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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 폭행·성추행 조합장, 알고도 방치한 농협중앙회 [취재파일]

"신이고 왕입니다. 조합장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겁니다"

"무서웠습니다. 정말 무서웠습니다. 찍혀서 불이익을 당해서 해고라도 될 것 같아서 무서웠습니다."

'무소불위', '제왕적', '군림'. 포털 창에 지역 농축협 조합장을 검색하면 뜨는 연관 검색어들입니다. 지역에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조합장들이 직원들을 향해 각종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을 일삼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만 해도 전북 순정축협조합장이 직원을 신발로 때리는 CCTV 화면이 공개돼, 끝내 폭행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광주비아농협에서는 조합장의 왕따 돌림과 괴롭힘을 못 이긴 계약직 직원이 휴직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경남 남해 남해축협 직원들이 조합장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조합장의 상습적인 폭행과 갑질, 성희롱을 더는 참지 못하겠다며 들고일어난 겁니다. 지난해 11월 첫 고소가 시작된 뒤로 지금까지 모두 3건의 고소장이 경찰에 제출됐습니다.

※관련 기사 : 욕설, 폭행, 성추행 "그는 왕이자 신, 한마디면 좌지우지"

10년간 남해축협은 '직장 내 괴롭힘 종합판'이었다

남해축협 조합장 갑질

조합장을 고소한 여성 직원들은 지금 조합장이 당선된 2015년 이후 지금까지 세월을 "끔찍했다"고 표현합니다. 조합장의 성희롱과 성추행은 상습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조합장과 단둘이 대면해야 하는 결재 시간은 가장 곤욕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들은 결재를 받을 때마다 조합장이 성희롱적 발언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한 여성 직원은 "결재를 받으러 가기 싫어 딸뻘 직원에게 미루는 나 자신이 참담했다"고 말합니다.

조합장의 성추행 발언은 차마 방송으로 내보내지 못할 만큼 노골적이었습니다. 부하 직원들 앞에서 간부급 여성 직원을 향해 "확 뽀뽀를 해버릴까 보다"라며 다가오는가 하면, "한창 성행위를 좋아할 나이다", "어떤 체위를 좋아하나", "소리도 지르나?" 등 성적인 발언을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직원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여성 직원과 단둘이 차를 타 손을 잡으며 "지금 모텔로 가면 어쩔래" 등 위협적 발언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남해축협 조합장을 고소한 여직원들

인사권을 손에 쥐고 횡포를 부린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직원에게 일반 신입사원이 담당하는 주임 업무를 부여하는가 하면, 자기 밑에 직원이었던 계장에게 결재를 받도록 하는 모욕적인 인사이동도 이뤄졌습니다. 시답잖은 일로 꼬투리를 잡아 손으로 반성문을 쓰게도 했습니다. 조합 캐비닛에는 지금도 수백 장에 달하는 수기 반성문이 쌓여 있습니다.

욕설과 폭행도 공공연히 이뤄져 왔습니다. 조합장을 고소한 직원은 2021년 축협에서 운영 중인 소 축사 관리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욕설과 함께 폭행을 당했습니다. 조합장을 만나기가 두려워 만날 때마다 녹음을 켰다는 직원의 휴대전화에는 200개가 넘는 녹음 파일이 들어 있었습니다. 성희롱과 성추행, 괴롭힘, 욕설과 폭행까지. 직장 내 괴롭힘 백화점이라 불러도 될 만큼 심각합니다.

성희롱 인지하고도 조합장 그대로 둔 농협중앙회

이번 사건이 여느(!) 조합장 갑질 사건과 다른 점은, 관리·감독·징계권을 가진 농협중앙회가 지난 1월 이미 이 사건을 조사했었다는 점입니다. 농협중앙회 경남검사국은 남해축협에 대해 1월 29일부터 2월 2일까지 일주일간 직장 내 괴롭힘 감사를 시행했고, 이 과정에서 '직장 내 성희롱'까지 인지했습니다.

이후 농협중앙회 경남검사국은 세 가지 실수를 저지릅니다. 먼저 성희롱 피해를 호소한 여성 직원들에게 피해 사실을 감사한 뒤, 이 사실들을 조합장에게 확인을 받아야 한다고 한 점입니다. 조합장이 성희롱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지, 안 하는지가 중요한 기준이었다는 겁니다. 여성 직원들은 "그걸 조합장께 이야기하면 어떻게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겠냐"며 감사를 거절합니다. 경남검사국은 아직까지도 "피해자들이 감사 거절의사를 표했다"며 성희롱 관련 조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조합장을 경징계인 '문책'으로 지적하는데 그쳤다는 점입니다. 윤미향 의원실이 농협중앙회로부터 제출받은 '남해축산농협 부문감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중앙회는 조합장이 '복무규정 위반(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문책으로 조치했습니다. 문책은 본격적인 징계 전 대기하는 취지의 징계입니다. 문책을 받은 조합장은 지금도 버젓이 출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남해축협 부문감사 감사보고서. 조합장 '문책'으로 감사를 마쳤다. (자료제공: 윤미향 의원실)

마지막은 직장 내 성희롱 사고를 인지하고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조치가 곧장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조합장은 감사가 끝난 지 2주가 지난 2월 15일까지 조합 본관으로 출근을 이어갔습니다. 조합장을 고소한 여성 직원 일부가 조합장실에 결재를 맡으러 올라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건 관련 첫 언론 보도가 있은 뒤에야 농협중앙회는 조합장을 인근 하나로마트로 출근하라고 조치합니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는 "성희롱에 대한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그 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성희롱 피해를 입은 직원들이 감사국의 조사를 거절했고, 성희롱에 관한 경찰 조사를 지켜봐야 하니 조합장을 문책 조치에 그쳤고, 성희롱이 확정적이지 않으니 가해자-피해자 분리 조치도 곧장 하지 않았다는 취지입니다.

또 폭행 또 욕설…'갑질' 조합장, 언제까지 봐야 하나요

지역 농축협 직원들은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조합장은 지역에서 선출된 사실상 지역의 '유지'입니다. 조합장을 견제해야 할 이사·대의원·감사까지 조합장과 친분이 있다면, 조합장은 해당 지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조합장에게 잘못 보였다간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직원들은 지역에서 상당한 고연봉자에 속하다 보니, 조합장의 횡포를 꾹 참고 감내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따라서 농협중앙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농협중앙회와 지역 농축협은 별도의 법인이지만,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농협중앙회가 지역 농축협에 대해 지도·감독·징계권을 갖습니다. 하지만 조합장들이 농협중앙회장 투표권을 쥐고 있고, 지역 농축협들이 워낙에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감독 기능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번 남해축협 사건은 지역농축협 조합장에 대한 농협중앙회의 허술한 관리·감독 시스템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농협중앙회 측은 "1,000개가 넘는 지역 농축협을 일일이 지도·감독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해명합니다. 그러나 이미 조사까지 해놓고 그 어떤 실질적인 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남해축협 조합장 갑질
왜 10년을 참고 견뎠느냐는 질문에 남해축협 한 직원은 "기자님이면 어쩌실 거냐"고 되물었습니다. "조합장에게 찍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동료들을 보며, 처자식만 생각하고 눈감아 왔다"는 말에 저라고 다른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갑질' 조합장 뉴스에도 바뀌는 건 없었습니다.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할 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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