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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김택연의 '고회전' 직구가 특별한 이유 - '바우어 유닛'

[야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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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메이저리그 서울시리즈는 모든 야구팬들에게 특별한 선물이다. 필자처럼 야구 통계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노다지'를 만났다. 메이저리그의 공식 통계 사이트 'baseballsavant.com'에는 메이저리그 팀들과 경기를 치른 한국 선수들의 측정 데이터가 올라왔다. 미국의 모든 구단들과 야구 전문 매체들이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분석할 때 쓰는 측정 장비로 한국 선수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메이저리거들과 한국 선수들을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척돔에서 만난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기술 담당자는 이번에 올라온 데이터가 '트랙맨'으로 측정한 거라고 밝혔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쓰고 있는 '호크아이' 시스템도 고척돔에 설치는 했는데 비주얼 스카우트 및 코칭용으로만 쓴다고. 이 이야기를 들은 한 국내 구단 관계자는 '한국의 9개 구단이 엄두를 못 내는 장비를 고작 닷새 쓰려고 서울까지 가져온 메이저리그의 '머니 파워'에 혀를 내둘렀다)

이틀 동안 쏟아진 흥미로운 숫자들 중, 우리의 눈길을 잡아끄는 기록들에는 이런 게 있다.
 

2428 rpm : 김택연의 포심패스트볼 평균 회전수

아직 프로에 데뷔도 하지 않은 19살 신인 김택연은, 단 2타자만 상대해 세계 야구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LA 다저스의 주축 타자인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와 제임스 아웃맨을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고척돔에서 취재하고 있는 MLB.COM의 존 모로시 기자는 트위터에 "이제 김택연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고 올렸다.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18일 경기에서 인상적인 한국 선수가 있었냐는 질문에 김택연을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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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김택연은 공 11개 중 커브 한 개를 제외한 10개를 포심 패스트볼로만 던졌다. 패스트볼들의 평균 시속은 92.7마일(149.1km). KBO리그에서는 '광속구'지만, 메이저리그의 기준으로는 느린 편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 포심 시속은 94.1마일. 구원투수들은 94.4마일이었다. 그런데 시즌 개막을 이틀 앞두고 타격감이 절정으로 올라온 다저스의 주축 타자들은, 김택연의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다섯 번 방망이를 냈는데 모조리 헛스윙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답은 '속도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투수가 던진 공에는 회전이 걸린다. 날아가는 공에 회전이 걸리면 휘어진다. 오버핸드 투수의 포심 패스트볼에 걸리는 회전, 즉 날아가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돌아가는 '백스핀'은 공이 중력에 저항하게 만든다. 즉 중력 때문에 땅으로 떨어져야 하는 공이 '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회전수가 많을수록 이 '덜 떨어지는' 효과도 커진다. 그래서 타자 눈에는 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른바 '라이징 패스트볼'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18일 김택연의 포심 패스트볼에는 최대 2483rpm, 평균 2428rpm의 회전이 걸렸다. 이날 경기에 등판한 두 팀 투수들 중 포심 평균 회전수보다 김택연보다 높았던 투수는? 아무도 없다.

스프 야구수다위 표에 대표팀 투수들이 모두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공인구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대표팀 투수들은 KBO리그 공인구를, 다저스 투수들은 메이저리그 공인구를 던졌다. 한국 공인구는 실밥이 조금 높고 표면이 덜 미끄러워서 투수들이 회전을 걸기에 조금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 변수를 감안해도 김택연의 회전수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김택연은 이 엄청난 회전으로 타자들의 눈에 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만들었다.

이 착시 효과를 더 강하게 만드는 변수는, '속도와 회전수의 조합'이다. 트레버 바우어(전 야쿠르트)는 성추문 등 야구 외적 문제로 지금은 메이저리그 복귀가 힘든 처지가 됐다. 하지만 3년 전까지 바우어는 빅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이었다. 바우어가 빅리그를 평정한 무기 중 하나가 바로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평균 시속은 93~94마일 정도로 빅리그 평균 수준이었지만 회전이 어마어마했다. 시즌마다 리그 최고 수준의 회전량을 기록하며 떠오르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보통 패스트볼의 회전수는 속도와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속도는 최정상급이 아닌데 회전은 최고 수준'인 바우어의 패스트볼은 대단히 특이했다. 타자 눈에는 '그 정도로 떠오를 수 없는 속도의 공이, 엄청나게 치솟아 오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 것이다. 즉 '속도 대비 회전'이 매우 특이한 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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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연구들을 통해, '속도 대비 회전'은 패스트볼의 효과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밝혀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용어가 '바우어 유닛 Bauer Unit'이다. 공식은 간단하다. '회전수/속도'. 예를 들어 패스트볼 회전수가 2000rpm인데 속도가 90마일이라면 '바우어 유닛'은 22.2(2000/90)다. MLB의 '평균 바우어 유닛'은 24 정도다. 당연히 '바우어 유닛'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타자 눈에 '더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공은 스트라이크 존 위쪽으로 던지면 헛스윙을 끌어낼 확률이 높다. 즉 '하이 패스트볼'로 활용하기 좋은 공이 된다.

위에 쓴 것처럼, 18일 경기에서 김택연의 포심 패스트볼은 평균 시속 92.7마일, 평균 회전수 2428rpm을 기록했다. '바우어 유닛'이 26.2(2428/92.7)다. 지난해 빅리그에서 포심을 200개 이상 던진 투수 360명 중에, '바우어 유닛' 26.2를 넘긴 투수는? 25명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한국 프로야구에 데뷔도 안 한 19살 루키가, '바우어 유닛'을 기준으로 했을 때 지금 당장 빅리그에서도 최상위 8% 급의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 한국 대표팀에는, '바우어 유닛' 기준으로 김택연보다 위력적인 공을 던진 투수가 있다.
 

2522 rpm : 최준용의 포심패스트볼 평균 회전수

17일 샌디에이고 전 8회에 등판한 최준용(롯데)은 공 12개 중 11개를 포심 패스트볼로 던졌다. 평균 시속 91.9마일로 역시 빅리그 기준으로는 그리 빠르지 않다. 하지만 회전수를 기준 삼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회전수가 분당 2522rpm. 메이저리그에도 이 정도의 회전이 걸린 포심은 매우 드물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포심 패스트볼을 200개 이상 던진 투수는 360명. 이 중 평균 회전수 2522rpm을 넘긴 투수는 21명에 불과하다. 즉 최준용의 포심 회전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상위 6%'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 설명한 '바우어 유닛'을 기준으로 보면, 최준용의 패스트볼은 더욱 돋보인다. 평균 시속 91.9마일, 평균 회전수 2522rpm인 최준용의 패스트볼은 '바우어 유닛'이 27.4(2522/91.9)다. 앞서 설명한 김택연의 26.2보다도 높다. 지난해 빅리그에서 포심을 200개 이상 던진 투수 360명 중에, 최준용의 '바우어 유닛' 27.4를 넘긴 투수는? 단 5명에 불과하다.

야구수다즉 최준용의 패스트볼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눈에 대단히 생소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매니 마차도가 2볼 2스트라이크에서 지켜본 패스트볼은 땅에 깔려오는 것처럼 느껴졌겠지만 스트라이크 존 아래쪽을 통과해 루킹 삼진을 결정했을 것이다. 김하성과 호세 아소카르는 가운데 오는 공이라 느껴 방망이를 내밀었겠지만 공은 방망이 위쪽을 맞고 떠올라 평범한 뜬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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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잦은 통증에 시달리다 타자 전향까지 고민했던 최준용은 오프시즌에 다시 투수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투구 메커니즘에 변화를 줬다. 어릴 때부터 필라테스를 통해 만든 유연성을 이용해 온몸의 가동범위를 극대화하던 예전의 투구폼을 조금 단순화해서, 몸에 무리를 덜 가게 만들었다. 17일 경기의 데이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최준용이 이 변신을 통해 구위를 전혀 잃지 않았거나 오히려 향상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준용의 속도는 메이저리그에서는 느린 편이지만 KBO리그에서는 꽤 빠른 편에 속한다. 최준용이 예전의 펄펄 살아 오르던 직구를 회복할 희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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