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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사람들은 왜 눈앞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에 둔감한 걸까?

[뉴욕타임스 칼럼] Why People Fail to Notice Horrors Around Them, By Tali Sharot and Cass R. Sunstein

스프 뉴욕타임스칼럼
 
*탈리 샤롯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과 MIT의 신경과학과 교수다.
*캐스 선스타인은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교수다.
 

인류의 역사는 놀랍게도 억압과 폭정, 피비린내 나는 전쟁, 야만과 살인, 대량 학살의 기록들로 가득하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일들이 끊이지 않던 역사를 돌아보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 묻게 된다. 왜 이토록 끔찍한 일을 미리 막지 못했을까? 어쩌다 인류는 그런 재앙 같은 환경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걸까?

모든 걸 일일이 설명하기는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들여다보면, 핵심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극단적인 정치 운동이나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수준의 갈등은 보통 천천히 전개되고, 서서히 고조된다. 처음에는 작아 보이던 위협이 점차 커지면, 마지막에는 커다란 위협에도 별다른 감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커다란 위협이 가해질 때와는 사뭇 다르다. 이렇게 위협과 문제가 천천히, 서서히 커지다 보면, 대낮에 눈앞에서 끔찍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도 그 사건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 글을 쓴 우리 중 한 명은 신경과학자고, 다른 한 명은 법과대학 교수다. 우리는 서로 다른 분야를 연구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얼마나 둔감한지 논하지 않고서는 지금 시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공통의 결론에 이르렀다. 여기엔 무엇이 정상이고 당연한지에 대한 기준의 변화도 포함된다.

우리 뇌가 작동하는 중요한 생물학적 원리를 생각해 보면, 근본적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원리란 바로 습관화(habituation)다.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나 변하더라도 속도가 느린 것에 익숙해져서 점점 관심을 줄이고 덜 반응하게 되는 우리 뇌의 작동 원리를 습관화라고 한다. 카페에 처음 들어설 땐 실내를 가득 메운 커피향이 코끝을 찌르는 듯하지만, 반대로 20분 정도만 지나면 카페에 그대로 있을 커피향이 전혀 나지 않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당신의 후각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그저 당신의 후각 뉴런이 어느덧 익숙해진 냄새에 반응하라는 신호를 더는 보내지 않아서 그렇다.

처음에는 에어컨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거슬리다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신의 뇌가 주변의 소음을 걸러주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뇌는 최근 들어 바뀐 것이나 새로운 자극에 먼저 반응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관심을 줘야 할 우선순위에서 계속해서 밀려난다.

습관화는 두 발로 서서 걸으며, 다른 동물보다 머리(와 뇌)가 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특징 중 하나다. 인간뿐 아니라 영장류, 코끼리, 개, 새, 개구리, 물고기, 쥐와 같은 동물들도 상대적으로 발달한 뇌 덕분에 익숙해진 것에 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습관화가 특별한 건 매우 복잡한 사회적인 현상과 환경에도 익숙해지면 덜 반응해서 그렇다. 전쟁, 부패, 차별, 억압, 만연한 허위 정보와 온갖 극단주의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습관화가 만성이 되면, 인간은 주변의 부도덕한 행위에 덜 주목하고, 이를 고치려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며, 나아가 자기도 모르는 새 그 문제의 일부분이 되어버리고 만다.

샤롯 박사 연구실에서 진행한 실험을 바탕으로 한 논문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정직하지 않은 행위마저 습관화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대신 돈을 벌 기회를 주고, 뇌의 반응과 활동을 전부 기록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거짓말로 몇십 원, 몇백 원 정도 이득을 볼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실험은 서서히 거짓말의 강도를 높인다. 커지는 거짓말에 비례해 다른 사람이 받는 피해도 커지고, 그 대가로 벌 수 있는 돈의 액수도 커진다.

실험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는 자기 모습을 꽤 불편해하는 듯했다. 뇌 안에서도 감정을 표출하고 드러내는 곳에서 강력한 신호가 감지됐다. 그러나 거짓말을 거듭할수록, 감정적인 반응은 점점 줄어들었다. 스스로 거짓말하는 모습에 익숙해진 거다. 어느덧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거짓말을 스스로 억누르기는커녕 대수롭지 않게 거짓말을 계속했다.

습관화가 문제인 분야는 작은 거짓말뿐이 아니다. 1960년대 초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진행한 유명한 실험을 생각해 보라. 이 실험은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독일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권위주의가 어떻게 떠올랐고, 사람들은 여기에 어떻게 순응했으며, 결과적으로 권위주의의 성공을 방조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고안됐다. 즉, 밀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토록 끔찍한 행위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혹은 최소한 명백히 잘못된 명령에 복종하고 이를 묵인하게 된 기제를 이해하고자 했다. 실험 결과는 우선 사람들이 권위에 어떻게 복종하는지를 보여주지만,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실험은 습관화 기제를 이해하는 데도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

밀그램의 실험은 평범한 시민들이 권위적인 명령에 복종해 다른 사람에게 극도로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가하는 버튼을 별다른 죄책감 없이 누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였다. 그런데 어쩌면 이 실험의 정교하고 면밀한 설계가 더 중요하다. 밀그램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처음에는 (전기 충격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수준의) 아주 미세한 자극을 주게 했다. 그러다 서서히 전압을 올려 꽤 큰 고통을 줄 만한 수준에 이르렀는데, 중요한 건 전압을 조금씩, 단계 별로 올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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