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에 이어 의과대학 교수들의 사직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의대 교수들도 밥그릇 지키기를 위한 카르텔에 동참한다는 비난이 쇄도한다. 이런 비난이 현 시점에서 국민의 전반적인 정서임을 의료계가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 물결이 국민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의대 교수들은 잘못된 길로 가려는 것일까? 중범죄자에도 자신을 변호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취재가 제한된 영역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얘기를 누구의 방해 없이 들었다는 것은 분명히 해둔다.
'악마'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보니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 족히 300명은 되어 보이는 젊은 의사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교수와 전문의도 섞여 있었지만 전공의와 의대생의 비율이 꽤 높은 듯했다.
세상은 이들을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밥그릇만 챙기는 '악마'라고 부른다.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정책에 홀연히 병원과 학교를 떠난 '악마'들이 이토록 많이 모여 있는 현장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였을까? '악마'들의 얼굴이 유독 평범하고 앳되어 보였다.
“저희(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 모일 때마다 아이들(항암치료받고 있는) 얘기부터 해요. 병원에 계신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께 환자들 어떤지 자주 물어요. 병원을 떠나는 게 이렇게 가시방석 같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내과 전공의)는 이 사태가 어떻게 되든 다시 대학병원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어요. 저희에게 환자분들이 다시 몸을 맡기실 수 있을까요?”
“저희(응급의학과 전공의)도 병원에 돌아가고 싶어요. 기자님이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욕설과 비난이 마땅한 젊은 '악마'들을 마주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의 기운이 몸을 휘감았다. 죄책감, 나는 19년 전 신경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기성 의료인이자, 15년 동안 의학전문기자를 해온 보건복지부 출입 언론인이다. 국민의 생명이 볼모로 잡혀 있는 작금의 사태에 대한 내 죄의 무게는 젊은 '악마'들보다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2022년 뇌출혈로 쓰러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의 죽음으로 개두술 의사가 부족한 현실이 드러났을 때 가장 앞장서서 ‘필수 의료 대책’을 주창했던 게 바로 대한전공의협의회였다는 기억도 떠올랐다.
필수 의료 회생에 앞장섰던 젊은 의사들이 정부의 필수 의료 대책에 가장 먼저 병원을 떠나는 건 역설이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내과 등 바보 같은 진로를 선택한 젊은 '악마'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을 때는 대한민국 의료 현실의 키워드가 ‘부조리’인 것도 같았다.
의대 교수들은 왜 '악마'의 편에 서려 하는가?
그런데도 서울대, 울산대, 부산대, 전북대, 경상대 등 주요 의대 교수들이 자발적 집단 사직을 결의했고, 이 물결은 전국 40개 의과 대학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치적인 이슈에 가장 몸을 낮춰왔던 삼성서울병원의 모교 성균관의대 교수들조차 500여 명이 모여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의대 증원, 전공의 사직 등 현안에 대해 의대 교수들의 의견이 다양한 것과는 달리 사직의 물결은 거침없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