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빅픽처] "불호도 감수했다"…'파묘' 감독의 이유 있는 선택들

파묘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불호까지도 감수했습니다"

영화 '파묘'를 만든 장재현 감독은 이 영화를 둘러싼 호불호를 일찌감치 예상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몇몇 설정에 대한 투자배급사의 반대가 있었고, 개봉 전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한 모니터 시사회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자신이 처음부터 생각한 바를 포기하지 않았다. 불호까지 감수하고 밀어붙인 선택들은 정식 개봉 후 관객의 성원으로 보상받고 있다.

'파묘'가 개봉 4일 만에 전국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극장가 돌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영화만큼이나 무서운 흥행세는 2024년 극장가에 또 한 번의 봄을 불러왔다. 이 영화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개의 의아한 요소들이 충돌하며 관객의 호불호를 자극하고 취향의 벽을 타고 있다.

자신의 일관된 취향과 관객이 좋아할 만한 것들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장재현 감독의 말을 통해 '파묘'의 몇몇 이해할 수 없는 설정과 요소에 대한 궁금증을 일부 해소할 수 있었다.
파묘

◆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고…감독은 이야기의 허리를 끊었다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최민식)와 장의사(유해진), 무속인들(김고은, 이도현)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한 줄의 로그라인 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여기에 스산한 분위기로 무장한 예고편과 미스터리한 기운의 포스터까지 더해져 관객의 기대감을 수직상승시켰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집안에서 후손의 생명을 위협하는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이 집안의 장손은 조상의 묏자리와 연관돼 있다는 추측을 한다. 그렇게 풍수사, 장의사, 무속인이 모여 이장을 준비한다.

시신을 땅에 묻어 묘를 만들고 제사로 예를 다하는 건 한국의 오랜 풍습이다. 묏자리가 유발하는 길흉화복은 믿음과 미신 사이를 넘나든 오랜 논쟁거리기도 하다. '파묘'는 한국인의 근원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파묘

그러나 영화는 중반 이후부터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한다. '첩장'이라는 반전이 등장하는 동시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활약한다.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지 않아야 매력적이라는 오컬트 장르의 불문율을 깬 선택이다.

갑작스레 이야기의 방향과 온도가 달라지며 두 개의 이야기가 포개진 것처럼 보인다. 이 설정이 혼란스러운 것은 앞서 펼쳐진 약 한 시간가량의 이야기가 페이크처럼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의 완성도로 보자면 낙제점에 가까운 구조다.

"제 작가적 욕심이었어요. 이야기의 허리를 끊어버리고 싶었달까요. 두 개의 이야기를 엮어주는 것은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는다'인데, 그 장의 제목처럼 이야기도 중간에 끊고 싶었어요. 앞의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관(棺) 이야기는 연막이면서 뒤의 이야기와 연관이 꽤 있어요. 뒤를 숨기기 위한 구조이기도 해요. 이처럼 이야기 구조를 끊는 방식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시나리오 때부터 호불호가 있었지만 주제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3막 구조의 영화는 이미 많이 보지 않았나요? 저는 진보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이야기는 궤도를 이탈해 험지로 접어든 모양새였지만, 관객은 이탈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배우들의 힘이 작용한다. 무게 중심을 잡는 최민식의 관록, 매력적인 캐릭터를 더 돋보이게 완성한 김고은의 열정, 의외의 발견에 가까운 이도현의 광기,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유해진의 넉살이 완벽한 앙상블을 완성하며 관객들이 영화에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끔 한다.
장재현

◆ 장 구성과 내레이션은 지나친 친절…"미리 준비하시라고"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친절한 영화다.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끌고 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방식을 택했던 전작 두 편과는 확연히 다른 선택이다. 이야기가 품은 미스터리는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해소된다. 해석의 여지는 적으며 곳곳에 심어 놓은 상징 역시 감독의 의도가 명확하게 읽힌다.

장재현 감독은 이야기를 6개의 장(章) 구조로 펼쳐 보이며 상덕(최민식)과 화림(김고은)의 내레이션까지 등장시킨다. 심지어 상덕이 '험한 것'과 맞붙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그의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며 '싸움의 기술'을 중계하다시피 한다. 이야기의 독창성이나 장르의 깊이 보다는 대중성에 무게를 뒀음을 알 수 있다.

"고민을 많이 했었던 부분이에요. 시나리오 때는 장으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편집할 때 보니 '장' 구분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더라구요. 관객에게 복선으로 던져주는 게 더 친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도깨비가 나오는 것보다는 '도깨비불'이 나오고, 김상덕이 어디론가 갈 때 '쇠말뚝'이라고 알려주는 게 관객에게 약간의 준비를 시켜주는 것 같았달까요. 우리 영화의 첫 챕터가 '음양오행'인데 '음양'은 무속인을, '오행'은 풍수지리사와 장의사를 가리켜요. 그들의 세계관을 알려주는 거죠. 내레이션의 경우, 우리 영화에는 액션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뒤에 김상덕이 일을 풀어가는 과정을 감정을 담아 내레이션으로 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의 내레이션은 뒤의 (김상덕) 내레이션 때문에 넣었어요. 갑자기 등장하면 이상할테니까요"

클라이맥스에 이은 해소과정에서는 음양오행을 제대로 활용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호 보완과 상극의 관계를 영리하게 비틀었다.

"음양오행설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어요. 서로 보완하는 관계도 있고, 서로 상극인 관계도 있죠.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나무'(木)에 비유돼 왔어요. 많이 맞았지만 안 부러졌죠. 저는 나무가 검을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물(水)에 젖어야해요. 영화에서는 피를 묻히죠. 상극이론이란 게 반대로 말하면 서로 보완하는 셈이니까요"
파묘

◆ 왜 '쇠말뚝'에 꽂혔나…"'쇠말뚝설'은 나 확신이 없어"

장재현 감독은 "소재에 접근할 때, 겉모습을 보기보단 코어를 보려고 한다"고 이야기를 만드는 자신만의 철칙을 밝혔다. 데뷔작 '검은 사제들'부터 '사바하', '파묘'에 이르기까지 오컬트 장르 한 우물만 파며 달려온 장재현 감독의 뚝심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매번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은 아닐지라도 장르와 소재에 대한 치열한 탐구 의식과 집념 만큼은 인정한다.

그는 '파묘'를 위해 한국장례협회에 찾아가 수업도 듣고 실습을 하는 등 오랜 시간 학습에 매진했다. 풍수사, 장의사도 만나 전국 각지를 돌며 땅을 연구했다. 그는 장례지도사 자격증에 도전해 10여 차례가 넘는 이장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결과 무속신앙, 풍수지리, 음양오행, 길흉화복 등 다양한 민속학을 스토리 라인으로 엮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새벽에 장의사 분이 급하게 연락 오셔서 10만 원 줄 테니 지방에 같이 이장하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보니 배수 공사가 잘못돼 물의 방향이 바뀌어 관에 물이 들어왔더라고요. 장의사 분이 그 자리에서 파묘해 관을 열고 토치로 급하게 화장을 했어요. 그날 느꼈던 게 '파묘라는 게 과거를 들춰서 잘못된 걸 꺼내 없앤다'는 정서였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땅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피해자고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으니 그걸 파묘해 버리자' 싶었죠. 발바닥에 있는 티눈까지 꺼내 레이저로 지지는 느낌으로 말이죠."
파묘

장재현 감독이 파묘하고 싶었던 건 우리 민족의 상처와 트라우마였다. 중반 이후 이야기의 방향을 급격하게 바꾸며 등장한 건 '쇠말뚝'이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정기를 끊기 위해 산간벽지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건 학계에도 의견이 분분한 '설'이다. 특히 1020세대에게는 생경할 수 있는 이 쇠말뚝설을 화두로 던진 것은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쇠말뚝이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게 찍으려고 했어요. 그게 중요했으면, 그게 없어지는 걸 영화에서 직접 보여줬겠죠. 저 역시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풍수지리에서도 '쇠말뚝설'에 대해서는 파가 갈려요. 저는 그 기운을 없애고 싶어서 육체화 시킨 거예요. 그런다고 (쇠침을 뽑는다고) 우리나라가 갑자기 통일되는 것도 아니고. 저는 그걸 없애려고 노력한 인물을 보여주려 한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에 주인공의 처절한 사투를 보여준 거고요."

민속신앙에서 민족주의로 방향을 선회한 건 분명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다. 민족주의는 더 이상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매력적인 소재나 감정은 아니다.

장재현

그러나 장재현 감독은 주인공들에게 독립투사인 상덕, 화림, 봉길의 이름을 붙이고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그려진 100원짜리 동전을 상덕(최민식)에게 던지게끔 했다. 그는 "등장인물의 이름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겠다"며 말을 아꼈지만, 침묵은 의도는 긍정으로 읽힌다.

장재현 감독은 공포를 위한 공포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감정'이라고 했다.

"'검은 사제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로 끝내고 싶었어요. '사바하'는 '신은 존재하는데 왜 사람들은 죽어나가는 거죠?'라는 질문을 던지는 슬픈 영화로 만들고 싶었고요. '파묘'는 개운하게 끝내고 싶었습니다. 저는 공포감을 주기 위한 장면보다는 긴장감을 안겨주는 것을 좋아해요. 베를린영화제에서 만난 한 기자가 제게 '당신이 호러영화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리엔탈 그로데스크 신비주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제 자신에 대해 정의를 못 내리고 있었는데 그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요. 이제 저의 아이덴티티를 찾게 된 것 같아요."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