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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그림 한 장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당시의 핫플'을 해석하라

[커튼콜+] 그 미술관에 이동용 의자가 있는 이유는…그림 제대로 보는 색다른 방법 (글 : 황정원 작가)

처음 런던 내셔널 갤러리를 방문하던 날, 입구에서 지도를 받아 들고 유명 작품들이 걸린 전시실에 재빨리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종종걸음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루 종일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이왕 왔는데 미술책에 나온 그림들은 다 봐야겠고. 그렇게 고흐의 '해바라기'를,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를 내 눈으로 직접 봤지만 사실 내가 그 그림에서 정확히 뭘 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뜻일까? 런던 코톨드 갤러리가 기획한 <마네 재작업하기(Reworking Manet)>를 보고 든 생각이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코톨드가 소장한 수많은 명화 중 단 하나의 작품,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폴리-베르제르 바(Un bar aux Folies Bergère)>를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참가자들은 코톨드 교육팀의 도움을 받아 마네가 선택한 그림의 소재와 기법부터 그들의 역사적 문맥까지 다양한 의미들을 찬찬히 읽어 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 경험을 자신의 이야기로 재해석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거쳤다. <마네 재작업하기>는 이 기획으로 탄생한 작품들을 모아 놓은 전시회다.
 

<폴리-베르제르 바>는 어떤 그림?

황정원 커튼콜+
거대한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폴리-베르제르는 당시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맘껏 술을 즐길 수 있는 데다 서커스, 카바레 등의 쇼가 더해지니 각계각층의 손님들이 앞다투어 이곳을 찾았다. 그야말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법한 요즘 제일 잘 나가는 핫 플레이스'였던 것이다.

그림 속 빽빽하게 들어찬 손님들, 그들 머리 위로 빼꼼히 보이는 재주꾼의 두 다리에서도 폴리-베르제르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바 위에 놓인 형형색색의 술병과 유리그릇에 수북하게 담긴 오렌지가 이 공간의 풍족함을 한층 강조한다.

하지만 마네는 흥겨운 저녁 한때를 묘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풀밭 위의 점심>, <올랭피아> 등의 전작에서 사회 규범을 외면한 도발적 주제와 전통을 벗어난 미술 기법으로 물의를 일으켜왔던 그는 마지막 걸작에서도 당대 미술계가 외면해 온 인물, 여성 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웠다.

흥겨운 폴리-베르제르의 분위기와 가장 대조되는 사람, 자신의 여흥이 아니라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바텐더가 이 그림의 주인공이다. 바텐더 뒤의 대형 거울에 비친 것처럼 그녀는 지금 바를 찾은 고객을 상대하는 중이지만, 공허한 얼굴에는 고단함만이 담겨있을 따름이다.

황정원 커튼콜+

마네 재작업하기

참가자들은 먼저 <폴리-베르제르의 바>에 대한 이런 배경지식을 얻은 후 그로부터 자신에게 가장 흥미로운 주제를 뽑아냈다. 같은 그림을 함께 보았지만 아이들이 관심을 가진 주제와 표현 방식은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18세의 니콜은 카운터 위에 놓인 오렌지 더미에 시선이 갔다. 바텐더는 돈을 건네는 부유한 고객에게 오렌지를 건넬 수 있지만, 스스로 사 먹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19세기말, 과일은 사치품이었으며 그림 속 오렌지 또한 단순한 과일이 아닌 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과일을 쉽게 살 수 없게 된 요즘 영국에서처럼 말이다.

황정원 커튼콜+
레인과 엘리 모두 주인공인 바텐더에 주목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재해석했다. 레인은 바텐더의 무표정을 사회적 가면으로 읽었다. 오늘날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원치 않는 관심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똑같은 종류의 가면을 착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눈을 파내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바텐더의 초상을 디지털 프린트로, 사회적 가면을 종이 가면으로 만들어 냈다.

엘리는 2023년 버전의 폴리-베르제르 바를 상상했다.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시선을 맞춘 마네의 바텐더와 달리 엘리의 바텐더는 손님의 요구를 묵살하고 자신의 핸드폰만 들여다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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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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