 대도시 종합병원 전공의 거의 전부와 지방의 60∼90%가 파업에 참여했습니다.
사태 초반에 여당과 정부는 "일방 양보는 없다"는 방침이었지만, 결국 전면파업이 예고된 날을 하루 앞두고 수많은 '당근책'을 내놓으며 타협을 제안해야 했습니다.
이때 의약분업 시행의 대가로 의대 정원의 10%를 감축하기로 한 이후 의대 정원은 2003년 3천253명, 2005년 3천97명, 2006년 3천58명까지 줄었습니다.
이는 정원 외 미포함 수치이며, 이까지 합치면 의약분업으로 인해 총 350명가량 줄었습니다.
'파업 트라우마'에 의료계 눈치만 보던 정부가 작정하고 증원을 추진한 건 2018년입니다.
커지는 '필수의료 공백'에 정부는 향후 단계적으로 정원을 확대하는 형태의 공공의대를 신설하기로 하고, 2023년 개교를 목표로 보건복지부에서 종합대책까지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의협이 공청회 등에 참여해 지속해서 강하게 제동을 걸자 공공의대법은 국회 법안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법안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보건인력 확충 필요성을 느낀 정부의 '400명 증원안'과 함께 다시 나왔습니다.
여당과 정부는 공공의대 신설과 더불어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총 4천 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로 양성하는 방안을 내밀었습니다.
이 가운데 3천 명은 '지역의사'로 육성할 방침이라는 계획도 덧붙였습니다.
이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무기한 업무중단'을 선언하자 코로나 진료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파업에 나선 수도권 전공의 등에게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졌고, 이를 따르지 않은 전공의가 고발당했습니다.
이후 전공의들의 사직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상황은 2000년 당시와 비슷했지만,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 의사 집단행동은 더욱 치명적이었습니다.
결국 정부는 '백기'를 들었고, 정부와 의사단체는 코로나 사태가 지나고 원점에서 증원을 재논의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파업 카드'로 의대 증원을 저지해 온 의료계에 2천 명이라는 대규모 증원은 사상 초유의 상황입니다.
이날 정원 배분을 앞두고 일부 대학병원 교수들은 '배정 결과 발표를 미뤄 달라'고 호소했으며, 의협에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며 마지막 다리를 끊는 행동'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브리핑에서 다시 한번 "2천 명 증원은 확고하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지역의료 인프라를 대폭 강화하고 의사들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내용의 '의료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에 이어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의대생들의 동맹휴학 등이 이어지고 있어 당분간 의료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