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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BTS도 오마주한 LP재킷의 전설 '힙노시스'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104

[씨네멘터리] BTS도 오마주한 LP재킷의 전설 '힙노시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이 유명한 밈을 탄생시킨 영화 "킹스맨"의 주연이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콜린 퍼스가 어느 날 아침 오브리 파월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오브리는 그가 유명 배우라서 알 뿐이지 사적으로는 몰랐던 상황이었다. 콜린 퍼스는 오브리에게 '힙노시스'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오브리는 말했다. "진짜요? 왜요?"
콜린 퍼스는 답했다. "제가 LP 광팬이거든요. 집에 1,000장 넘게 있어요. 힙노시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요. 점심 한번 같이 하실 수 있을까요?"

오브리가 나가봤더니 콜린 퍼스는 힙노시스가 제작했던 모든 LP 커버 아트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힙노시스 덕후(aficionado)'였다. 오브리는 영화 제작을 수락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힙노시스: LP커버의 전설"(원제: Squaring the Circle)은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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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는 음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국의 디자인 그룹이다. 1970년대에 주로 활동한 이들은 수많은 LP 명반의 앨범 재킷 디자인을 남겼는데, 특히 핑크 플로이드의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은 비틀스의 "애비 로드"(Abbey Road)와 함께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앨범 커버 아트라고 할 수 있다.

오브리 파월은 스톰 소거슨(2013년 타계)과 함께 힙노시스를 창립한 사진가이자 디자이너다. 그가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낸다는 친구들로만도 록의 최전성기 역사책을 쓸 수 있다. 로저 워터스(핑크 플로이드), 지미 페이지(레드 제플린), 폴 매카트니(비틀스), 마크 볼란(티렉스) 등등이다.

그가 서울 서촌의 그라운드시소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를 위해 한국에 왔다. 전시장의 '핑크 플로이드 방'에서 그를 만났다. 프리즘을 변주한 유명한 이미지들로 가득한 방에서, 오브리 파월에게 음반(音盤) 역사상 가장 빛나던 시기의 앨범 커버 아트워크에 대해서, 그 시절의 예술에 대해서, 그리고 그 시대의 '예술함'이 오늘날의 '예술함'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물었다. 그리고 그 다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서촌 그라운드 시소 전시장에서 인터뷰 중인 오브리 파월 / 박진호
1968년 핑크 플로이드 2집 앨범 "어 소서풀 오브 시크릿츠"(A Saucerful of Secrets)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앨범 커버 디자인에 발을 들여놓은 힙노시스는 CD가 상용화된 1982년까지 약 15년 간 LP의 전성기를 풍미(風靡)했다.

애플TV+에 있는 "1971:음악이 모든 것을 바꾼 해"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제목이 말해주듯 1970년대 대중 음악의 위상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그 앞 시대의 음악이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했다면 1970년대에는 반전(反戰)과 자본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는 음악들이 널리 창작되고 주목을 받았다.

"베트남전이나 '켄트주립대 학살' 사건 등이 대중 음악에서 다뤄졌습니다. 제네시스나 핑크 플로이드같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도 정치적 함의를 가진 노래들을 발표했죠. 예를 들어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을 들어보면 광기나 돈(자본), 상실 등의 요소를 다루고 있어요 (...) 러브 송이 아니라 좀 더 지적인 개념 등에 대해서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당시의 젊은 세대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죠."

'힙노시스'라는 이름도 이런 움직임과 관계가 깊다. 힙노시스는 '힙스터'와 '노시스'(gnosis,영적인 인식)의 합성어인데, 당시의 힙스터는 수트를 입고 타이를 매던 보수적인 전통 세계에 대항하는 작가, 디자이너, 뮤지션, 또는 패션 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주로 패션의 첨단을 걷는 부류를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다소 축소됐지만.

흥미로운 건 '힙노시스'라는 이름이 핑크 플로이드의 초기 리더였던 시드 배럿의 낙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에서 대학생 봉준호가 다녔던 영화 동아리 이름 '노란문'이 서교동에 있던 사무실의 문 색깔에서 따왔던 것처럼.

"어느 날 동업자인 스톰과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는데 누군가 하얀 문에다가 힙노시스라고 써놓은 거예요. 펜으로 써놔서 우리는 엄청 화가 났죠.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시드 배럿이 펜을 들고 서있었어요. 스톰이 시드에게 '네가 썼어? 너 때문에 페인트칠을 다시 해야 되잖아! 꺼져' 라고 한 뒤에 돌아서더니 '힙은 쿨하다는 뜻이고, 노시스는 현명하다는 것이니 이름 좋은데? 우리 회사 이름으로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럼 그 전에는 팀 이름도 없었나요?
"'의식 기업'(consciousness incorporate)이라는 히피스러운 이름을 생각해내긴 했는데, 'incorporate'라는 단어 자체가 회사를 뜻하는 미국 단어라 그렇게 지을 수는 없었죠. 우리 논의는 거기서 멈춘 상태였는데 그때 힙노시스라는 단어를 본 거예요. 이거구나 싶었죠."

국내에서는 오는 5월1일 개봉하는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란 영화를 보면 90년대 영국의 국민밴드였던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가 나와서 이렇게 말한다.

"누가 이런 훌륭한 말을 했어요. 'LP는 가난한 이의 미술 소장품이다.' 멋진 말이죠? 내가 한 말이면 좋겠는데"

그랬다. LP 소장품은 음악 컬렉션인 동시에 일종의 개인 미술관이었다. 그렇게 된 데는 힙노시스의 공이 컸다. 1960년대 후반~70년대 음악이 그 전과 비교해 획기적으로 달라졌 듯이 이 시기 앨범 커버 아트 또한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힙노시스가 그 흐름을 주도했다.
핑크 플로이드 5번 째(좌)과 8번 째 정규 앨범 커버 / 힙노시스, 그라운드시소
핑크 플로이드 5집 "아톰 마더 하트"(Atom Mother Heart)의 앨범 커버에는 뜬금없이 젖소 한 마리가 서 있다. 그리고 커버에 앨범 타이틀도 밴드 이름도 없다. 힙노시스는 자신들의 엉뚱하고 기발한 발상에 누군가 '왜 그래야 하는데?' 하고 물으면 '왜 그러면 안 되는데?'라고 맞받아쳤다.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아드리안 쇼네시는 이 앨범 커버가 '향후 수십 년 간 모든 급진적인 커버 제작의 기준이 된' 거의 '반(反)-커버'라고 평가했다.

4,3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록 앨범이자 무려 977주 동안 빌보드 200에 올라 있던 핑크 플로이드 8번째 정규 앨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은 핑크 플로이드와 힙노시스의 명성을 동시에 휘날린 명작이다.

"애비로드 스튜디오로 핑크 플로이드를 만나러 갔죠. 그들이 그러더라구요. '우리는 더 이상 초현실적인 아이디어나 젖소 사진 같은 건 원하지 않아.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 심플한 그래픽 이미지처럼 뭔가 다른 걸 원해.'

2주 뒤에 제가 빛에 관한 물리학 잡지를 보고 있는데 거기에 무지개를 발산하고 있는 프리즘이 있었어요. 스톰이 보더니 '핑크 플로이드에 맞는 아이디어가 생각났어'하더라고요. 그걸 제가 백지에 간단하게 그려서 스튜디오에 가서 밴드에게 보여주니 '바로 그거야'라며 좋아했죠. (...) 사실 핑크 플로이드는 1973년에 어둠 속에서 무대에 원형 빛을 쏘는 라이브 콘서트를 한 적이 있어요. 저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이 앨범 커버가 그들에게 어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쨌든 이 간단한 이미지가 50년 후에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앨범 커버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웃음)

70년대 록 음악을 잘 모르는 독자들도 힙노시스의 작업 중 다음의 이미지들은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한국과 인연이 있는 앨범 커버들이다.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공허를 주제로 한 핑크 플로이드 9집 "위시 유 워 히어"(Wish You Were Here)의 앨범 커버 아트는 마블 시리즈 등에서 패러디하거나 오마주했고 BTS도 '불타오르네' 뮤직 비디오에서 오마주했다.
핑크 플로이드 9집(좌)과 BTS '불타오르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 힙노시스, 하이브
포토샵이 없고 CG가 없던 당시에 힙노시스는 할리우드 스턴트맨을 기용해 실제로 옷에 불을 붙인 뒤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에서 저 장면을 찍었고 이 앨범 커버 역시 힙노시스의 명반으로 남았다.

"저도 BTS 비디오를 봤어요. 힙노시스에 대한 오마주라고 생각했고 진짜 기뻤습니다. 우리가 이미 수십년 전에 만들었던 이미지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바가 있다는 얘기니까요."

그런가하면 힙노시스가 디자인한 호주의 록 밴드 AC/DC의 "더티 디즈 던 더트 칩"(Dirty Deeds Done Dirt Cheap)의 음반 커버는 한국 영화 대표작 "기생충"의 포스터를 연상시킨다.
AC/DC 2번째 정규 앨범과 "기생충" 포스터 / 힙노시스, CJENM
"'기생충'을 좋아해요. 아주 뛰어난 영화죠. 그 영화 포스터를 보자마자 바로 AC/DC의 음반이 떠올랐고, 혹시 그 포스터가 거기서 영감을 얻었나 궁금했죠. 왜냐하면 힙노시스의 아이디어나 책에서 따간 것이 분명한 다른 광고 사진들을 자주 봤거든요. (...) 누군가 저희 이미지를 취한다는 것은 우쭐해지는 일이었고 그래서 좋아했어요."

오브리 파월은 AC/DC의 "더티 디즈 던 더트 칩" 앨범 커버가 1970년대 영국에서 유행하던 탐정물 잡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앨범 커버는 사실 시각적 왜곡이 있는 이미지다. 보다시피 사진 속 인물들은 물론 뒤편의 건물까지 원경이든 근경이든 모두 선명하게 초점이 맞는다. 이것은 인간의 눈이 보는 방식이 아니다.

포토샵이 없던 시절, 힙노시스는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어 이미지를 자르고 오리고 붙여서 이런 꼴라쥬 이미지를 만들었다. "기생충" 포스터 역시 어딘지 모르게 범죄의 냄새를 풍기고 있고, 각각의 인물 역시 따로 찍어 합성함으로써 모두 포커스가 맞는다는 점이 힙노시스가 디자인한 AC/DC 앨범과 비슷한 정서를 불러 일으킨다.

레드 제플린 5집 앨범 커버 아트 / 힙노시스,그라운드시소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하고 미국에서만 1,100만장이 팔린 레드 제플린 5집 "하우시스 오 더 홀리"(Houses of the Holy) 역시 힙노시스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앨범 커버로 역시 전경(前景)부터 후경(後景)까지 모두 초점이 맞는 꼴라쥬 이미지다. (지난해 영국 경매에서 LP없이 멤버들 사인이 담긴 앨범 커버만 2천5백만 원에 팔렸다)

아서 클라크의 SF소설 "유년기의 끝"에서 영감을 얻은 이 커버는 얼마나 유명했던지, 십여 년이 지난 뒤인 1989년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SF 코미디 영화 "엑설런트 어드벤쳐"에 등장하기도 했다.

'기원 전 470년, 세계의 많은 곳이 레드 제플린의 앨범 "하우시스 오브 더 홀리"처럼 보이던 때…'라는 설명과 함께.

1967년부터 1982년까지 약 15년 간의 앨범 커버의 전성기에 앨범 커버 아트는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밴드의 자산으로 취급됐다. 대중이 접하는 밴드의 첫 번째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는 앨범이 천만 장씩 팔렸어요. 지금이야 스포티파이에서 가면 30억 명이 테일러 스위프트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시장이지만 대중들은 그녀를 앨범 커버에서 보는 게 아니라 그녀의 음악을 들을 뿐이죠. 반면 70년대에는 대중들이 앨범 커버의 사진을 봤고 그게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었어요."

"토요일 아침이면 사람들은 음반 가게에서 앨범을 사서 들으면서 앨범 커버를 파고 들었습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그들이 좋아하는 밴드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탐구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힙노시스의 LP 커버 아트의 사고 과정은 매우 진지했다. 게다가 앨범 커버 아트가 그 밴드나 음악이나 가사와 매번 반드시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폴 매카트니의 음반만큼은 일반적인 힙노시스표 앨범들과 달랐다. 직관적이고, 쉬웠다. "밴드 온 더 런"(Band On the Run)이란 앨범 커버를 보면 타이틀과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한마디로 힙노시스답지 않다. 오브리 파월이 이에 대해 뒷 얘기를 들려주었다.

폴 매카트니 앤 윙스 "밴드 온 더 런" 앨범 커버 / 힙노시스
"이번 서울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은 거의 스톰과 저, 그리고 피터 크리스토퍼슨(힙노시스의 세 번째 멤버)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거죠. 하지만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는 많은 경우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했어요. '이게 내가 원하는 거야. 이렇게 좀 만들어줄래?'라고 하곤 했어요. 스톰은 '이건 힙노시스 아이디어가 아니야, 안 할 거야'라고 했지만 저는 폴 매카트니를 좋아했고 그와 잘 지냈어요. 그래서 힙노시스를 위해서 하겠다고 했죠. 왜냐하면 첫째, 그는 (무려) 폴 매카트니였고 둘째, 폴은 돈을 많이 줬어요. 우리는 스튜디오를 운영할 책임이 있잖아요. 우리는 대부분 우리 자신의 아이디어로 일했어요. 폴만 예외였죠. 하지만 그는 '비틀즈'잖아요" (미소)

인터뷰 중인 오브리 파월 / 그라운드시소
오브리 파월은 인터뷰 내내 이따금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생각해보건대 힙노시스가 주로 활동하던 시대와 지금 사이에 가장 달라진 것은 시간의 감각이었다. 지금은,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감각을 잊은 시대다.

"1970년대와 오늘날의 창작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때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게 가장 좋은 사진이고, 구성이고, 색상인지 따져보고 결정을 내릴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어요. 요즘엔 그럴 시간이 없어요. 누군가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이렇게 해주세요, 금요일까지요' 그럼 끝이에요. 지금은 사진이나 뮤직비디오나 뒤에서 곱씹는 과정이 없어요. 작품을 제대로 만들 시간,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을("stands the test time")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저는 로버트 플랜트(레드 제플린의 리드 보컬)와 매우 친하고 데이비드 길모어(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와도 아주 가까워요. 50년 넘게 그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어요. 그 관계와 신뢰는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어요."("stood the test of time")

지금은 이런 '시간의 테스트'를 기다려주는 시대가 아니다. 창작의 시간, 감상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 생각의 시간 모두 사라져버렸다. 미친듯이 찍어내고, 미친듯이 소비하고, 미친듯이 잊어버린다.

힙노시스의 시대에는 앨범 커버 하나를 만드는데 보통 6주가 걸렸다고 오브리는 말했다.

"지금은 '즉각적인 만족'("instant gratification")의 시대죠. 한번 보면 끝인 거지. 당신이 스니커즈를 샀다고 칩시다. 다음 주면 새로운 스니커즈가 나와요. 그럼 이전 것은 휙 던져버리고 또 새 걸 사요. 이런 '즉각적인 만족'은 진지한 예술 탐구를 허락하지 않아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오늘 나오고 내일 사라지고, 오늘 나오고 내일 사라지고… 거기에 뭐 깊은 의미 같은 게 있겠어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오브리 파월이 구식만 고집하는 꼰대같지만, 그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포토샵을 쓰는 등 현대 기술의 뛰어남을 인정하고 수용하는("I embrace modern technology") 사람이다. 다만 동시에 35mm 필름의 질감을 그리워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브리는 지난 8일 씨네큐브에서 열린 "힙노시스: LP커버의 전설"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은 CGI보다는 실제로 촬영하고 제작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무엇인가를 할 때 감정이 따라붙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토샵이 아니라 실제로 촬영함으로써 그게 제대로 찍힐까 하는 불안감을 감내할 때, 촬영을 위해 하늘에 띄운 돼지 풍선때문에 히드로 공황이 폐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핑크 플로이드의 "애니멀스" 앨범 커버 제작 당시), 오브리는 그럴 때 감정적인 콘텍스트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무엇인가를 직접 하면, 고독한 CG 작업과는 달리 '관여'(engage)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GV에서 마지막 질문을 받자 너무나 많은 관객이 손을 들었고, 운좋게 기회를 얻은 한 청년이 자신도 창작자라며 자기 같은 젊은이들에게 조언해달라고 부탁했다. 오브리 피월은 답했다. 아주 간단한 답변이었다.

"워크. 워크. 워크" (work. work. work)

"하루에 열 시간 일하고. 사회 생활은 없다고 봐야죠. (no social life) 그렇게 10년쯤 하고 만약에 운이 좋다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건 비관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가 그래요. (this is real) 누구도 당신의 문을 열어주지 않아요. 당신이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서 자신을 세일즈해야 해요."

천재였지만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던 힙노시스의 동업자 스톰 소거슨과는 달리 오브리 파월은 푸근하고 넉넉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일할 때만큼은 무척 예민한 완벽주의자였다.

인터뷰 중에 다른 방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자 말을 중단하고 기다렸다. 다른 방 소음은 마이크와는 거리가 있어서 수음(受音)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다시 인터뷰를 시작해서 한참 진행하던 중 영상 기자가 카메라 중 한 대의 위치를 옮기기 시작하자 그는 또 인터뷰를 중단했다. 마스터 카메라는 계속 녹화 중이라 문제가 없다고 말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오브리는 "내가 산만해져서 안돼요"(It distracts me)라며 굳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 전시 8월까지, 그라운드시소 서촌
▲'힙노시스: LP커버의 전설'- 5월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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