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스프] 공용어 없는 미국, 수백 개의 언어가 공존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 America Has No Official Language. Instead It Has Hundreds. By Ross Perlin

0320 뉴욕타임스 번역
 

*로스 펄린은 멸종위기 언어 연합(Endangered Language Alliance)의 공동 이사다. 그는 2006년부터 언어 다양성과 사라질 위기에 처한 언어를 연구해 왔으며, 책 "언어 도시: 뉴욕에서 모국어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썼다.
 
약 400년 전, 지금의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 지대에 해당하는 지역 출신의 왈론어를 쓰던 난민이 종교 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 레나페족이 살던 섬 지역에 정착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맨해튼 식민지의 시작이었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도시는 상업적으로 뿐 아니라 문화적, 예술적으로도 풍부해졌다. 오늘날 뉴욕은 전 세계 도심 지역 가운데 언어 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런데 이제 와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에 소수 언어를 쓰는 외국 학생들이 너무 많다며 언어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주한 지 얼마 안 되는 이민자들을 겨냥해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언어를 쓴다"며 "매우 끔찍한 일"이라고 평했다.

트럼프의 말대로 전 세계에 존재하는 7천 개 언어 가운데 대부분은 미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고, 번역할 역량은 더욱더 부족하다. 하지만 트럼프가 이를 "매우 끔찍한 일"이라고 평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미국이 더 많이 연구하고, 더 많은 언어 교육 전문가로 무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인간의 인지와 소통에 대한 경이로운 자연 실험이라 할 수 있는 언어가 도대체 왜 트럼프에겐 무섭고 끔찍한 걸까?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여오는 언어의 지식과 지혜, 문학은 우리에게 실용적인 이득을 가져다준다. 언어적 다양성이 아이들의 전체적인 발달은 물론 건강에도 좋다는 연구 결과도 증가하는 추세다. 다양한 언어와 구사자들의 존재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사회 실험에 끊임없이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언어 구사자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또 마땅히 배워야 한다.

하지만 머나먼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구사하는 언어, 특히 구어로만 존재하거나 매우 소수만 사용하는 언어인 경우에는 언어 교사를 더 많이 고용하거나 영리 번역 회사를 쓰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언어학자와 언어 공동체가 손을 잡고 함께 언어를 기록하고, 사전이나 온라인 언어 아카이브 같은 자료를 만드는 등 기초 연구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에선 단 한 번도 공용어가 존재한 적이 없다. 영어가 실질적인 공통어이기는 하지만, '파리에서 쓰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특정한 프랑스나 만다린어를 표준 중국어로 공표한 중국과 달리 미국은 표준화된 언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적이 없다. 미국에는 영어 외에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을 부당하게 차별한 오랜 역사가 존재한다.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원주민 언어를 퇴출하려 했고, 공립학교에서 스페인어를 쓰는 학생을 처벌한 일도 있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쓰는 영어에 대한 편견도 존재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정부들이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트럼프처럼 스페인어를 두려워하며 영어만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인지 및 소통의 자유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영어건 뭐건 하나의 언어를 표준 언어로 정하는 것만큼 미국의 다중언어 역사와 현실에 동떨어진 조치도 없을 것이다.

유럽에 의한 식민화 이전 리오그란데강 북쪽에서 사용되던 원주민의 언어는 300여 개로 추산된다. 기적적으로 여전히 살아있는 언어도 많고, 레나페어를 비롯해 부활하고 있는 언어도 다수다. 초기 식민지에서도 영어만 쓰이지 않았다. 맨해튼섬은 다언어 국가 미국의 축소판이었다.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 아이작 조그가 1643년에 쓴 글에 따르면, 맨해튼 항구 주민 400~500명이 사용하는 언어만 해도 18가지나 됐다. 언어 다양성은 자연스레 종교적 관용과 상업의 기회로 이어졌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아일랜드어, 시칠리아어, 이디시어(Yiddish), 타이샨어(Taishanese) 등 구어 위주의 언어 사용자들은 뉴욕, 나아가 미국이라는 국가 형성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러다가 1924년에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이민자 유입을 제한해 미국의 인종 구성을 고정하려 한 '존슨-리드(Johnson-Reed) 법'에 서명한다. 정치적인 공포 심리와 인종 차별적 유사 과학이 부채질한 결정이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