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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①"한 달 만에 5% 이익 낼 수 있는데 베팅해보실래요?"

부동산 투자 업체 '사기 혐의' 수사…피해 추정 금액 1,500억 원 넘어

SBS 시민사회부 취재팀은 1,500억 원을 가로챈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부동산 투자업체를 <8뉴스>에서 보도했습니다. 업체 대표와 직원들이 300명 넘는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배경에 무엇이 있었는지 [취재파일]로 더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부동산 투자업체 직원]
"앉으세요. 일단 차 한잔하고 가세요."


안경을 쓴 남성 직원은 투자 상담을 신청한 취재진을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습니다. 방에 들어서자 투명한 유리창 밖으로 시내가 내려다 보였고, 책상 위에는 서류 더미와 명패도 눈에 띄었습니다. 취재진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직원과 마주 앉았습니다. 여성 직원이 종이컵에 담은 차 한잔을 대접했고, 본격적인 투자 상담이 시작됐습니다. 이곳은 투자자 300여 명에게 1,500억 원 넘는 돈을 가로챈 사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부동산 투자업체입니다. 

부동산 투자업체 직원

 

"아파트 들어설 곳..한 달 만에 5% 수익"

[부동산 투자업체 직원]
"오늘 처음 뵀는데 이런 얘기하면 사기꾼 같잖아요. 이왕에 나온 얘기니까, 베팅 한번 해보실래요?"


직원은 충북 지역의 땅을 소개했습니다. 한 달 만에 5% 수익을 낼 수 있다며 'OO지구 도시개발사업 공동주택 신축공사'라고 적힌 사업 계획서를 내밀었습니다. 아파트가 들어설 곳이라 짧은 기간에 높은 이익이 나온다는 겁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연 3.5%인데, 그의 말대로 월 5%를 벌 수 있다면 말 그대로 '대박'인 셈입니다. 그는 마침 이날이 투자자를 모집하는 마지막 날이라며 2시간 안에 돈을 보내라고 재촉했습니다.
 

[부동산 투자업체 직원]
"9명 중에서 6명 계약 오늘 됐어요. 나머지 3명만 남았습니다."


한두 푼이 아니라 6억 원을 보내라는 말에 취재진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러자 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 앞에 섰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투자 용어들을 나열하면서 자신들의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두 달 만에 16억 원을 번 회사"라며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근저당을 설정할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투자업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취재진에게 수화기를 넘겼습니다. 대표 A 씨는 직원 말대로 투자 가치가 있는 땅이라며 '부동산 매매 계약서'를 보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부동산 투자 업체가 취재진에게 보여준 부동산 매매 계약서

부동산 매매 계약서에는 토지의 위치와 면적, 매매대금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고파는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옆에 도장까지 찍혀 있어서 얼핏 보면 정상적인 매매 계약서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계약 날짜는 빈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효력이 발생하는 시점을 알 수 없었습니다. 정말 한 달 만에 이익이 나올 수 있는 땅인지 확인하기 위해 취재진은 직원이 말한 충북 땅에 찾아갔습니다.
 

아파트 못 짓는 '자연녹지'…인허가 절차도 안 밟아

[충북 지역 땅 주인]
"이 (개발) 과정이 길어요. 인허가 끝나려면 1년 6개월~2년 걸려요."


아파트 공사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잡초가 자라는 땅 주변에 화물차 몇 대가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에 문의해 보니, 이 땅은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자연녹지인 데다 지금껏 건축 허가 신청도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땅 주인도 아파트를 올리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시행사에 토지를 팔고, 지자체에서 건축 허가를 받는 데에 족히 수년이 걸린다는 설명입니다. 불특정 다수가 이 땅에 투자했다는 말에 놀란 땅 주인은 투자업체 대표 A 씨에게 전화했습니다. A 씨는 이튿날 부랴부랴 충북 땅에 찾아와 해명했습니다.

부동산 투자업체 대표

[A 씨/부동산 투자업체 대표]
"저희 직원이 잘못 설명을 한 것 같아요. 돈을 가지고 오신다고 하셨어도 저는 안 받았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직원이 투자를 권유한 이유'를 묻자 A 씨는 "자신이 시킨 게 아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신도 취재진과 통화하며 투자를 권유하지 않았냐'고 묻자 "제가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이런 식으로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모른 체하면서 해명을 이어갔습니다.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투자했던 땅에 대한 보상 절차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1,500억 넘는 투자금…피해자 300여 명, 고소 계속돼

경찰은 이렇게 호재가 있는 부동산에 투자하겠다며 불특정 다수에게 돈을 받았다가 원금과 이익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유사수신행위법 위반)로 A 씨를 입건해 수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파악한 피해자가 300여 명, 금액은 1,500억 원이 넘습니다. A 씨와 함께 투자자를 모집한 부동산 정보업체 대표 B 씨도 같은 혐의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B 씨는 부동산 전문가로도 알려져 언론 보도에 자주 나왔는데, A 씨 업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토지보상 강연을 열며 투자자를 모집했습니다. 취재진이 카페를 찾아가보니, 벽에는 부동산 투자 사례와 개발 정보가 담긴 신문 기사가 붙어 있었습니다. 음료를 만드는 부엌과 투자자와 상담하는 테이블, 직원들이 회의하던 방도 나타났습니다.

토지보상 강의하는 부동산 정보업체 B 대표
경기도에 사는 60대 C 씨는 "젊은 직원들이 바쁘게 오가는 모습을 보고 번듯한 회사로 믿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지난 2022년 이 업체에 노후 자금 3억 2천여만 원을 투자했다가 원금과 이익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40년 동안 생선 장사를 하며 모은 노후 자금이었습니다. 더는 일할 수 없는 상황에 노후 자금까지 잃자 C 씨는 "노후가 막막하다"고 말합니다. 경북에 사는 60대 D 씨는 지난 2021년 코로나19 방역 사업으로 번 7천만 원을 이 업체에 보냈습니다. 3개월 투자하면 10% 이익, 3년 투자하면 24% 이익을 준다는 말을 믿었지만 이익금은커녕 원금조차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D 씨는 "돈을 받지 못하면 사업을 계속할 수 없다"며 "살림살이까지 무너질 판"이라고 말합니다.

피해자들의 고소로 수사에 착수한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해 9월 이 업체 사무실과 카페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A 씨와 B 씨의 금융거래 내역을 들여다보며 반년 넘게 수사를 이어갔습니다. 취재를 시작한 뒤에도 수십 명의 고소장이 경찰에 추가로 접수되면서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조만간 수사 결과를 종합해 A 씨와 B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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