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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하루아침에 통일될 확률이 더 높다? 통일된다면 '하드랜딩'이 유력한 이유

[교양이를 부탁해] 김정은 체제 무너뜨리는 방법 ② - 안정식 SBS 북한전문기자

북한 김정은이 84년생이니까 이제 만 40세가 됐습니다. 키 170cm 정도에 몸무게 140kg 정도로 보고 있거든요. 굉장히 뚱뚱하잖아요. 사실 이 정도 체형이면 고혈압, 당뇨 정도는 달고 있다고 봐야 되고요. 만약에 김정은이 쓰러졌다 그러면 북한 체제에 바로 위기가 오는 거죠. 지금 한 11살 남짓 되는 딸 김주애를 데리고 다니면서 4대 세습의 후계자로 내세우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이 보고 있습니다만, 만약에 김주애가 성인이 돼서 통치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 김정은이 쓰러졌다 그러면 어린애가 통치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아마도 김주애의 어머니인 리설주가 소위 수렴청정을 할 가능성이 있겠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아티클입니다>
그럴 경우에 그동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던 김여정이 가만히 그 상황을 보고 있을 거냐. 소위 리설주와 김여정의 권력 투쟁 이런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시누이 올케 간의 싸움이죠. 그렇게 점점 균열이 심화되면서 북한 체제의 붕괴로 갈 가능성이 있고요. 그런 돌발 상황이 아니라 김정은이 상당히 오랫동안 살고 즉 자기 자녀에게 김주애 등 다른 자녀에게 안정적으로 권력을 물려줬다고 하더라도 이 체제가 4대 세습, 5대 세습, 6대 세습 계속 갈 수 있을 것이냐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습에 의한 권력 승계라는 건 한정된 자녀들의 풀 안에서 후임자를 고르는 거잖아요. 즉 뭔가 자녀 중에서 후임자를 정해서 권력자로 내세웠는데 국가를 이끌어갈 역량이 안 된다라면 그 자체가 또 위기가 되는 겁니다.
 

북한 붕괴 시 하드랜딩 통일의 가능성

김일성 왕조가 언젠가는 붕괴된다고 하면 반드시 통일의 길로 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처럼 김일성 왕조가 건재해서 남북 간의 대치가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에 비해서는 통일의 길이 열리는 거죠. 그런데 이 경우에 이뤄지는 통일은 하드랜딩 통일 즉 북한의 변화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통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Q. 김정일이 죽었을 때도 한 번의 하드랜딩 통일 기회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죽었을 때 하드랜딩 통일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건 후계 체제가 제대로 안 됐을 때 얘기입니다. 북한 내부에 균열이 생기거나 이런 걸로 인해서 후계자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을 때 그런 격변의 가능성이 생기는 거고요. 만약에 김정은의 경우에도 정말 김주애가 한 20살, 30살 될 때까지 살아서 안정적으로 김주애에게 후계 체제가 가고 김주애가 국가를 경영할 정도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준다라면 하드랜딩 통일의 가능성이 생기진 않겠죠. 그러면 그 다음번에 또 북한 내부에 권력 균열이 생길 가능성을 봐야 되는 거죠.

Q. 당시에 김정일 다음에 김정은의 후계 구도는 상당히 좀 튼튼했었는데, 지금 김정은 다음의 후계 구도는 아직은 되게 좀 불확실하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건가요?

그 부분은 아직 딱 부러지게 말하기는 어려워요. 사실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넘어갈 때는 후계 체제가 확실했었죠. 왜냐하면 김정일이 북한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로 정해졌다고 보는 시기가 1974년 노동당 5기 8차 전원회의로 보는데, 74년에 후계자로 정해지고 나서 김일성이 94년에 죽었으니까 20년 동안 후계 준비를 한 거잖아요. 그래서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넘어간 건 상당히 안정적으로 갔어요. 근데 김정일은 2008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도 "나 건강하니까 내가 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 후계 체제에 대해서 논의하지 마" 이랬었거든요.

그러다가 갑자기 쓰러지고 나니까 그 바로 다음 해인 2009년 1월 정도에 김정은을 후계자로 정했다는 게 정설인데 김정은이 갑작스럽게 후계자로 정해진 거예요. 그리고 김정은이 84년생이니까 2009년도에 후계자로 정해졌다고 하면 몇 살입니까? 25살이죠. 만 25살에 후계자로 정해졌는데 상당히 어린 나이잖아요. 그렇게 본다면 김정은으로 가는 후계 체제는 상당히 불안정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어찌 보면 김정은이 의외로 권력을 장악할 능력이 있었던 거죠. 나이든 간부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해 가면서까지 북한 내 자기 권력을 확실히 하는 능력은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교양이를 부탁해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대북정책

Q. 남북은 소프트랜딩 방식의 통일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요?

남북이 교류 협력을 점진적으로 증가시켜서 시간을 갖고 통일의 길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의 남북 관계를 한번 되돌이켜 볼게요. 6·25 전쟁 이후에 냉전 시대, 거의 교류가 없었죠. 그러다가 80년대 말에 세계적인 탈냉전 분위기 하에서 남북의 교류가 이제 비로소 재개되기 시작하는데요. 국내 정치로 따져보자면 노태우 정부 때부터 남북 교류 협력이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91년도에 남북 기본합의서라는 것도 체결이 됐고요. 그리고 2000년에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아주 기념비적인 사건을 우리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죠.

교양이를 부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 2000년 평양
"잠자리라든가 뭐 편치 않지는 않습니까?"

김대중 대통령 | 2000년 평양
"네. 평소 꼭 가봤으면 하는 옥류관에서 냉면도 먹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 2000년 평양
"냉면이, 오전 회담이 너무 늦게 끝나니까 급하게 자시면 그 국수가 원래 맛이 없습니다. 그런데 평양 시민들은 뭐 지금 대단히 흥분 상태에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이렇게 직접 방문해 주시고. 특히 정말 용단 내리셔서 이렇게 오신 데 대해서는 정말 우리 인민들이 뜨겁게 맞이했는데. 그래도 인사가 제대로 됐는가 하고 이렇게 자신들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났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남북 교류가 정말 봇물처럼 터졌는데요. 이게 2016년에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로 사실상 제로 상태로 왔고, 문재인 정부 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서 뭔가가 되는 듯 보였지만 사실상 문재인 정부 때 남북 관계가 진전된 건 없었어요. 왜냐하면 유엔의 대북 제재가 워낙 강고하게 있었기 때문에 사업적인 측면에서 남북 간에 진행된 건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 한 20~30년 동안 진보 정부의 포용정책, 보수 정부의 압박정책 갖가지 종류의 대북 정책이 진행이 됐지만 남북 관계는 결국 돌고 돌아서 지금 제자리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20~30년 동안 지금 뭘 한 겁니까?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게 돼 있는 상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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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햇볕정책과 압박정책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네이밍이 됐던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우리가 실천을 했죠. 서쪽으로는 개성공단, 동쪽으로는 금강산 관광이 진행이 되고 있었고요. 1년에 매년 30~40만 톤 정도의 쌀 비료 지원이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1년에 설·추석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매년 300, 400 가족씩 이산가족이 만났어요. 남북의 장관급 회담이 주기적으로 이뤄졌고 경추위, 경제협력추진위원회라고 해서 남한의 재경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경제협의체가 정기적으로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각종 민간단체, 종교단체들의 방북이 수시로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남북회담과 교류가 봇물처럼 이뤄지다 보니까 북한에서도 남한 관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을 거 아니에요. 우리가 북한에 가면 남한 대표단을 상대하기도 하고 또 북한 대표단이 남쪽으로 올 때 따라오는 수행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오면 보통 밥 얻어먹고, 술 얻어먹고, 선물 받아가고 때론 촌지 받아가는 게 다반사가 됐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 정부도 촌지 같은 걸 줄 수 있으면 주라고 그랬어요. 밥 사주고 술 사주라고 그랬어요. 왜냐하면 이렇게 하면서 돈맛을 알아가는 거거든요. 북한에서 대남 담당하는 사람들은 남한하고 뭐가 행사가 있어서 가면 주머니에 생기는 게 있으니까 계속하고 싶겠죠. 그리고 그게 그 사람한테만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일을 끝마치고 자기 집으로 가면 집에다가 풀어놓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 자본주의가 평양으로 또 평양 근교로 그 사람 가족과 이웃을 통해서 자본주의가 퍼져 나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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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 당국자가 뭐라고 했냐면 "부정부패가 들어가는 게 자본주의가 들어가는 거"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자본주의가 유입되는 건 먼저 부정부패가 들어가서 북한의 주요 당국자들이 돈맛을 알게 해야 된다라는 게 이제 햇볕 정책에 깔린 기조였던 거죠. 또 개성공단에서 북한 근로자가 가장 많았을 때 5만 명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개성공단이 기본적으로 노동집약적인 공장이 많기 때문에 여성 근로자가 많았는데, 이 근로자들 같은 경우에 일주일에 몇 번씩 샤워를 할 수 있게 해 줘요. 여름엔 그저 그렇다고 그래도 한겨울에 공단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가 있고 거기에 보통 남한 비누나 샴푸 같은 거 갖다 놓을 거 아닙니까? 남한 샴푸로 머리를 감고 가는 거예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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